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구대에서¹ / 성봉수
-가면형 삼각 인물상²
1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고래를 타고 북두성(北斗星)으로 향했다 했으니, 나는 맞지도 틀리지도 않게 그의 시간 어디에 억지로 박제되어 서성이던 삼각의 회색 인간. 설령 가면이었더라도 이 못생긴 내가 무엇일 리 있었겠냐만, 인연의 옷 벌거벗고 하늘로 떠난 영매의 주검에 버릴 것 많은 나는 순장(殉葬)조차 되지 못하고 남겨졌도다
그가 춤추던 여기를 기억하는 것은 나뿐이리니, 갈 곳 잃은 바람은 6월의 붉은 자귀 꽃에 거미줄처럼 늘어져 이제 바다는 파도를 잃고, 침묵의 어두운 햇살만 소름 돋게 번쩍이는 이 골짜기 그늘에 혼자 남겨져 이렇게 잊히도다
그밤, 바람을 깨우려 두드리던 북, 뼈다귀의 무령(巫鈴) 소리가 내 오늘 위 어디서부터 석분(石粉)처럼 바스러져 쏟아지고 있는데,
2
아, 이제 화석이 된 내 검은 살점 한 덩이 뚝 떨어져
그의 마른 눈물에 닿아 지핀 깐드레³, 마지막 불꽃이여!
고래를 잡던 작살촉이라도 되었으면 된 일인데
잴 것 없이 매달려 대롱이던 벼름박
어제의 사내,
자꾸 내 옆을 본다
¹ 반구대 ; 국보 제285호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² 가면형 삼각 인물상 ; 반구대 인물 암각화 중의 하나, 삼각형의 얼굴 상으로 마치 가면을 표현한 듯하다.  ³ 깐드레 : 카바이드 등(燈). 반구대의 암석은 방해석(탄산칼슘_CaCO3) 성분인데, 여기에 석탄(3C)을 이용해 2차 가공해 얻는 화합물이 카바이드(탄화칼슘_CaC2)다. 카바이드를 물(H2O)을 담은 용기에 넣으면 고열과 아세틸렌(C2H2) 가스를 발생시켜, 용접에 쓰거나 주전자 모양의 기구를 이용해 등(燈)으로 사용했다.
20220614화반구대에서쓰고0620월깁고옮김
■ (계간)『白樹文學』 2022 여름호(99集)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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