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담은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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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2007.07.03~2023.12.30)

바람이 담은 장.

by 바람 그리기 2020. 4.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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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엄니 말씀하셨지.

              뜬 눈으로 밤을 꼬박 새우고 아침 일곱 시. 앞치마 걸치고 고무장갑 끼고 모자 쓰고 장화 신고 창고에 들어가 사다리를 밟고 선반에서 스테인 다라와 소쿠리를 꺼내는데, 빈틈마다 쑤셔 박아 놓은 정체불명의 빈 박스 때문에 꺼내지지 않는다. 박스를 잡아당겨 집어던지니 아래에 있던 선풍기 모가지가 푹 꺾인다. 옥상으로 올라가 독을 열어 보니, 한 번도 열어본 흔적이 없다. 가른 메주를 보리밥과 버무리려고 소금을 푸러 일 층으로 내려가니 굵은소금 자루가 비었다.  일은 벌려 놓고 난감하다. 생각 끝에 쓰레기장 같은 장독대에 올라 엄니께서 쓰다 남긴 고운 소금 독을 여니 죽은 벌레 두어 마리. 소금 독에 벌레라니... 화석처럼 굳은 소금을 긁다가 고무장갑이 찢어졌다. 간장을 삼베 보에 거르는데 찢어진 고무장갑 안으로 간장이 술술 들어온다. 몇 시나 되었나? 아래층에서 삼월이가 운다. 기척이 없는 집안. 오래된 집 마당에 혼자 앉아 저 멀리 시베리아 눈 덮인 백양나무 숲 속의 굶주린 늑대처럼 밥 달라고 운다.  동네 창피해 죽것다. 독에 버무린 된장을 다져 넣고 거른 간장 독도 씻어 마무리하고 옥상에서 내려오기 전에 먹고 있는 된장 독을 열어보니 검게 변하고 딱딱하게 변해있다. 기껏, 엄니께서 담근 딱딱하게 마르고 검게 변한 된장을 새로 담근 된장과 섞어 놓았더니, 365일 통풍용 유리 뚜껑을 덮어두니 당연한 일이지. 어느 틈에 그걸로 덮어 놓았는지 당연한 일이지. 일 층으로 내려와 샘에서 뒷마무리를 하고 옷장에서 갈아입을 옷을 꺼내 욕실로 들어서는데 삼월이 언니가 주먹 만 한 눈곱을 매달고 다른 아랫도리를 꺼내오며 그런다 "바지 이걸로 갈아입어요. 그 바지는 찢어졌던데..." 찢어진 바지를 왜 그냥 옷장에 넣어 둔 건지... 씻고 바꿔준 바지를 갈아입는데 또 허리 줄을 꽁꽁 묶어놨다. 깨금발을 하고 보이지도 않는 눈으로 끙끙거려 매듭을 풀고 바지를 올리고 밖으로 나서니 밥통에 밥을 안치고 있다. 서재로 건너 와 속옷을 입으려는데, 러닝셔츠가 하나도 없다. 어쩔 수 없이 선사시대 원시인 이빨 색으로 변한 젖꼭지 보이는 황금색 섹시한 난닝구로 갈아 입고... 배는 고픈데, 7첩 반상을 눈썹에 마초어 들이기를 기다리기엔 손은 벌벌 떨리고 별수 없지. 라면을 삶아 약 먹을 물을 떠서 자리를 잡고 아점을 먹는데... 이게 뭐 하는 짓인가….

"그럴 땐 정말 신경질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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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중에야 어찌 될지 알 수 없는 일이다만,
 할머니 어머니 정안수에 손 모두던 세월을 생각하면,
 몇 백 년 된 씨간장 내 대에 없앨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는가?
 어쨌건, 내 숨 붙어 있는 동안의 일이지.


 마무리하고 라면을 먹고 나니 11시 반.
 작정하고 자리에 누웠다 눈을 뜨니 4시쯤.
 일어나지 않고 그대로 누워 폰 잡고 꼼지락 거리다가,
 6시 반쯤 저녁 먹으러 불러서 일어나 밥 먹고...


 마당 보드블록 아래 땅이 눈에 띄게 전체적으로 다 쓸려가 빈 공간이니 큰 일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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