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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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2007.07.03~2023.12.30)

아깝다.

by 바람 그리기 2022. 10.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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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떡 한 조각과 삶은 파치 고구마 몇 조각으로 아점을 먹었더니 시장하다.
 시장함은 늘 그렇듯 일단 뇌 감각으로 인식한 순간부터 그 정도가 다세포 생물의 세포분열처럼 급속하게 커져 허기 이외의 모든 사고를 밀어내고 내 인식의 전부를 차지한다.
 얼른 밥을 해야겠다.
 어제 씻어 놓고 술밥 약속 잡혀 밀어두었던 쌀을 밥통에 안치고, 풀숲에 웅크려 먹잇감을 노리는 호랭이처럼 부엌문 앞에 앉아 기다린다. 눈은 티브이 뉴스에 두고 감각의 귀는 부엌 쪽으로 한껏 젖혀두고 말이다.
 
 이상하다.
 허기의 지각이 물리적으로까지 발현돼 가끔 어지러움을 느낄 정도로 기다렸는데 쿠쿠 아줌마 목소리는 물론이고 추가 딸랑이는 소리도, 김 빠지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뭘 잘 못 눌렀나?'
 부엌으로 들어가 살피니 <보온 중>으로 전환되어 있다.
 '장난 지금 나랑 하니?'



 친구가 쓰다가, 늙어 소박맞아 마당 건너 먼지 구덩이 창고에 쑤셔 박힌 것을 모셔다 동거를 시작한 쿠쿠 아줌마.
 열에 다섯은 증기 배출이 되지 않아 손으로 추를 재켜 김을 빼가며 쓰고 있는데, 추가 딸랑거리지 않은 것은 씻어 물 잡아 놓은 지 오래이니 물량이 기막히게 맞아 그렇다 치더라도 벙어리가 된 것은 처음이다.

 어쨌거나 어머님 제사 모신 언저리이니 산해진미 반찬을 거하게 차려 방금 지은 밥과 맛나게 먹었는데, 풀숲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웅크렸던 호랑이가 기껏 쥐 한 마리 사냥한 것처럼 뭔가 2% 부족하다.
 과자 부스러기 몇 개와 귤을 보태도 채워지지 않는다. 마침 티브이에서 라면 먹는 모습이 나온다. 그 후루룩거리는 소리가 마법사의 주술처럼 나를 이끌고 부엌에 서게 했다.

 원래는 반 개만 삶아 먹을 생각이었는데, 무심코 뜯은 라면의 스프가 액상이다. 그걸 반 갈라 쓰기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버리기는 아까우니 그냥 한 개를 다 삶았다.

 상을 뒤로 밀어 놓고 열린 컴과 티브이와 거실 불 부엌 불도 모두 켜놓은 그대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잠들었는데, 알코올기 없는 맨정신이라는 것만 빼면 평상이랑 전혀 다를 것 없는 특별하지 않은 일이다.
 '이 닦아야지. 닦았나?' '설거지 해치워야지...' '청탁 원고 써야지...' '아이고 어깨 아파라...' '잠 참, 그지 같이 자네...' 무의식 안의 의식이 밤새 중얼거렸으니, 단 한 차례도 취하지 못하고 생시에 가까운 램의 파고에 올라타 볼 것 없이 연신 눈알을 굴리고 있었을 거다.



 "아깝다"
 어깨를 두드리며 일어나 앉아 중얼거린 첫마디.
 흘러버린 추상적인 시간에 대한 탄식은 흔히 있는 일이지만, 오늘과 연계된 방금의 행위에 대한 이런 감정은 처음이다. 그 아까움의 정체가 불면으로 허비한 잠이라는 신체적 욕구에 대한 단편적 대상이었는지, 내 생의 절댓값에서 잠을 위해 할당된 아까운 시간의 무의미한 허비에 대한 것이었는지 분명치 않지만, 정말 아깝다. 

 

★~ 詩와 音樂 ~★ 내가 누구의 무엇이 될까 / 성봉수

내가 누구의 무엇이 될까 / 성봉수 그날이 그 사람이 내게로 와 詩가 되었네 나는 흐린 날의 구름 속에 머물다 낙조처럼 잊혀 가는데 나의 오늘아, 나의 사랑아, 누가 나를 기억하여 詩가 되겠나

sbs150127.tistory.com

<ㅇㅇ읍 성봉수>만 써도 들어오던 우편물. 광역시가 된 지금도 가능한 일인지...


지금 내게 아까운 것이 과연 무엇인가?
단 한 번이라도,
나는 누구의 아까움이 되었을까...

 

 
 202210151448토
 김경남-님의향기
 언제나 내 편인 바람종.
 길게 누운 평화로운 햇살.
 아까움,
 아마도 어제 하기로 마음 먹었던 일들을 하나도 하지 않아서였는지 모르겠다.

● 아깝다(형)
1 소중히 여기는 것을 잃어 섭섭하거나 서운한 느낌이 있다.
2 어떤 대상이 가치 있는 것이어서 버리거나 내놓기가 싫다.
3 가치 있는 대상이 제대로 쓰이거나 다루어지지 못하여 안타깝다.

-by, ⓒ 詩人 성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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