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쯔쯔...못났다, 못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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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 끽연

"쯔쯔...못났다, 못났어!"

by 바람 그리기 2018. 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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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브이 앞에 앉았다가 스르르 고꾸라져 등받이 쿠션에 또 고개를 쑤셔 박고 잠들었다 깼습니다. 티브이는 혼자 떠들고 형광등은 환히 켜져 있습니다.

맨정신이었건 취중이었건, 지난 다섯 달 동안 계속된 일입니다.

그렇게, 아무렇게나 던져버린 일상은 몸에 탈을 불렀습니다.

 

십여 년 전, 무릎 수술을 하고 재활 중에 나타났던 목디스크 증상.

몇 달의 물리치료로 고만고만하게 상태를 호전시켰습니다. 팔이 저리는 느낌이 들면 바로 하던 일을 멈추고 자세를 가다듬었습니다. 특히, 잠자는 동안 목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베게 베는 일에 신경을 썼습니다. 다행히 더 나빠지지는 않게 잘 관리를 해왔네요.

 

그러던 것이,

삼월 들어 상태가 심상치 않게 되었습니다.

처음 한 주는, 담이 든 것이려니 했죠.

술잔을 잡은 손이 덜덜 떨리는 것이, '속이 비어서겠거니' '술을 많이 해서 기가 빠져서겠거니' 했습니다. 그러다, 맨정신에 빈 수저를 든 손에서도 힘이 빠지고 덜덜 떨리면서야 '아차!' 했습니다.

 

사흘에 한 번씩 2주째 되던 날, 처방전에 스테로이드제 "소론도"정이 보였습니다. 호전되지 않고 더해가는 통증의 호소에 대한 단기 응급 처방이었겠죠. 병중의 어머니를 버티게 해줬던 "소론도". 하지만, 그 처방을 받고는 한심한 마음이 몰려들었습니다.

'아이고…. 내가, 이것까지 처방받는 신세가 되었네….'

 

그 한심한 실체의 자각이, SNS 계정을 정리하고, 이 방도 닫게 했습니다. 온ᆞ오프의 모든 관계를 멈췄습니다. 술독에 빠졌습니다. 속이 뒤집혀 똥물까지 토하도록 먹었습니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다, 길거리에 주저앉아 있기도 했습니다. 꼭, 삼십 오 년 전 겨울의 내 모습이 되돌아와 있었습니다. 그러다 집으로 기어들어 오면, 약봉지를 집어던지고 몸이 아프건 말건 사림 없이 또 개처럼 쑤셔박혀 잠이 들곤 했습니다.

 

이번 주 들어서는 이틀에 한 번씩 병원에 가기로 했습니다. 까딱하면, 목에 칼을 대야 할 정도-란 의사의 말이 아니더라도-의 통증에 대한 현실적 고통 때문이었습니다.

 

꼭 해야 할 일이 있어 컴퓨터 앞에 앉으면, 자판 한 자를 두드리고 뒤로 벌렁 눕기를 반복했습니다. 벌렁 누워, 아픈 팔뚝을 주무르며 징징 울었습니다.

 

오늘 아침.

밥을 푸고 레인지에 데운 국을 떠서 쟁반에 받친 아침밥을 챙겨 들어와서는 안방 문을 열었습니다. 어느새, 백합이 활짝 벌어 향기가 온 방에 가득합니다.

불을 켜고 어머님께 인사를 드립니다.

'엄마, 잘 주무셨수? 아침 먹읍시다!'

화장대 앞의 영정이, 생시처럼 환희 웃습니다.

괜실히, 어머니 농의 빈 옷 걸이를 만져보고 빈 서랍장을 열어봅니다. 뒤돌아 나오는데, 주무셨던 머리맡에 놓여있는 어머니 살림살이가 발길을 잡습니다.

(베시던 베게, 아기 곰돌이, 사탕, 약, 의료기기...)

'에효...저것들도 다 정리해야 하는데...'

 

병원에 입원하시고 퇴원하시고 임종 하시기 전, 그 세 달동안. 못 난 아들에게 처음이자 마지막 받으신 효도, '글리셀린'.

지금 생각하니 효도는 고사하고, 얼마나 고통스럽고 자존심이 상하셨을까 싶습니다.

 

안방을 나서는 제 뒤통수에,

어머님이 혀를 차며 생시처럼 말씀하십니다.

"에이고, 못났다. 못났어!"

 

오늘은 병원 가는 날입니다.

아침 약이 없으니, 오전에 다녀올까 생각 중입니다. 까딱하면, 낮술하지 싶어서 이 또한 도박이지 싶습니다.

 

모두가 힘든 시간의 파도를 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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