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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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ㅁ사랑방

기억하다.

by 바람 그리기 2024. 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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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잡부 마치고 돌아오는 길.
 서산과 예산 사이의 어디 들판에, 어둠의 물에 잠기려는 불티처럼 마지막 숨을 몰아쉬고 있는 고단한 하루의 숨 가픈 잔영.


 화물차 조수석, 아무렇게나 닦아낸 지저분한 차창 너머로 그려지는 그 찬란한 소멸을 턱을 괴고 바라보다 문득,

 '허무하다'
 '보고 싶네...'

 ...
 '주말마다 산행하고 지리산 종주를 했으면 무엇하나...'
 '매일 반신욕 전에 108배를 올렸으면 무엇하나...'
 '잘 키워 출가시킨 두 아들 잘 살고 있어도 무엇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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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 갤럭시 S24 울트라 실물 영접 처음인데! 아들 잘 뒀네!"
 탑시기 뒤집어쓴 누더기와 장화 신은 그대로, 여우 언덕에 도착하며 이내 자리 잡은 친구와의 삼겹살집. 아드님의 생일 선물 새 핸드폰에 대한 과한 칭찬에 이어,
 "요즘 박 면장 자주 만났니? 어째 자꾸 건배 제의하는 것이 꼭 박 면장 스타일 닮아가는데?"라며 급하게 잔 비우는 내게 건네는 반문.

남매 삼겹살/준,환.

 노동 끝의 갈증과 허기가 그 이유의 대부분이었겠으나, 연거푸 소주잔을 비우는 자리 내내 머릿속에 맴돌던 말.

 '적어도 님자에겐 삶은 가혹하고 운명은 냉정하였네. 하지만 기억하시게, 내 눈 감는 순간까지 착한 사람으로 님자를 기억하는 이런 사람 하나 있다는 거...  님자의 간절한 핏줄도 아닌 나라는 우주에 어쩌다 마주한 푸념 같은 시구로 인연을 맺어, 이토록 선명하되 버겁지 않고 진실하되 단출한 인연의 발자국을 남겼으니, 설령 인연의 끝은 가혹하고 냉정하였으되, 사람으로 머물던 그 짧은 시절을 결코 혼자 걷던 외롭고 덧없는 여정이었다고 생각하지 마시게나'

 

 
 202402030807토
 Makiko_Hirohashi-Tedium_Of_Journey-여정

 -by, ⓒ 성봉수 詩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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