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상이몽(同牀異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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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ㅁ안방

동상이몽(同牀異夢)

by 바람 그리기 2024. 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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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잡부 다녀와 씻고 나오니 여자가 퇴근해 있다.
 건너와 로션 바르고 담배 한 대 먹고 다시 건너간다.
 건너가는데, 여자는 마당에서 바지랑대를 기울여 놓고 빨래를 걷고 있다.
 식탁에 좌정하고 지름질 거리 내놓을 것을 채근했다.
 "동그랑땡부터 부치던지!"
 '이 사람아, 깨끗한 것부터 시작해야지'
 이 시간이 되도록 칼 들어간 곳과 나온 곳의 굵기가 맞지 않는 두부. 기울어진 두부를 받아 시작한 지름질.
 "이건 이쪽에 놓고 해야 하네, 기름을 너무 많이 두르네, 불이 너무 약하네, 너무 일찍 건지네..."
 지름질 내내 이러쿵저러쿵 쏟아놓는 잔소리.
 ('가당찮네...') 그저 틱이라 여기고 혼자 떠들도록 내버려두다가, 귀에 피가 날 정도가 되어 한마디 돌려준다.
 '이 사람아, 내가 전직 요리사여!'
 "그러네! 그러네!"

 "인제 나물 무치야지~"
 '나머지는 알아서 하시게!'
 다음 할 일을 중얼거리며 그릇을 들고 어슬렁거리는 것을, 누리미 석 장 지름질을 마지막으로 벌떡 일어서 건너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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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님 떠나시고는 지름질에 손을 놓고 지냈다. 다 큰 딸이 셋이나 있는데, 불러 안쳐 함께 하지 못하거나 시키지 못하는 것은, 자신처럼 얘들을 만드는 '엄마나 어른'으로써 여자의 직무 유기인데, 내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그 바늘구멍 같은 변신 가능성의 틈새를 막는 월권이라는 판단이 컷기 때문이다.
 그랬던 내가 할머님 올 기일에 자리 잡고 앉아 꼼지락거린 이유는 나도 모르겠으나(지금 생각하니 그나마 손끝 야문 큰 ㄴ은 독립 가구 된 후 저 살기 바쁘고, 얼렁뚱땅 둘째 ㄴ은 따뜻한 남쪽 찾아 호주로 내뺐고, 지랄 배기 셋째 ㄴ은 막바지 시험 준비에 바쁘니 여자 혼자 또 자정이 다 되도록 굼벵이 손으로 날 추운데 혼자 꼼지락거릴 것이 뻔해 후다닥 시간이라도 단축해 주고 싶은 맘이었던 거 같다),  여자가 그런 내 곁에서 어정거리며 틱처럼 중얼거린 이유는 짐작이 간다.
 내가 손 놓고 있는 동안, 여자는 여자만의 루틴이 생겼겠고 오늘도 퇴근길에 그 루틴을 그리며 퇴근했을 텐데 그게 깨졌다는 얘기다.
 자기가 작정했고 익숙했던 상황이 깨진 것이 불편했겠지. 준비되었던 것 안에 준비되지 않은 것의 돌출 난입이 당황스러웠을 거란 얘기다. 어리벙벙한 상황에서 터져나온 아무말 대잔치였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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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너와 저녁을 대충 차려 먹었는데, 밥상을 발치로 밀어 놓고 난 후 뭔가 자꾸 불안하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 경험했던 것 같은 불안감에 가슴이 답답하다.
 정체 모를 불안감을 유발하는 경우의 의문부호를 헤집고 있는데 어디서 갑자기 우렛소리가 들린다.
 "아부지! 열두 시 지났슈!"
 깜짝 놀라 바라보니 부엌에서 거실로 난 문을 열고 셋째가 저승사자처럼 서서 내려보고 있다.
 '어이쿠, 클랐네!'
 나도 모르게 빠진 잠의 늪에서 와당탕 빠져나와, 지방 쓰고 고양이 세수하고 옷 갈아입고 건너채로 가 할머님 제사를 모셨다.

 제를 마치고 철상(撤床)하고 앉았을 때,
 "아빠 머리가 왜 저려?"
 "아빠가 직접 밀어서 그렇지. 쥐 뜯어 먹은 거 같지?"
 "꼭 검정고무신에서 기영이 쫓아다니는 친구 도승이의 삼촌 같아요~"


 며칠 전,
 세수하러 건너채 욕실 들어갔다가 거울 앞에서 갑자기 맘이 동해 아드님 바리깡으로 대충 긁은 머리. 날이 추워 이발소 가기도 귀찮고, 이쁘게 보일 정인도, 근엄하거나 단정하게 보일 자리나 소속 조직도 없는 마당에, 웃통 홀딱 벗고 보이지도 않는 눈으로 끙끙거리기 싫어 대충 휘리릭 민 머리칼.
 내가 봐도 옆머리가 가발 쓴 거 같이 층이 졌으니 보이지 않는 뒤통수야 상태가 뻔할 뻔 자이겠으나, 열에 열은 벙거지 쓰고 외출하니 '내 눈에만 안 보이면 된 겨' 라고 손길을 멈춘, 내가 봐도 이상한 머리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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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증손자가 올리는 잔 너머 할머님 지방을 보며,
 "살아계셨으며 이놈들을 참 이뻐하고 좋아하셨을 텐데..." 라는 생각을 했더라니, 정작 두 년놈과 애미는 뒤에 서서 읍(揖)하고 도승이 삼촌을 더올리며 낄낄거렸다니.
 그 대갈빡을 바닥에 박고 늙은 손자가 올리는 절을 받은 할머님,
 생전에도 목소리 한 번 문 밖으로 넘기지 않으셨던 분이 그꼴을 보며 얼마나 혀를 차셨을까?

 

효용의 의문

할머님 제사 모시고 탕국에 음복하고 건너와 "향로와 촛대 아예 정리해 치우자"라며 서재에 석유 온풍기 틀어 놓고 거실로 나와 식후 끽연하며 앉았었는데... 김수미 아줌마 걸진 욕 기상 알람에

sbs150127.tistory.com


 
 202401091601화
 산울림-끼리끼리mix10%2022
 윗지방에는 눈이 많이 오고, 여기도 많이 온다는데 아직은 소식 없고...
 신라면 블랙, 맛있는 라면이래서 처음 먹어봤다. 뭐가 많이 들기는 했다.

 -by, ⓒ 성봉수 詩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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