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밖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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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2007.07.03~2023.12.30)

문밖의 나

by 바람 그리기 2022. 10.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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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다를 것 없이 저녁상을 발치로 밀어두고 잠들었다. 잠들었다가 새로 두 시 무렵 어설픈 한기를 느끼며 부스스 눈을 떴다. 혼자 떠들고 있는 텔레비전이며 환하게 켜 있는 형광등이며 걷어 던져둔 빨래와 널브러진 책과 수북이 쌓인 담뱃갑과... 별반 다를 것 없는 날이었다. 그렇게 다를 것 없는 날이었는데, 갑자기 나는 문밖으로 나서고 있는 것이었다. 넋 빠진 사람처럼 문밖에 서서, 젖먹이를 잃고 산발한 머리로 울부짖으며 거리를 헤매는 광녀처럼 첫 새끼를 뗀 어미 개가 안달이 나 온 마당을 두리번거리는 것처럼 그렇게 서 있는 것이었다. 낮에 마주한 은행잎 날리던 가로의 풍광 때문이었건 단풍 앞에 마주했던 사흘 동안의 뜻밖의 외출 때문이었건 아무튼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이 나는 문밖에 그렇게 홀로 서 있던 것이었다.
 문밖에 서 있는 나를 나는 내버려 두고 커피를 타 서재에 앉아있는 것이었다. 서재에 앉아 커피가 다 식도록 문 밖에 서 있는 나를 바라만 보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앉아 날은 밝았고 문 밖에 서 있던 공갈빵 같던 검은 그림자의 나는 이제 보이지 않는다. 이슬에 녹아 짜부라들었는지 오늘의 햇살을 삼투하지 못하는 변변치 못한 자아의 껍데기가 녹아 사라진 건지 모를 일이지만,
 나는 그렇게 갑자기 몰려든 당황스러운 쓸쓸함을 감당하지 못하고 내 문밖에서 밤새 혼자 서있던 거다.

 

 
 202210290612토
 임지훈_최성수_조용필 mix 회상_해후_그겨울의찻집+15%

 -by, ⓒ 詩人 성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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