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피리 부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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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2007.07.03~2023.12.30)

풀피리 부는 아이들

by 바람 그리기 2020. 9.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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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너 채 화장실에서 용변을 보고 오다가 벽 한쪽에 걸린 아이들 액자에 눈이 갔습니다.

 며칠 전 냉장고를 새로 들이며 손을 탔는지 우각 나 있습니다.

 벌어진 액자 틀을 바로 잡으려 떼어냈더니, 때가 고질 거리는 게 볼상사납습니다.  떼어 낸 김에 청소도 할 생각으로 안채로 들고 건너왔습니다. 

 

 액자를 손 보기 전, 잊기전에 약부터 챙겼습니다.

 어젠 아버님께서 잡수시고 가신 밥을 먹을 때까지 종일 목구멍에 거미줄을 쳤으니,

 약도 이틀만에 먹습니다.

 

 분해한 액자를 구석구석 꼼꼼하게 닦아 다시 조립하고 나니,

 '그자리 걸어놓아야 내가 닦기 전에는 또 꼬질 거리고 때가 탈 텐데...'라는 생각이 들어 그냥 안채에 걸어두기로 했습니다.

 그대신, 두 개이던 가족사진 하나를 떼어 바깥채 그 자리로 옮겨 달았습니다.

 

<풀피리 부는 아이들/4호/니콘2000/1996년>

 "풀피리 부는 아이들"

 1996년 9월 7일 토요일.

 24년 전, 추석을 2주 앞둔 토요일입니다.

 

 섭골 증조부모님 벌초하러 갔을 때의 사진입니다.

 간 낫 몇 자루를 챙기고 첫째 손을 잡고 둘째를 포대기에 엎은 아내와 함께 시내버스를 타고...

 

 아이들이 한쪽에 펼친 자리에서 잠을 자기도 하고 법면을 미끄럼틀 삼아 뛰어노는 동안 아내와 나는 벌초를 했습니다. 그때 잠을 자던 둘째가 오줌을 쌌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는 일을 왜 그렇게 꾸지람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24년.

 정말 벼락같이 흘러간 세월입니다.

 서른셋의 청년이 쉰일곱의 중년(친구들은 할아버지라고 하지만 아직 손주를 보지 않았으니...)이 되었습니다.

 시간은 나이의 숫자만큼의 속도로 지나간다는데,

 지금 흘러 보내고 있는 하루하루는 돌이키면 또 얼마나 빠른 것일까요?

 

 

 액자를 닦는 동안, 삼월이가 거실 문턱에 고개를 괴고 하염없이 무언가를 바라봅니다.

 눈이 닿는 곳에 걸려 있는 가족사진.

 아버님 어머님이 어젯밤에 다녀가신 것을 보기라도 한 듯싶습니다.

 참, 삼월이는 아버님을 뵌 적이 없네요.

 

 

 고삼월 여사,

 이젠 아예 거실 댓돌 위를 자기 집으로 삼은 듯싶습니다.

 며칠 전엔 바깥채의 신발 한 짝 까지 물어다 놓았습니다.

 지금도 이곳에 몸을 웅크려 말고 잠이 들어 있는데, 야멸차게 문을 닫을 수 없어 그냥 열어두고 있습니다.


 9호 태풍 마이삭이 올라온다더니 종일 바람종이 아우성였습니다. 

 지금은 비까지 보태져 그 소리가 꽤 요란합니다.

 새벽 3~4시 사이에 이곳을 지나간다니, 그 쏟아지는 빗소리의 장관에 오롯이 빠져들 수 있겠습니다.

 

 

 

 

 202009022400수

 낮에 담배를 사다 놓았어야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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