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거노인 연명하는 뒷방이라도 좋고,
백면서생 신선놀음하는 사랑채라도 좋고,
얼치기 땡중님 도 닦는 법당이라고 해도 좋을 이곳.
이곳에 걸린 모든 달력은 또 다른 달력 위에 겹쳐 있습니다.
겹친 달력은 어머님 모시고 병원에 입원하던 그해 그달에 멈춰져 있습니다.
어느 것 하나도 기억에서 지우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니 모르겠습니다. 저 깊은 곳에서는 그러하겠지만, 꼭 그래서만은 아니고 그냥 그렇게 내버려 두고 여섯 번째의 새 달력을 겹쳐 걸었습니다.
달력 앞에 섰다가 오늘은 갑자기 서울 큰 이모님께서 들려주신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그때 외할아버님 기일에 친정 나들이하셨다가, 환우 중이셨던 언니 안부를 확인할 겸 집에 들르셨습니다. 어머님과 셋이 마주 앉은 자리에서 제게 말씀하셨죠.
"아니 조카! 들어오며 보니 집에 아버지 문패가 걸려 있네?"
'예. 없애기 서운하기도 하고, 어머님 존함도 함께 있어서요...'
"아이고, 그러는 거 아녀! 형부 돌아가신 지가 몇 해인데 아직도 문패를 걸어두면 어떡해! 이승에서 붙잡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저승에 옳게 못 가는 거야. 그래서 때 놓치면 구천 떠도는 귀신이 되는 거고. 조카, 지금 당장 나가서 떼!"
내가 지금 잡고 있는 것이 무언지 생각합니다.
어쩌면 그리움을 내세운 집착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래. 그래도 상관없는 일인데, 그러면 왜 이렇게 집착할까? 생각했습니다.
<지고지순한 일생의 희생>의 크기가, 그 힘이 아직도 나를 지켜주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또 생각했습니다.
'과연 이 집착이 긍정의 힘으로 작동될 수 있을 거며, 나 스스로 그 집착을 버거워하지 않고 배반하지 않을 수 있을까?'
집착이 달력뿐이겠습니까?
돌아가신 어머님께서 서 계시던 그 부엌에서 어머님께서 쓰시던 물건으로 음식을 만들어 산 내 목구멍으로 넘기고 있는데요, 내가 매달려 있는 그것들이 하나둘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가며 그렇게 하나둘 나와의 연을 끊어내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여자와 남자 손의 효용이 다른 탓도 무시할 수 없겠지만,
기억하고자 하는 나의 집착을 아랑곳하지 않고 시간이 이렇게 하나둘 내게서 떠나고 있습니다.
생각했습니다.
'손 놓아야 할 때는 온다'
'아무리 내 기억의 의지로 울을 쌓고 막아서도, 시간의 풍화를 버텨 낼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집착으로 치부하고 손 놓고자 하는 이 집착에 애써 집착하지 말자'
작정하고 새 물건을 사 와 헌 물건을 쓰레기통에 던져 버린 날,
선영에서 꺾어 온 진달래 봉우리가 환하게 벌고 있습니다.
슬픈 내 삶을 따뜻하게 해준 참 고마운 사람입니다
202303242920금
이승철-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
장날.
'먹어 본 게 언제인지... 궈 먹으면 맛있겠다...'
갈치 좌판 앞에 서서 고민하다 그냥 왔습니다.
약 타러 들린 약국.
약사님이 내 대가리를 보고 외마디 탄성을 질렀습니다.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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