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의 명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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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2007.07.03~2023.12.30)

부활절의 명함

by 바람 그리기 2023. 4.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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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썽 시인님, 어데요?"
 '집이쥬? 뭐시기 나팔 분다매요? 그니 슬슬 나갑죠. 자리 옮기면 전화 주시구...'
 "아이고, 시장님이 색소폰 불고 지금 노래 부르고 계신데! 퍼뜩 오이소!"
 '???'

 지역 봄꽃 축제. 시장인지 땡감인지 뭐시기가 노래 부르든 내 알 바 아니고... 멀리 신도심에서 일부러 오셨으니 대충 탑시기만 털어내고 나가 탁배기잔을 잡았습니다.


 마침 부활절이라고 달걀을 챙겨다 주셨고요.
 부어라~마셔라~ 2차까지 하고 휘적휘적 돌아와 쪽 뻗었습니다.

 아침에 눈 뜨고 게으르게 모닝 담배를 물며 어제 받아 온 명함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어떤 이는 없던 명함을 만들고,  어떤 이는 몇 번째 명함이 바뀌고...
 각자 필요와 상황에 따른 선택입니다.
 '참 열심히들 산다.'
 받은 명함에 대한 감상은 딱 거기까지였습니다.
 그리고 내 명함을 꺼내 바라보며 여태 몇 번이나 명함이 바뀌었나 생각해 봅니다.


 직장에서 받은 것 세 개. 장사하며 박은 것 하나. 편집장 하며 받은 것 하나. 그리고 지금.
 '평생 명함 한 장 박거나 받을 필요 없이 무명인으로 덤덤하게 살다 갈 수 있는 이도 보통 사람은 아니겠다...' 

 어제 씻어 놓은 쌀로 아침밥을 지었습니다.
 잡곡 섞어 놓은 쌀이 떨어져 제삿날이나 맛보는 이밥을 지었습니다.


 모처럼의 쌀밥이 어찌나 맛있던지 살살 녹습니다.
 챙기름 간장 만들어서 살살 비벼 먹었습니다.
 
 장에 나가 고추(아삭이 2, 청양 3), 상추(적 2, 청 2), 쑥갓, 적경 치커리 모종 사다가 한 철 먹을 푸성귀로 심었고요. 겨우내 안에 들여 놓았던 화분들 모두 낑낑거리며 내놓았습니다. 서재 바람막이로 세워 놓았던 박스도 걷어치웠고요.
 어제는 술 먹다 보니 장이 끝나 꽃을 못 사왔는데요, 다음 장엘랑 꽃 모종 몇 개 더 장만하고 단호박 모종이라도 몇 포기 사다 심어야겠습니다.
 그러고는 주민센터에 다녀왔는데요, 창구에 기다리는 사람이 없어 직접 갔더니 담당 직원이 하는 말,
 "번호표 뽑으셨어요?"
 '아뇨? 뽑아올까요?'
 되돌아 뽑으러 가려 하니,
 "아뇨, 그냥 주세요"
 '??? (뭐 이런 우끼는 짬뽕 아줌마가 있나)'
 저도 예전 장사하던 시절에 편의점에서 담배 사고 거스름돈 받으며,
 '감사합니다. 맛있게 드세요!'라고 한 적이 있으니 직업병이려니 하고 피식 웃고 말았습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전조가 있으니 혹, 신분증 보며 뭐라 할까 조심스러웠는데 기우였습니다.


 행정구역이 바뀐 게 벌써 10년이 지났는데 신분증 안의 사내는 아직도 촌구석에 살고 있습니다. 신분증 사진을 보며 생각합니다. '저 때만 해도 젊었구나. 새까만 콧셤도 지금 보니 어울리네..'

 주민센터에서 돌아오며 물김치에 건더기로 보태 넣을 것 사러 마트에 들렀는데요, 가격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아무리 비쌀 때이지만, 껍데기 홀딱 벗긴 주먹만 한 배추 알맹이가 3~4천 원 붙어 있습니다. 그 돈 주고는 도저히 못 사 먹겠어서 삐들 삐들한 무 하나만 사 왔습니다. IMF 때도 안 내놓던 금붙이들을 내놓고 있다는 보도를 봤는데요, 물가며 국제 정세며 나라가 온통 개판 오 분 전이니 큰일 났습니다.
 빨갱이 타령하시는 분들께 제가 평소 주장하던 것이,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지 않는 한, 그래서 미국의 선택이 대만으로 향하지 않는 한 한국에서의 전쟁은 없다'였는데요 요즘 대만을 사이에 둔 미·중의 갈등이 예사롭지 않으니 걱정입니다. 어쨌건, 미국이 시키는 대로 윤석열이 일본과 넙죽 손잡았으니 내외적으로 심란한 상황의 방미에 무엇을 챙겨 올지 지켜 볼 일입니다. 반도체도 그렇고 전기차며 밧데리도 그렇고...

 삼월이 언니께서 가래떡과 시루떡을 챙겨다 놓았고,


 부활절이라고 동네 예배당서 (어제 들렸는데 아무도 없어서 오늘 다시 오셨다네요.) 또 먹을 걸 챙겨주셔서 먹을 게 지천으로 쌓였습니다.


 그런 오늘은 세 끼를 다 먹었고요,
 혓바닥이 자꾸 빠져나오려고 해서 오전 내 괙괙 거리며 돌아다니느라 정신 못 차렸습니다. 그러고 보니 술만 먹으면 괙괙 거리던 집 나간 큰 애는 요즘도 그렇게 괙괙 거리며 술 드시는지 모르것네요(지발 그만 처먹거라. 니 동창 몹쓸 병 걸려 젊은 나이에 세상 뜬 거 봐라.)
 
 마트 길건너 아파트 정문의 겹사쿠라가 종일 바람을 그리던 좋은 날이었습니다.


 남도 어느 감춰진 마당 구석엔 혼자만을 위한 목단이 펄럭이고 있을 밤입니다.


 편히 주무세요.

 지금부터 이 밤도깨비가 남은 오늘 동안 무엇을 할지 고민해봐야겠습니다.

 

 
 202304102511월
 최병걸, 김명애, 유현상 MIX 난 정말 몰랐었네, 도로남, 여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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