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뺑이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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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ㅁ사랑방

X뺑이쳤습니다.

by 바람 그리기 2024. 4.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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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영 부모님 묘소에 떼 보식하고 왔습니다.

 마대로 행낭 만들어 잔디 담아지고 숨이 턱에 차도록 기어 올라간 이틀.
 그리고 흙도 아니고 돌도 아닌데다 온통 나무뿌리 범벅인 땅을, 아버님 쓰시던 야전삽으로 괭이질해서 없는 흙 골라 담아 낑낑거리고 날라가며 보식한 오늘.
 내일 비가 온다니, 혼자 사흘 동안 X뺑이쳤습니다.

 거의 사초하는 수준의 보식이라서 흙이 모자랄 것은 뻔한 일.
 아래에서 퍼 올리는 것보다는 나을 듯싶어 묘소 위쪽에 물길을 추가로 낼 겸 겸사겸사 오전에는 내내 흙을 만들어 퍼 날았는데요. 오후에 보식 시작하고 떼 세 켜 깔고 나니 흙이 바닥났습니다.
 그렇다고 기초로 통 떼 세 켜 쌓듯 하면(그래도 흙밥이 필요하지만...) 어림잡아 잔디 300장은 더 필요한 상황이니 대책 없는 상황입니다. 이틀 떼 나르며 힘들었던 거야 날이 바뀌어 리셋되었으니 차치하고,
 한 켜 깔고 기어 올라가 괭이질해서 흙 만들어 내려오기의 무한 반복이니, 힘은 힘대로 들고 진척은 느리고 날은 덮고...
 쥔쫘루, 증말루, X뺑이 쳤습니다.
 오전 내내 묘소 위에 새로 물골 파는 일도 그랬고, 이건 뭐 산소 보식하는 게 아니라 토성(土城)을 쌓는 느낌이었습니다.
 오죽했으면,
  "내가 조선시대 태어났다면 이런 부역하기 싫어 등과 하기 위해 과거시험공부 열심히 했겠다"라는 생각을 다했습니다.
 
 뺑이는 쳤어도, 비 오는 예보에 맞춰 마무리했으니 속이 시원하기는 합니다만... 떼 양에 맞춰 마무리하려니 모양이 의도보다 이쁘지 않고 무엇보다, 도저히 흙을 조달할 수가 없어 나중에는 푸석거리는 부엽토까지 긁어 썼으니, 활착 될 동안 잘 버틸지 찜찜합니다.

 단식초 만들어 오메부시 넣고 주먹밥으로 초밥 두 덩이 만들어 갈 생각였다가, 밥통을 열어 보니 아침에 먹고 나갈 밥이 어중되게 남을 것 같아 포기했습니다. 귀찮기도 했고요.
 어제 떼 나르고 돌아오며 오늘 올릴 제주 사면서 깜빡했던 이온음료와 에너지바 두 개를 오늘 아침에 나가 김밥 사면서 함께 사 올라갔습니다.
 흙 나르던 빠께스 엎어 점심 상을 차렸는데 때맞춰 한동안 소원했던 친구에게 톡이 왔습니다.

 혜화역을 지나며 제 시를 촬영해 보내왔는데요, 어떤 이에게 온 톡은 보낸 지 일 년 후에나 확인하는 형편의 인간이다 보니
  "허, 참. 타이밍 기막히게 맞췄네. 그려, 유의미한 소통이라는 것이 별 수 없이 '사방팔방 떠가고 떠오는 수많은 관계의 신호 중에 특정의 주파수가 적시에 얼마나 정확하게 겹쳐지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일 테니, 소원했던 오랜 시간을 '싹둑' 잘라내도록 타이밍 기막히게 맞춰서 보냈네."라는 생각이 들게 했습니다.
 
 하고 많은 날 중에 오늘 보식을 결정한 계기도 그렇습니다.
 원래는 내일(토) 먼 남도 땅을 기행 하는 지역 문학단체 일정이 있는 날입니다. 당연 참석할 생각였고요. 참석하기 위해 달력에 동그라미를 그려놨었습니다.
 하지만 하늘을 떠도는 끈 떨어진 연처럼 혼이 빠져 부침을 거듭하는 요즘, 일정을 기억도 없이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달력에 표시한 동그라미를 행사 일정에 손톱만큼도 연결시키지 않고 멍하게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다가 사흘 전 단체장으로부터 참석여부를 확인하는 전화를 받았습니다.-이 또한 번거롭우며 감사한 일입니다. 단체톡을 하지 않으니 진행되고 있던 속사정을 알 수 없었고, 알 수 없으니 관심에서 멀어져 잊고 지냈고, 그런 내게 개별 전화를 넣어주셨으니 내게는 감사한 일이지만 단체장에게는 참 번거로운 일입니다-
 사흘 전 그 전화를 받고서야 <주말><보식><일기예보>가 꼬리를 물고 연상되었습니다. 그래서 <보식이 가능한 비 예보 있는 주말>이 행사일정과 겹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일정 확인 후 바로 연락드리겠다'는 답신은 "참석 불가"였습니다. "미리 공지한 일정"이 "새로 생긴 일정"에 떠밀린 꼴이니 단체장에게는 성의 없고 무책임한 행동으로 느껴졌겠으나, 그렇다고 어찌 진행될지 알 수 없던 오늘 일을 내일의 일정과 여유 없이 겹쳐 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세상의 변방 무각굴 뒷방에 칩거하는 낭인의 입장에서, 일삼지 않고 콧바람 쐴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단체장에게서 온 전화.
 미안했지만 긍정적 행동을 유발한 감사하고 울림 큰 주파수의 교류였습니다.

 챙겨 간 이온수와 생수 한 병을 순식간에 다 먹어가며 양손에 물집이 잡혀 터지도록 뺑이쳤던 하루.

 그래도 땀을 식히는 틈틈이 기껍게 동화(同化) 한,
 "짙어가는 신록 속의 만개한 색색의 영산홍" 
 멀쩡한 정신과 육신으로 그 일원
이 될 수 있는 현실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습니다.
 늘 늦게 만개하는 흰 영산홍. 이제 막 벌기 시작하는 놈을 두고 내려오기가 서운했습니다.
 
 여섯 시 반쯤 중턱에 닿아 한 끼 끓여 먹을 쑥을 캤습니다. 농약으로부터 자유로운 곳을 찾기 힘든 요즘의 들판. 발길 없는 산중 시내 옆에 참나무 낙엽을 비집고 올라온 놈이니 그 식감이 주는 만족감은 지친 몸을 멈추게 하기에 충분한 일이었습니다.
 산 그늘이 짙어지고 새소리가 점점 커지는데,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어 가져간 장비 씻는 것은 포기하고 서둘러 내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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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머니, 할아버지. 이쯤에서 로또 번호 좀 알려주세요! 산소가 흙무더기이니 이 면구스러운 꼴 좀 면하게요!"
 "아부지, 엄마. 이 아들 고생했으니 성에 안 차도 그저 너그럽게 받아주시고요... 저, 지금 잘 살고 있는 거 맞어유?"
 제주 올리고 똥구녕 하늘로 쳐들고 넙죽 엎드려 한참을 여쭤도 역시 대답 없으셨습니다.

 내가 탁아소(유치원) 다닐 때, 외가 증조할아버지 방 후원 꽃밭에서 당시 대학생이셨던 작은 외삼촌이 찍어주신 사진. 카메라를 메고 들어 온 외삼촌의 촬영 요청에, 외양간과 마주 보는 앞마당 빨랫줄에 널었던 마르지 않은 저 축축한 난닝구(아마 배트맨 그림이 그려있던 거 같은데 기억이 확실치 않다)를 급하게 떼어 입고 넷째, 셋째 누님과 어머님과 함께 포즈를 취했는데...
 베베 꼰 내 모습이 어디서 많이 본 거 같아 곰곰 생각해 보니, 큰 아이 어릴 적 모습과 똑같다. 겸연쩍고 쑥쓰러워 하는... 
 사람은 제일 싫어하는 모습을 닮는다는데, 큰 애에게는 유감이겠으나 부모자식의 연이야 하늘의 뜻이니 그저 운명이고 팔자려니 이고위감(以古爲鑑)해서 취사분별(取捨分別)하며 잘 살아가려니 믿는 거지.

 누님들, 저 개똥모자 씌워 밥그릇 들려 윗목에 세워놓고
 "깡통주께 밥 으더와라, 그지 대장 굶어 죽껏다..."
 노래시키며 어지간히 깔깔거리더니...

 

 동요-푸르다 mix 하늘나라 동화
 202404193028금
 졸려 디지것따!

 -by, ⓒ 성봉수 詩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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