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의 노를 함께 저어 주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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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ㅁ사랑방

인연의 노를 함께 저어 주셔 고맙습니다.

by 바람 그리기 2023. 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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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인년(壬寅年)의 마지막이자 서력 새해의 첫 번째 잡부를 나선 날.
 눈이 나리고 날이 추워졌습니다.
 문득, 나무 끝의 까치집을 바라봤습니다.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게 축복받고 행복한 일인데, 눈보라가 몰아치는 저 집도 행복할까...'
 선물 보따리를 들고 길을 나서는 세밑.
 그런 날의 잡부이니 반나절 일당을 보나스로 더 받았습니다.
 
 누더기 입은 김에 집에 오자마자 잡부에서 철거하고 챙겨 온 자재로 뚝딱거리고 있는데,
 친구 만나러 집을 나서는 둘째가 스치듯 뱉습니다.
 "아빠, 그 옷 어디서 나셨어요?"
 '...'
 "엉덩이까지 누빈 옷은 좀 ㅎㅎㅎ..."



 침침한 눈으로 헤진 곳을 깁다 보니 자정이 번뜩 넘어섰습니다(한 쪽 다리가 짧아 짐 ㅋㅋㅋㅋ).
 요(尿)기에 눈을 뜨고 고개를 돌리니 이렇습니다.



 언제 어떻게 잠들었는지... 하마터면 대형 사고 칠뻔했습니다.
 건넌 채 가서 일 보고 건너와 내처 더 잤습니다.
 '세 시까지 자는 게 가능한지 한번 보자!'


 개업한 지 10년도 더 된 어느 점방 문 위에 매달린 명태처럼 돌덩이가 된 사과 상자. 박는 대로 갈라지고 예비 홀을 뚫던 기리는 박혀서 빠지지 않고 그 기리를 문 드릴은 끼릭끼릭  힘을 못 쓰고 그러다가 기리까지 부러지고. 나사산은 다 무너져도 박히지는 않고... 날은 점점 추워지고 깜깜해지는데, 장난감 같은 가정용 드릴 잡고 쪼그려 앉아 코 훌쩍거리며  진도 안 나가는 소꿉장난하고나서, 서재 고장 난 모니터 분해해 필요 부품 떼어내어 정리하고, 누더기 깁는다고 또 그렇게 자정이 훨씬 지나도록 침침한 눈으로 꼼지락거렸더니 신체 가용범위를 넘어섰던 모양입니다.
 내처 잔 잠에서 눈을 뜨니 정말 오후 세 시.

 커피를 타 서재로 들어오니, 어제 마당에서 뚝딱거리며 노동요로 틀어 놓은 음악이 시그널처럼 뒤에 숨고 10시간째일 알람이 울리고 있습니다.




 임인년(壬寅年)
 내 오십 대의 마지막 날이 이렇게 가고 있습니다.
 이제 정말로 인생의 고개를 넘어섰으니, 내려가는 시간은 더욱 빠를 테고 그러니 이후로는 시간의 오감은 특별할 것 없는 순리로 덤덤하게 받아들이지 싶습니다.
 

 임인년(壬寅年) 한해.
 미지의 망망대해를 가는 돌아올 수 없는 단 한 번의 삶의 항해,
 인연의 노를 함께 저어 주셔 고맙습니다.
 덕분에 외롭지 않았습니다.
 설 잘 쇠시고요, 신묘년(辛卯年) 새해에도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빕니다.



 
 임인년(壬寅年) 섣달그믐날 늦은 여섯 시에
 내 50대, 마지막 배가 떠나는 소리를 들으며.
 
 무각재에서 성봉수 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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