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 앞에 앉을 때만 쓰니 그냥 저렴한 테로 선택해선지,
다리 연결부위 나사 구멍 플라스틱이 진작에 부러진 모니터 안경.
그간 그냥저냥 맞춰 쓰고 지냈는데, 지난밤에 완전히 사망하셨다.
'고무줄로 묶어 쓸까?'
'궁상 그만 떨자!'
점심나절에야 이 닦고 세수하고 면도하고 편한 차림 그대로 슬리퍼 끌고 부러진 안경을 한쪽 다리만 귀에 걸치고 집을 나섰는데,
사방이 건물로 둘러싸인 오래된 집 마당과는 다르게 거리엔 7월 폭염의 햇살이 부서지고 있다.
눈이 부실 정도이니 여름 절정 때의 날씨라 해도 될 만큼이다.
평소 외출 때 쓰는 변색렌즈의 안경에 수십 년 길들었으니, 무색의 모니터 안경을 쓴 탓도 있겠고...
2만 얼마짜리 행사용 테 앞에서 기웃거리고 있는데, 안경사가 39,900원짜리 테를 들고 이미 돌아서고 있다. 그거나 그거나 내 눈에는 매 한가였지만, 일요일에도 밥벌이 나온 사람의 형편을 생각해 그냥 아무 말 않고 권해 준 것으로 고쳐 쓰고 돌아왔다.
안경을 고쳐 쓰고 돌아와 거실로 들어서며 마주한 앉은뱅이 상 위에 다리 한 짝.
로보캅의 떨어져 나간 팔 한 짝인 듯도 싶고, 방아깨비가 도망가며 떨구고 간 제물인 듯도 싶은데... 이 편치 않은 심상이 몸을 감싸면서 자각하지 않았던 지난밤 꿈의 안개가 스멀스멀 걷힌다.
집 안의 세간살이며 먹물과 같이 묵은 커다란 간장독을 그대로 남겨두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납치되듯 하루아침에 서울 당숙 댁으로 떠나신 종조모님.
운명하신 지 오래인 그 종조모님께서 틀니가 달그락거리며 환하게 웃으시던 그 모습 그대로 나타나셨고, 하나뿐인 아들을 위해 고르고 골라 짝지어준 당숙모께서도 마지막 뵌 30년 전쯤의 그 모습 그대로 나타나셨고.
그때, 서울 한복판 어디 주택가에 연립 아파트 두 동을 가지고 계셨고 종조모님께서 고향 산천 떠나 방안 살이 하시다 운명하신 수원의 주택도 있었으니 먹고사는 형편이야 내가 맘 쓸 일 없이 지내왔다.
구레나룻 무성하고 풍채 좋은 상남자였던 당숙께서 정년퇴직하시고 살이 빠지고 다소 초췌한 모습으로 아버님 장례식장에 들른 것이 마지막 뵌 모습이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운명하셨다는 소식이 부고도 없이 아름아름 전해졌으니, 어찌 보면 남이나 다름없는 형편.
그런 작은 할머님과 당숙모가 한꺼번에 처음으로 꿈에 찾아오셨으니 영 예사롭지 않다.
당숙모께서도 연세가 팔순을 훌쩍 넘기셨을 텐데, 당숙모나 당고모님들 중 어느 분께 혹시 신변에 이상이라도 있으신 건지...
기타-그리운사람끼리
옛사람, 옛 얼굴...
배추 물이나 주러 슬슬 움직여야겠다.
-by, ⓒ 詩人 성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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