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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외벽 한편에 매달려 있는 정체불명의 자루.
양파망 인듯 싶은데, 삭고 헐었다.
자세히 살피니, 곶감처럼 보였던 것이 석류다.
"나 어렸을 때, 감기들어 열나고 앓으면 할머니가 말린 석류 달인 물을 주셨어"라던 어머니.
석류가 왜 이 자리에 매달려있는지 알고 남음이다. 하지만, 투석을 시작하기 전 마지막 입원하시던 그 겨울, 어머니 곁을 지키느라 집을 떠나있는 바람에 살피지 못했다. 끝내 봄을 열지 못한 나무를 베어낸 것이 몇 해인데....
떠나시던 해, 장대를 준비할 만큼 처음으로 보기 좋게 매달렸던 고욤. 올해, 물이 한참 오르는 것을 베어버렸다.
떠나시던 해, 유난스럽도록 만개했던 매화. 작년에도 삐들거리더니 올핸 한 송이도 보이지 않는다.
어머니 보시라고 심고 기른 장미도 결국 지난 겨울 동안 누군가의 무심한 발길에 부러져 흔적 없이 사라졌다.
와병 몇 해 전부터 바뀐 장 맛.
떠나시던 해에 유난스레 피고 맺던 꽃과 열매.
…….
인연겁으로 따지자면, 분명 우연이 아닌 "전조"가 분명했는데, 누구도 알아채지 못했다.
산딸기와 머루가 봄을 휘감은 잔에 모처럼 진하게 내린 커피를 잡고, 지금 내게 온 전조는 무엇일까 생각한다.
이미 떨어지고 있는 것과 과하게 열매 맺으나 알아채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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