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부 마치고 철수하기 전, 담배 물고 주변을 한번 휘이 둘러보는데.
밭 두덕을 베고 잘 말라가고 있는 들깨.
한 줌을 훑어 비빈 양손을 코에 덮는다.
소라 껍데기에서 들려오는 파도 소리처럼 먼 기억에서 밀려오는 것들.
타작하는 들판의 탑시기 냄새.
도리깨질.
치 까부는 소리.
가을걷이가 끝날 무렵 밀레의 만종처럼 붉어지던 들판 끝의 하늘.
억새 모가지에 걸려 기울어 가던 해.
아궁이 불내를 안고 하나둘 밥 짓는 연기가 피어오르던 동네. 그 동네를 바라보던 뒷동산 솔밭의 바람 걷는 소리.
...
장지문을 넘어서는 밝은 달빛.
앞 내 물소리와 뒷산 부엉이 소리. 멀리 개 짖는 소리, 그 밤의 모든 소리를 지휘하던 시계불알 소리...
할아버지 연초 냄새, 메주 냄새, 윗방 맷방석 안의 병아리.
.
.
.
할머님, 할아버님. 그리고...
그렇게 되어가는 얼굴.
귀가하는 길.
벼를 수확하는 콤바인의 바쁜 걸음.
논둑 한쪽에 허름한 옷을 입은 노인 한 분이 썰렁하게 앉아 바라보고 있다.
바가지 그릇을 주렁주렁 매달고, 들판으로 참 내러 가는 리어카 뒤에 매달린 어린 내가 보인다.
품앗이가 단순한 미덕만은 아니었겠지만,
등 굽은 노인이 혼자 지키고 앉은 가을 들판.
기억하는 이도 사라져 가는 어제가 너무 쓸쓸하다.
일정으로 꽉 맞춘 하루.
코로나 이전부터 "한 번 봤으면..." 하시던 고명한 노 작가님은, 약속 없던 노정에 어긋나긴 했지만 다음 몫을 넘겼으니 되었는데.
계획했던 빨래, 어항 물갈이는 또 뒤로 밀렸다.
자정 지나 눈 떴다가 잡부 나갈 생각에 억지로 두 시간 더 궁그적거렸으니 죽지 않을 만큼은 잤다.
실내화 빨아 넣어둔 게 어제 같은데, 꺼내 신기는 아직 이른 듯도 하고...
202210190357수
임희숙-상처
아이고 발시려라... 속은 또 왜 씨린 겨?
-보일러 기름.
-어항 물갈이 -큰 누님 묘소.
-강 작가님
-미디어센타 실측(이 상 시인 동행) -성원출판(디자인, 견적서)
-빨래
-우체국
-by, ⓒ 詩人 성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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