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얄미운 개 / 성봉수 ~☆
본문 바로가기
끄적끄적/ㅁ물한잔

☆~ 얄미운 개 / 성봉수 ~☆

by 바람 그리기 2023. 9. 12.
반응형

 


 얄미운 개
/ 성봉수



 어느 해 봄 장날 개전에서 돌쇠 마누라로 간택 받은 개
 그 따스한 햇살 같은 호시절만 있기를,
 삼월이라고 이름 지은 마당 개
 중개가 되고야 2% 부족한 걸 알게 된
 띨띨한 개

 새끼를 두 배 빼는 동안
 빈 젖에 물고 매달리는 새끼를 피해
 도망 다니는 것도 알게 된
 아줌마가 된 개
 산후조리 하라고,
 내 손으로 전지우유 타 먹인 개

 서방 먼저 잡아먹고
 먼 하늘을 올려보며 한숨 쉬던 때,
 첫 새끼 장에 내고
 오래된 집 온 마당을 코를 끌며 기웃거릴 때,
 그렇게 우울증에 빠져 시르죽었을 때,
 먹이 떠먹이며 쓸어준 개

 빨래집게에서 참치 캔까지
 온갖 쓰레기 우리 안에 쌓아 놓는 개
 징그럽게 쓰레빠 물고 가는 개

 성씨(成氏)네 구력(狗歷)에 유일,
 목욕을 한 개
 이름표를 단 개
 개 껌과 간식을 먹는 개
 드레스와 선글라스와 모자를 쓴 개
 집 안에 들어오는 개
 집 안에 들어와 자빠져 있는 게 권리가 된
 참 특별한 개

 내가 들고 날 때엔 미동 없이 우리에 처박혀
 눈깔을 홉뜨고 의뭉 맞게 쳐다보지만
 다른 이가 들고 날 때엔 꼬리 풍차를 돌리며
 앓는 소리를 내는
 서열을 착각하는 몹시 건방진 개

 안채에 딱 두 번 에어컨 켠 올여름
 에어컨 팡팡 트는 바깥채에
 배 깔고 쪽 뻗어 시원하게 지낸
 팔자 좋은개

 생선 가시도 안 먹는 개
 족발 뼈다구도 안 먹는 개
 나도 못 먹는 계란찜
 사료통에 수북하게 쌓여 있는 개
 그러고 입도 대지 않는
 입에 금테 두른 정말 이상한 개

 집에 사람이 없으면 누가 와도 안 짖는 개
 집에 사람이 있으면 잡아먹을 듯 짖는 개
 아줌마가 되었어도 정말 2% 부족한
 겁 많은 개

 꼭 안채 현관 앞에 용변을 보고 내빼는
 희한한 개
 지금은 2% 부족한 여우가 된
 사람인 줄 아는 개

 뒷방 노인네보다 더 대접받는 삼월이,
 진짜 얄미운 개


 202309041501월쓰고옮김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