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갓 씌운 등 아래의 뻔디기 /늙음에 대한 소고/ 성봉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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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ㅁ사랑방

☆~ 갓 씌운 등 아래의 뻔디기 /늙음에 대한 소고/ 성봉수 ~☆

by 바람 그리기 2022. 8.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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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월이 언니께서 장 보는 사이 뒷짐을 지고 어슬렁거리다 통조림류 진열대 앞에 멈춰 섰습니다.
 쭈욱 훑어보다가 멈칫 놀랐습니다.
 예상은 하고 있던 일이었지만, 다양하게 2차 가공된 상품들.
 "뚝배기, 칼칼한, 김치..."의 머리말과 "탕, 조림..."의 꼬리말을 달고 있는.



 늙는다는 건 어찌 보면 시야가 좁아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새로운 것에 대한 정보의 유입보다는 그때까지 중첩한 정보를 활용하는 데에 더 익숙하고 치우칩니다. 그것은 신체적 노쇠에 따른 기억의 오류를 줄여 실패를 방지하려는 본능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스스로의 경험으로 검증하고 확신하여 축적한 데이터에 새로운 정보가 뒤엉켜 판단이나 결정에 일으킬 혼란을 막아서려는, 자기방어의 본능으로 말입니다. 

 "박이부정(博而不精) 정이불박(精而不博)"
 이십 오륙 년 전쯤, 온양 뒷골목의 어느 선술집의 혼술 중에 "박이부정 정이불박"의 화두를 잡고 습작을 남겼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술잔을 잡고 앉았던 식탁에는 높이를 조절할 수 있는 갓 씌워진 등이 매달려 있었습니다. 술잔을 넘기다가 시름없이 전등을 올렸다 내렸다 했는데요, 그럴 때마다 갓이 만드는 빛의 밝기와 그림자의 크기가 바뀌었습니다. 식탁 가까이 등을 내리면 식탁에 올려진 술과 음식과 메모지 안의 글씨가 선명하게 보이는 대신, 갓의 장벽에 막힌 식탁 밖의 모습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갓을 위로 올리면 그 반대였고요. 그 등을 몇 번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식탁에 올려놓은 메모지 안의 글씨와 식탁 밖의 모습이 모두 잘 보이는 적당한 높이가 어디쯤일까? 고민했습니다. 물론, 그때 느꼈던 "박이부정 정이불박"의 감정이 비단 소소한 어느 현상에 대한 고민이라기보다는 사람 살아가는 모든 관계에 대한 포괄적 의미에 방점이 찍혀 있었던 거고요.
 그림까지 그려가며 습작해 두었던 그때의 시는 끝내 세상 밖으로 나오지는 못했지만, 오늘 또 그 생각을 했습니다

 나이가 든다는 것.
 어쩌면 "식탁 가까이 점점 내리는 갓 씌운 등의 불빛"이지 싶습니다.
 물론, 그것이 늙음에 대한 보편적인 모습이라고 주장하기에는 제 개인적인 경험의 유추이니 억지가 있습니다. 어떤 이는 등을 더 높게 올려 하나하나의 직관 보다는, 비록 흐릿해도 전체의 모습을 각지지 않게 어우러 인식하려는 분도 계시겠고, 더러는 그때 저의 고민처럼 식탁도 주변도 모두 잘 보이는 적당한 높이를 찾아 박대정심(博大精深)으로 특출나게 사시는 능력자분도 계시겠고요. 



 뻔디기 한 통에 천 환.
 내용물이 아무리 중국산이고 용량이 비록 한숟가락쯤 될는지는 몰라도, 천 환이면 깡통값이나 나오려나 모르겠습니다. 언제, 뚝배기에 덜어 고춧가루와 청양고추 넣고 탕으로 끓여 술안주 할 생각으로 과감하게 세 통 잡아 왔습니다.
 <곤충가공식품>
 틀린 말이 아닌데 갑자기 뜨끔하며 <벌레 가공식품>으로 읽힙니다.
 <구더기 가공식품>까지 연결하지 않은게 다행입니다만...

 

 
 202208070615일
 이장희-그건 너 / 국민핵교 때 '디디기 뻔"으로 개사해 불렀던...
 작은 유모차를 개조해 연탄 화덕을 싣고, 포목점 입구에 앉아 뻔디기를 팔던, 근정이 어머님의 그 삼각 고깔 종이봉투가 생각나네. 해가 갈수록 점점 작아지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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