조숙과 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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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 끽연

조숙과 조로.

by 바람 그리기 2016. 4.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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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을 관찰하는 눈과 생각이 깊었던 어린 나.

독서 때문이었는지 대가족의 가정환경 때문이었는지 이도 저도 아니면 타고난 천성 때문이었는지, 아무튼 조숙하다는 말을 들으며 컸다. 점잖게 얘기해서 그렇다는 얘기지, 다른 한편으로 따지자면 애늙은이거나 까졌다는 표현과 다를 게 없지. 그래도 지금 생각하면 전자의 경우에는 항상 밝게 잘 웃으며 개구졌으니 틀린 경우이고 후자의 경우에는 한 번도 내 손익을 따져 행동의 방향을 정하지 않고 설령 그럴 때도 머릿속에서만 존재한 셈법이었고 늘 가슴으로 선택하고 행동했으니 역시 옳은 표현은 아닌듯싶다.

 

조숙하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생각이 깊으면서도 행동은 배려하고 양보하고 절제하며 존중하는 가슴의 판단에 따르다 보니

어느 사이엔가 나타난 부작용,

조로.

남들은 한창 현실에 매진하느라 정신이 없던 무렵부터 '비움'의 주체가 되어버린 정신세계. 거기에 몸도 구색을 갖춰, 마흔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 오돌개 같던 머리칼이 세기 시작한 것도 모자라 흰 수염에 눈썹까지.

이쯤이면, 남들과 다르게 시간을 앞당겨 쓴 꼴이다.

하긴, 그래서 삼류나마 시인의 별호를 얻게 된 것인지도 모를 일이고.

 

스마트폰의 효용을 대표하는 것은 적절한 앱을 찾아 활용하는 데에 있다. 내 경우엔 핸드폰의 원활한 운전을 위해, 그때그때 필요한 앱을 내려받아 사용한 후 바로 삭제하곤 한다. 한정된 용량의 디바이스에 필요하다고 이것저것 앱을 깔아 놓았다가 용량초과에 의한 시스템 오류로 몇 번인가 초기화를 시켰던 경험의 산물이다.

 

정리하고 버려도 늘 쌓이는 게 명함이다. 그래서 아주 오래전에 명함관리 앱을 찾아내려 받아 그 안에 정리를 해두었었다.

오늘, 그간 정리 못 했던 명함 한 줌을 들고 앱을 열었는데 이건 또 무슨 일인가?

앱이 연결이 안 된다. 혹시나 새 버전으로 업그레이드를 안 해서인지 싶어, 플레이스토어를 열고 아무리 찾아도 해당 앱이 없다.

이런 염병 젠장!

망하고 잠적하였다.

할 수 없이 내가 쓰던 앱보다 한참 뒤에 출시되고, 최근에 활발하게 노출되고 있는 앱을 새로 내려받았다.

하나하나 수기로 입력하던 예전 앱과는 달리, 세세 항목을 스캔하고 자동으로 입력해 주니 참으로 편리하다.

그나저나, 예전 앱과 함께 사라져버린 그 많은 사람은 어쩔꺼나?

내가 입대를 할 때 어머님이 당부하신

"맨 앞에도 서지 말고 맨 뒤에도 서지 말아라"던 말씀이 새삼 떠오른다.

 

한발 앞선 조숙이 또 조로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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