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수 오동도 동백섬 / 바람 그리기 ~☆
본문 바로가기
낙서/┗(2007.07.03~2023.12.30)

☆~ 여수 오동도 동백섬 / 바람 그리기 ~☆

by 바람 그리기 2018. 2. 9.
반응형

 

 

 

컵라면을 안주 삼아 소주 한 병을 먹다 그냥 쓰러져 잠이 들었습니다.
그러고 눈을 뜨니 네 시가 막 지났습니다.
욕조에서 물 넘치는 소리가 납니다.
부스스 일어나 어제 먹다 남긴 식은 커피에 담배를 한 대 먹고,
욕조에 들어가 몸을 지졌습니다.
주섬주섬 짐을 챙기고 다섯시 반쯤, 서둘러 여관방을 나섰습니다.

 

요 며칠 날이 풀렸다지만, 새벽 바닷가의 바람이 맵습니다.
어젯밤에 미리 다녀갔던 경험으로 백백을 공원 입구 무료 짐 보관소에 넣어두고
방파제로 접어들었습니다.

 

선운사 명부전과 대웅전에서도 그랬고,
유달산 일등바위 아래에서도 그랬고,
화개장터와 최 참판 댁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동백 군락지 사이로 난 산책로로 올라서며
주머니에서 방울을 꺼내 손가락에 걸고 흔들었습니다.



어머니 유품을 정리하다,
문갑 안 상자에 담겨 있던 것을 버리지 않고 가지고 있다가 이번 노정에 주머니에 넣어왔습니다.
어느 해인가, 크리스마스 장식에 쓰였던 것 같은데 그것이 이쁘셨는지 아니면,

굴러다녀서 챙겨 놓으셨던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텔레비전을 이고 있는 오래된 문갑은, 오롯이 어머니만의 세상이었습니다.
용채를 넣어드린 지갑과 동전 꾸러미와 사진과 잡다한 소품들을 챙겨두셨는데,
용채를 확인하려고 어쩌다 열어 볼 때마다 놓인 위치가 바뀌고, 용채가 없어지고, 없던 물건들이 자리를 차지하곤 했습니다.

'엄마, 매일 잠만 주무시는 분이 도대체 언제 이걸 열고 또 살림하셨어? 돈은 또 다 어디다 감추셨데? 엄마, 떨어지면 다시 채워드릴 테니 제발 딴 곳에 감추지 좀 마요. 다른 곳에 두면 찾지도 못하면서 왜 자꾸 감춰요!'
한동안은, 쓰지도 않으시면서 자꾸 없어지는 용채에만 신경을 쓰고 볼멘소리를 했습니다.

그러다가, 그곳과 그것이 어머니만의 유일한 세상이고 행동인 것을 알았습니다.
내가 잠에 빠져 있거나, 주무시는 것을 확인하고 내 방에 건너와 컴 앞에 앉아 있는 밤 동안,
어머니는 부스스 일어나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을.

기억하고, 만들고, 꿈꾸고 계시다는 것을요.

 

마치 소꿉놀이하듯, 시때때로 들여놓고 꺼내고 옮기며 가지런히 정리해 놓으시는….
누구에게도 간섭받고 싶지 않은 엄마의 유일한 비밀 공간.
그래서 그 후로는 가끔 열어 지갑만 확인할 뿐, 이러니저러니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어머니의 문갑에서 나온 방울이니 제겐 특별한 것입니다.
그 방울을 흔들면 어머님의 혼령을 부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무령
巫鈴이라해도 좋을 일입니다.

 

 



"여수 오동도 동백꽃"의 말씀을 들은 것은 아주 오래전 부터의 기억입니다.
아마도 제가 어머니 무릎을 베고, 엄마가 흥얼거리시던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를 듣던 초등학교 무렵부터이지 않나 싶습니다.



"이만 때 여수 오동도에 가면, 동백꽃이 활짝 핀다던데…."
"꽃 핀 모습이 장관이라던데…."

제 기억으로는, 섭골의 작은할머니께서 딸들과 함께 다녀오시고 하신 말씀으로 짐작하는데.

어쩌면 친구분들의 말씀을 전해 들은 것일 수도 있겠지요.



그렇게, 제가 어릴 적 부터 하시던 말씀을 성인이 될 때까지 반복하셨습니다.
텔레비전에서 동백꽃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늘 그러셨습니다.



재작년 이었던 것 같습니다.
'엄마, 내년엔 오동도에 동백꽃 보러 갈까요? 기차 타고 밤에 갔다가 오면 되죠'
"그래, 가자"

'그래요, 목포가서 유달산 공원 구경하고 오동도 가서 동백꽃도 보고 오자고요'



평소 같으면, 멀미를 염려하셔서 가까운 곳의 나들이도 마다하시던 어머니께서,
선뜻 가시겠다고 하는 대답을 주셔서 으아 한 생각도 들었지만,
꼭 모시고 다녀오리란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게 다짐을 먹고, 어머니 컨디션이 흐트러지지 않게 살얼음판같이 조심조심 애를 쓰며 겨울 맞고 해를 넘겨 작년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동백꽃 필 무렵의 어머니 컨디션이 먼 노정을 감당하기엔 버거울 상태가 되었습니다.
욕심을 내서 억지로 모시기엔 겨울 나들이가 무리다 싶어 한 해를 더 넘기고 올해를 기약했습니다.



그러고 맞은 작년 겨울의 초입.
그렇게 보고파 하시던 오동도 동백꽃을 보지 못하시고
영원히 제 곁을 떠나셨습니다.



일곱 자식 거두어 보살피고 사람 만드느라 평생 푼푼한 나들이 한 번 못 하신 엄마.
눈 속에 핀 동백꽃처럼 겨울을 봄으로 맞아 사시다가
정작 봄이 오는 것을 보지도 못하고 꽃망울을 떨구고 말았습니다.

 

'엄마, 이것 좀 보세요. 엄마가 그렇게 보고파 하시던 여수 오동도의 동백꽃 좀 보세요!'
캄캄한 산길을 걸으며 드문드문 핀 꽃 송이 아래에 서서 방울을 흔들었습니다.

 

 



동백섬 정상 근처의 등대를 끼고 대숲 사이로 돌아서 내려가면
바위 위에 펜스를 만들고 "해맞이 장소"라 안내된 곳이 나옵니다.

 



나무 계단이 살짝 얼어있어 조심조심 내려와 마지막 계단에 걸터앉아 일출을 기다렸습니다.

기다리고 앉아,
어머니 생각…. 이런저런 생각…. 들을 했습니다.


날이 밝아오고 멀리 "통통통" 소리를 내며 배도 지나갑니다.
-그러고 보니, 왜 배는 통통통 소리가 날까요?-
 



일출 시각이 7시 40분 무렵이었고 날은 밝아졌는데도 해는 어디에 숨었는지 소식이 없습니다.

 

미세먼지나 황사에 가려져 보이지 않나 싶어 일어서려는데,
여덟시가 다 되어서 빼꼼하게 해가 보입니다.
조금 더 기다린 보람이 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곳에서 구름과자 하나 몰래 먹었습니다.
과자를 다 먹을 무렵 해가 솟았습니다. 

 

날이 밝으니, 활짝 핀 동백꽃이 그제야 제 모습을 보입니다. 



제가 갔을 때는 개화 시기가 아직 되지 않은듯싶었습니다.
목포 유달산 동백이 망울만 맺힌 것을 보고 갔으니 대충 짐작은 했지만요.

 



군락을 이룬 고목에는 개화된 것보다 망울로 맺힌 것이 더 많았습니다.

 




설령 군데군데 개화된 것도 나무가 높다 보니 폰 카메라로 자세히 찍는 일은 불가능하더이다.

 



그나마 폰에 옮길만한 키 높이로 핀 꽃은,
키가 작은 개량종 인듯싶었습니다. 

 

그중 꽃이 많이 핀 나무를 골라 찍어봤는데….



 

"갯바위"로 안내된 곳을 들렀다 다시 올라와 이순신 광장 쪽을 향해 내려갑니다.
중간에 뭐 이런 것도 있네요. 



남근목 이랍니다. 영어 설명을 보고 웃었습니다.



오동도와 동백꽃의 전설을 설명하는 비석도 보입니다. 

 



날이 추워 마스크를 쓰고 다녔더니,
안경에 김은 서리고 꼴이 말이 아닙니다. 

 



 



산 아래로 내려서기 전에 제대로 핀 이쁜 꽃을 찾았습니다. 

 

집을 나설 때의 생각은,
이 방울에 어머니의 혼령을 담아 동백꽃 화사하게 핀 가지에 모셔두고 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러기엔 바람이 너무 차고 거세고 너무 멀리 떨어진 곳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냥, 선산 선영 아래 진달래 가지에 걸어두는 것이 옳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 뒤로 보이는 뾰족한 탑이 있는 건물이 동백기념관인데요, 작은 찻집과 식당도 있는 것 같던데 시간이 일러 어느 곳도 문 연 곳이 없었습니다. 따뜻한 커피라도 한 잔 먹고 싶었지만….



저 건물의 우측으로 난 군락지 산책길을 내려서면 이곳 이순신 광장에 도착합니다.
제 뒤로 보이는 곳이 동백 열차 타는 곳이고요. 

 

광장을 뒤로하고 맞은 편이 여수항입니다.
여수항을 막 출발한 여객선이 보이네요

지난밤에,
차가운 바닷바람에 안겨 파도 소리와 함께 캔맥주를 먹던 곳입니다. 

 



광장 한쪽에 전시된 거북선과 판옥선의 조형물입니다.
그 왼편으로는 분수광장이 있는데,
겨울철이라 운용하지 않더군요. 

 



방파제를 나와 공원 입구 한쪽 벽면에 붙어 있는 표지판입니다.
지난밤과 새벽에는 날이 어두워 보지 못했던 것이라서
기록으로 남기려 찍어봤습니다.

처음 찾는 분이라면, 섬과 꽃에 담긴 이야기를 먼저 알고 걸음 하시는 것이 나을듯싶어서요.




제가 오동도를 다녀온 것이 거의 한 달이 되어가니,
지금쯤이면 오동도의 동백꽃이 만개했을 겁니다.
어쩜, 이미 모두 떨어져 구르는 것이 되어있을 수도 있겠고요.

 

그때,
방파제에서 나와 백백을 찾아 매고 "식당에 들어가 요기를 할까?" 생각하다가,
식당 맞은편 시내버스 승강장에 앉아
한참을 앉아 있었습니다.

지나갔던 버스가 다시 몇 번을 지나가면서 기사가 의아한 눈으로 내다볼 정도로,
한 시간이 넘도록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20180119
 동백아가씨/조아람

 

 

 

동백아가씨-조아람.k3g
4.10MB

 

 
동백아가씨-조아람.k3g
4.1MB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