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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 성봉수
국화 모종을 뜰에 심었다는 날
나는 우체국 계단을 내려서던 중이었지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쓴 시인의 편지는¹
가난한 가인(佳人) 덕에 시가 되었는데²
그대의 뜰엔 언제나 따사로운 햇볕이 내리고
유혹 같은 바람과 달콤한 우수(憂愁)가 창을 두드릴 터이니
가난하지 않을 일이라
나는 또 가을의 몸살에 턱을 괴고
서리에 풀죽은 맨드라미를 어르다
가만한 봄볕의 그대를 문득 그리나니
욕심은 이제 조락(凋落)하여라
나의 가인은 가난하지 않으니
시가 되지 못한 나의 연서(戀書)는
삼생을 떠도는 메아리가 될 터이나
그대로의 햇살
그대로의 바람
그대로의 비
그대는 언제나 내게
쓸쓸히 돌아서는 애련(愛戀)의 편지
¹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쓴 시인의 편지 : 靑馬 유치환 詩「행복」
² 가난한 가인(佳人) 덕에 시가 되었는데 : "청마 시인은 생전에 시조 시인이었던 이영도를 무척 사랑했으나 함께 할 수는 없었다. 이미 가정을 이루었기도 했으나(중략) 시인의 연애편지가 이영도에 의해 책으로 만들어져 나올 때 '그런 편지는 혼자만 가지고 있는 게 좋겠다'라고 나서서 말렸더니 당시 경상도에서 갓 올라온 이영도는 망원동인가 하는 곳의 영단주택에 살고 있었는데 그 집값을 갚기 위해서 어쩔 수 없다는 대답이었다"-성기조 著 『문단기행』에서.
20211022금쓰고20211023토상강깁다.
■ 『세종문단』 2021 (2호)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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