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항 죽도시장, 구룡포, 울산 호미곶 / 바람 그리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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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2007.07.03~2023.12.30)

☆~ 포항 죽도시장, 구룡포, 울산 호미곶 / 바람 그리기 ~☆

by 바람 그리기 2018. 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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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도 동백섬에서 창녕과 대구를 거쳐 도착한 포항.
새벽 일찍 일어나 밤 한 시가 다 되어 잠자리에 들었으니 피곤했던 모양입니다.
술 탓도 있었고요.
폰에서 알람이 울려 일곱시 무렵에 눈을 뜨고도,
굼지럭 거리다 9시가 넘어 10시가 다 되어서야 여관에서 나왔습니다.

 

볼 곳이 한두 곳이겠습니까만,
포항에 들렀으니 이곳 바다는 보아야겠고
'죽도시장'이란 곳의 물회가 유명하다니 그곳에서 점심을 먹으면 될듯싶어
죽도시장을 향해 걸었습니다.

 

지도 검색으로는 도보로 한 시간쯤 걸리는 거리였는데,
다리가 아프면 아무 곳에나 걸터앉아 담배도 먹으며 쉬엄쉬엄 천천히 걷다 보니
거의 시간 반쯤은 걸은듯싶습니다.

 

걷는 길이 춥기도 하고 지루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돌아보니,
집을 나선 후 머릿속의 생각을 하얗게 비울 수 있었던,
처음이자 유일한 시간이었습니다.



"총각, 물회 맛있게 해요. 들어오소!"
마스크와 색안경으로 가린 안경과 벙거지 밖으로 삐져나온 머리칼 때문이었을까요?
졸지에 총각도 되었습니다.

 

(...저거 우리 연정이 사다 주면 잘 먹을 텐데...)

진열된 젓갈류를 보면서 잠시 생각했지만, 챙기지 못했습니다.
"총각" 별호를 붙여 준 식당에도 들어서지 않았습니다.
맛집 투어를 나선 것도 아니고, 저 자신의 양심도 찔리고….
무엇보다, 팔자 좋게 별스러운 음식을 짭짭거리고 있는 내 모습이,
돌아가신 어머님께 미안하고 용납할 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일행이 있었다면야 상황이 틀렸겠죠.



사람 사는 모습이야 거기서 거기지요.
구경꾼 반, 장꾼 반인 시장 안길을 이것저것 둘러보며 빠져나왔습니다.

 

선창가 옆 공영주차장 벤치에 앉아 갈매기들 싸우는 모습을 보며 담배를 몇 대 먹고,
어로작업의 뒷마무리를 하는 고단한 노동의 손을 보며 '생선값 참 싸다'는 생각도 하고....
시장 옆길을 되돌아 시내버스 승강장을 향해 걸었습니다.
찜통에서 막 꺼낸 게를 보며 침을 꼴딱꼴딱 삼키면서요.

 

이곳까지 왔으니, 내륙의 동쪽 끝 호미곶은 다녀가야겠습니다.
어젯밤에 검색해 둔 것도 있고, 시간도 적당하게 걸리고.





지도에서, 포항공항 근처에 시내버스 표시가 된 곳이 도구2리인데요.
저곳에서 호미곶 행 '동해 지선'으로 갈아타야 합니다.

정류장에 내려 편의점에 들려 시간을 확인하니….
"거기 가는 차가 하루에 몇 대 없는데요? 한 시간 40분 기다리면 한 대 있네요"
헐….
해안선을 끼고 운행되는 노선이니, 잘 되었다 싶었는데….
또 시작된 기다림,
난감합니다.
마침, 버스를 기다리는 어르신이 보여 경로를 다시 확인하니,
"고래 가는 차가 있나? 없을낀데?"
본인이 편의점에 들어가 다시 확인하고 나와 알려줍니다.
"고래 가지 말고, 구룡포로 가서 대보 가는 차를 타입시더. 구룡포에 가모, 대보 가는 차가 한 시간에 한 대씩은 있으니까네, 여기서 기다리느니 거기 가서 구경도 하고…."

 

아…. 사람 등신 되기 참 싶습니다.
본인도 구룡포로 가는 중이니, 당신이 타는 버스를 함께 타면 된답니다.

 

▼구룡포 터미널 시간표.



2; 40분 차.
정확하게 한 시간 후에 차가 있습니다.
터미널이라 부르기엔 그렇고, 버스 네 대쯤이 정류할 수 있는 차부 같은 곳이 시내 한복판에 있습니다.
차부 한쪽 구석엔 컨테이너로 만든 승객 대기실이 있는데요,
날이 추워서인지 기다림이 지루해서인지,
학생 어른 할 것 없이 모두 졸고 앉아있더군요.

 

차 시간을 확인했으니, 뭘 좀 먹어야겠는데….
과메기 식당이 호황일 것이라 생각했더니,
눈에 보이는 것은 '게'를 쪄서 파는 곳뿐입니다. 제 철인지 어쩐지….

-나중에 호미곶에서 돌아오며 보니, 차부에서 오분쯤 떨어진 자그마한 광장에 천막 열댓 개로 부스를 만들어 놓고 과메기 축제를 하고 있더군요.-

 

"경기가 어떻고, 사는 형편이 어떻고…."
최저임금 인상을 놓고 죽는 소리를 하여도, 없는 놈은 평생 똥구멍이 째지도록 식구녕 걱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사람은 평생 부족한 것 없이 펑펑거리고 사는 모양입니다.
그 비싼 대게를 먹겠다고 일부러 찾아온 사람들이 문전성시를 이룬 것을 보며,
생각이 쬐끔 복잡하더이다.



로터리 건너에 중식당이 한 곳 보여 그곳에서 허기를 달래기로 했습니다.
명색이 바닷가이니, 짬뽕에 해물이라도 하나 더 들어갔으려니…. 하고요.
웬걸!
어이구...냉동 알 홍합 너덧 개에 오징어 몇 개.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었습니다.
(하긴, 이곳까지 와서 도로변 허접스러운 중식당에서 짬뽕 먹을 놈이 몇이나 되겠어. 변두리 배달 장사나 하는 곳이겠지….)

 

식사를 마치고 관광안내소 앞에 놓인 팸플릿을 확인하니,
시장 안에 "모리 국수"인가가 맛 보고 갈 특산품으로 소개되어 있더군요.
알았어도, 일부러 먹으러 가진 않았겠지만요.
그나저나, 팸플릿을 하나 챙기려고 안내소 앞으로 다가서는데요.
그런 나를 보고, 안에 앉아 폰을 보고 있던 아주머니(인지, 공무원인지, 자원봉사자인지….)가 조금 열려있던 창을 손가락 하나쯤 들어갈 만큼만 남기고 닫아버리더라고요.
(헐…. 여기 왜 나와 앉아있지?)



일본인 거리도 있고, 과메기 문화관도 있고, 시내를 둘러싸고 올망졸망 이것저것 볼거리들이 있던데….
일부러 나서지 않고 차부 근처에서 바닷가만 어슬렁거리다가 호미곶으로 출발했습니다. 

 

드디어 호미곶에 도착했습니다.
배차 간격이 길어서 그렇지, 구룡포에서 얼마 안 가 바로더군요. 



저처럼, 시내버스를 이용한 사람들만 마주할 수 있는 표지석입니다.
대부분이 자가용으로 주차장까지 들어가니,
입구에 있는 이 표지석은 못 본 사람이 많을듯싶어요.

뒤로 보이는 둥그런 조형물이 "새천년기념관" 건물이고요.

 



광장에 들어서 중간쯤에 있는 "육지의 손"입니다.

그 앞으로 둥그런 조형물 앞쪽엔, 뭐 "무슨 불" "무슨 불" "무슨 불"이 타고 있는데.
뭐, 그렇다는 얘기고.

 



"육지의 손"을 등지고 바라본 "바다의 손"이고요.
평일에도 개떼처럼 사람이 많은데, 연초 일출 때는 얼마나 많을까요?



바다의 손을 바라보며 육지의 손 우측에 있는 "연오랑세오녀'의 조형물입니다. 

전설이 궁금하신 분은 검색해 보시고….  

 



남의 눈으로만 보던 '바다의 손'을 마주 보고 섰습니다.
주변에 사람들이 개떼같이 있었는데, 잘 찍었죠? 

 



죠오기,
사진에서 좌측에도 사람들이 개떼 같이 매달려 있습니다. 

 



돌아 나오며, 이쁘게 잘 생긴 호미곶 등대에서 한 컷.
등대박물관도 함께 있었던 거로 기억하는데,
차 놓칠까 싶어 그냥 패쓰.

 



이 비석도, 주차장 외곽 화단 한쪽에 있어 본 사람이 드물지 싶습니다.
몇 해에 걸쳐 국토순례 릴레이를 한 기록인데요,
혹시 그럴 분(학생)이 있으면 도움이 되지 싶어 남겼습니다.

 





"새천년기념관' 꼭대기의 전망대에 올라 동해를 바라보고 올까? 싶었다가,
입장료도 아깝고…. 그 바다가 그 바다지 싶어 20분 일찍 나와
다시 구룡포로 돌아가는 시내버스가 오기를 기다립니다.

 

구룡포에 도착하니 마침 포항으로 가는 버스가 바로 연결 되었습니다.

포항에 도착하니 이미 날이 어두워졌습니다.
죽도시장에서 내려 또 한 20분을 기다리다, 시내버스를 갈아타고 포항역에 닿았습니다.



호미곶을 다녀오기 전까지의 계획은,
"동해" 쪽을 타고 올라가 강릉-현송월 만날뻔 했습니다-이나 속초를 거쳐 서울에서 인천에 들렀다 서해안 쪽으로 돌아오는 것이었습니다.

오징어도 한 축 사고,
광화문 돌담길을 걷고,
연안부두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비린 식모커피라도 한잔하고….

 

포항역사에 도착하니,
그 모든 일정이 아무런 의미 있는 행동이 되지 못하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태 것의 모든 노정이 그러했습니다.
관념의 깊은 몰입이 되지 않았습니다.
시간을 복기하고 정돈하는 것도 불가능했습니다.
비운다는 것은 턱도 없는 얘기였고,
헝클어져 꼬인 자아의 한 매듭도 풀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 것 하나도 올곧게 잡고 선 화두가 못되었고,
어느 것 하나도 치유가 되지 못하였습니다.
어쩔 수 없이 등을 떠밀려 걷고 있는 것 같이,
쥐약 덜 먹은 개가 눈에 퍼런 불을 켜고 동네방네를 뛰어다니는 모습 같았습니다.

 

'다시 못 올 길이라도, 더는 의미 없는 부유를 이쯤에서 멈추자. 차라리, 집 방바닥에 달라붙어 담배에 찌든 이불을 덮고 깡소주를 마시며 유폐의 자학에 빠지더라도, 그냥 지금은 이대로 나를 내버려 두자'

 

미련 없이 집으로 향하는 표를 끊고 기차에 올랐습니다.

언젠가는,
이 부질 없다던 시간도 그리울 날이 오겠지….

 

 2018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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