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종 종일 울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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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2007.07.03~2023.12.30)

바람종 종일 울던 날.

by 바람 그리기 2020. 4.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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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재 창밖의 바람종이 종일 요란하게 울었다.
 바람종 소리를 들으며 샘에 앉아 쌓아 놓았던 속옷과 양말을 빨았다.



  빨래하며 생각했다.

 "아비야, 이런 데 올 땔랑 새 옷으로 깔끔하게 차려입고 오는 겨. 의복이 부실하면 까니 보는 겨"
 내자와 함께 대전 병원에 입원하신 어머님을 뵈러 간 날,
 옅은 미소로 지그시 바라보시던 어머님께서 건네던 귀엣말.
 "아무래도 봉수 혼자 사는 거 같지?"
 초등학교 동창 모임에 처음 다녀오고 난 후,
 여동무들끼리 궁금해했다고 전해준 말.
 "그렇게 하고?"
 천안 모임에 참가하려 역으로 바삐 가다가 만난 선배가 물어본 말.


 그랬던 내가,
 갈아입을 속옷이 떨어져 누렇게 변한 흰 러닝셔츠를 입고 있다는 이유로 병원에 가지 않고 빨래를 했다.
 지난 금요일엔 비도 오고 날이 심란해 건너뛰었으니,
 오늘은 목을 빼러 병원에 다녀와야 하는데 말이다.


 누가 보거나 말거나, 뭐라 하거나 말거나, 그냥 그대로 입고 싸고 뒹굴던 날들.
 누가, 무엇이 나를 이렇게 변하게 했을까?
 행색 궁핍한 거야 그때나 지금이나 실상은 다를 것 없으면서도,
 누가 보는 나를 바라보게 되었을까?
 

 들키고 싶지 않은 것들만 쌓아 놓은 세월인듯싶다.



 남도의 울에 핀 백작약.
 이 바람에 모두 지고 말았겠다.



 

 20200421242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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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콩나물국에 대충 말아 후루룩 넘긴 아점이 시원치 않았는지,
 갑자기 속이 비고 손이 덜덜 떨렸다.
 빤 빨래를 탈수시키는 동안 방으로 들어와 초코파이 두 개를 허겁지겁 빨아먹었다.



 저녁을 먹고 앉았다가 서재로 들어오니 범수 아저씨께서 보낸 톡이 와 있다.
 약주를 하고 계셨나 보다.
 잘 지내시는가 보다.
 아랫사람이 먼저 기별을 넣어야 옳은 일인데...
 맺힘 없이 좋으신 분.
 언제 날 잡아 탁배기 한 잔 나눠야 할까 보다.
 큰 매형은 어찌 지내시는지...


 삼월이가 지 언니가 주고 간 사료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기름진 국물 부어 달라고 종일 애를 타며 쫓아다녔지만,
모른척했다.
 저녁은 챙겨 먹었는지….

 내일은 병원 다녀오며 된장 위에 덮을 소금하고 난닝구 두어 벌 사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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