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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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2007.07.03~2023.12.30)

남의 일.

by 바람 그리기 2021. 7.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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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장 쪽으로 빠진다.
 장날이다.
 장날이라서가 아니고 달팽이 약을 살 겸, 금 살펴보고 오이 몇 개 살 생각으로 자전거를 끌고 나왔다.
 지난번 떨이한 뭉치 사다 담근 오이지 소금물이 아까워서다. 여름엔 찝찔한 오이지 냉국이면 아무것도 필요 없다.

 두리번거리며 시장을 가로질러 귀가하다 절편 한 팩을 샀다(2.500원). 먹고 싶어졌다. 떡을 사 보기는 처음이다. 라면과 군 달걀 두 개의 하루가 다 저물었다는 신호다. 허기가 꿈틀거린다는 얘기다. 장날에 허기까지 충만했지만, 방앗간을 지나쳐 돌아왔다. 잇몸 여기저기에 재봉질해 놨으니 부담스럽다.

 

 저녁상이다.
 훌륭하다.
 반을 먹고, 먼저 절궈 놓은 오이지 건져 봉지에 담아 냉장고에 일단 넣어 놓고 소금을 끓여 오늘 산 오이에 부어 놓고.
 함께 사 온 마늘종 반 갈라서, 반은 고추장 양념에 버무려 놓고 반은 어묵 얇게 썰어 간장 양념에 함께 볶아 놓고.
 그리고 나머지 절편 마저 먹고 약 먹고 스르르....


 '어고고고...'
 몸을 뒤틀며 눈을 뜨니 뉴스가 끝나가고 있다.
 선풍기 버튼을 누르는데 자동으로 코가 벌렁거린다.
 '음? 뭔 탄내지?'
 혹, 가스레인지에 뭘 올려놓고 잠이 들었나 싶어 고개를 돌려 부엌을 꼼꼼하게 살펴봐도 특별한 것이 없다. 그래도 이상하다 싶어 부엌으로 가 코를 벌렁거리며 여기저기 둘러봐도 탄내의 정체를 알 수 없다. 안방으로 들어가 열어놓은 창에 다가가 벌렁거리니 냄새가 난다.
 '아이들이 마당에서 뭐라도 태우나?'
 분명 뭔가 타는 냄새이니 확인해야겠어. 현관문을 여는데, 댓돌에 앉아있던 삼월이가 후닥닥 내뺀다.
 '왜 여기 와서 앉아 있지?'

 

 '헐!!!'
 대문 밖에 경광등이 뺑뺑 돌아가고 사이렌 소리도 들린다.
 문을 빼꼼 열고 나서니, 소방관들이 버글거리고 우리 집을 중심으로 통제선이 둘러있다.
 그제야, 옆집 옥상에서 연기가 팍, 팍, 피어오르는 것이 보인다.
 '이게 뭔 일이다냐?'
 '얘들아! 옆집에 불났어, 불!'
 그제야 건너 채에서 아드님과 따님이 나오신다.
 '불씨 튀면 우리 집도 금방 호르르 불붙는 겨! 피난 갈 준비하고 있어!'

 

 옥상에 올라가 살피니, 사다리차부터 시작해서 진압용 소방차만 예닐곱대는 와 있고 길 건너에는 불구경 나온 사람들이 가득하다.

 

 예전에도, 이웃 아파트에서 뽕쟁이가 인질극을 벌인 적이 있었는데 경찰 특공대까지 출동하며 번데기 장사까지 등장할 정도로 시내 사람들이 다 모여들어 구경했다는 데도 우리 집 식구만 밤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고 있었더니…….


  그 많은 소방차가 올 정도면 사이렌 소리가 얼마나 요란했으며 삼월이는 또 얼마나 악다구니를 쓰며 짖었을 텐데, 상머리에서 그대로 잠에 빠진 나는 뭐이고, 대문밖엔 무슨 일이 나는지 마는지? 콧구멍에 탄내가 들어가는지 마는지? 남의 일에 관심 없는 건넛방의 청춘들은 또 뭐이고!

 독거노인 고독사가 남 얘기가 아닐세~!

 

 

 
 202107092937금
 Billie_Eilish-bad_guy
 인쇄소불

 

개무시하는 개.

 삼월아, 나이 먹으면 소화력이 떨어지니 양보다는 질이 우선이라는 것 잘 안다.  현실 파악 못 하고 마냥 욕심부렸다가는 똥구녕 찢어질 수도 있다는,  그래서 절제된 선택적 취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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