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무당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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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2007.07.03~2023.12.30)

선무당記

by 바람 그리기 2022. 1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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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스마스이브.
 말구유 아기 예수님 맞으러 축복하는 날 잡부다.
 우리 오야님은 다른 업자가 뒷짐 쥔 공사만 잡수시는지, 12월 내 콧구멍만 쑤시다가 하필이면 이렇다.
 생각하니 작년에도 그랬다.

 

2021 크리스마스.

상황 보아가며 천천히 접종하려 했던 코로나 예방접종 부스터 샷. 이스라엘에서는 오미클론의 확산에 맞춰 부스터 샷에 더해 4차 접종을 위한 표본 실험에 들어간다는 보도.-오늘 자 해당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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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경에 낀 김이 그대로 얼어버리는 참 추운 날이었다. 처음으로 뽀나스 삼만 환을 얹어 받았다.

 잡부 마치고 돌아와 게으르게 늘어져 커피 한잔 먹고, 미뤄 놓은 설거지 작정하고 해치우고...
 자정이 되기 전 담배 사러 집 앞 길건너 편의점으로 향하는데, 어디서 들리는 "♪~고요한 밤~♬"
 고개 돌리니 편의점 맞은편 문구점(바깥양반이 목회자다)에 불이 환하게 켜 있고, 어른과 아이 포함한 대여섯 명이 모여 부르고 있다.
 '요즘은 빨리하나?'


 20대,
 크리스마스이브에 새벽까지 술을 먹고 귀가하다 보면 골목골목 성도들의 집을 방문하는 이런 분들을 마주하고는 했다. 촛불을 든 그들의 뒤를 쫓아 서너 집을 함께 돌며 성가를 부르거나 눈에 띈 아무 교회나 들어가 맨 뒷자리 섬뜩하게 차가운 나무 의자에 앉아 잠시 묵도하고 나오고는 했는데, 어찌 보면 주취자의 민폐였겠으나 그런 나를 누구도 막아서거나 따져 묻지도 않았다.

 발등까지 삐져나오는 쓰레빠를 발가락으로 움켜쥐고 동동 뛰어 집으로 돌아오니, 가시덤불에 뒹구는 어린 강아지 같던 예전의 그 감상이, 독거노인의  딱딱한 가슴을 비집고 마치 후광처럼 새어 나와 크리스마스트리 꼭대기에 달아 놓은 동방박사의 별에 반짝, 얹힌다.

 23시 58분.
 냉장고에서 맥주 한 병을 꺼내 놓고 치킨을 주문했다.



 눈이 침침하니 서재 모니터 앞에 앉으면 꼴이 꼭 이렇게 되는 거 같아,

아케이 무브 플랭크 바른자세 숄더밴드


 며칠 전 쿠팡 앱에서 교정 벨트를 하나 주문하면서, 보너스 포인트를 준다는 말에 쿠팡 잇츠 회원에 가입했다. 언제고 탈퇴 가능하다는 안내와 쿠팡 앱에서 바로 열려 앱을 따로 설치하지 않아도 되니 포인트나 챙길 생각으로 아무 생각 없이 가입했는데 알고 보니 배달 플랫 폼이다.

 냉장고에 붙여 놓은 광고 딱지 주문 세대인 데다가, 바람 쐴 겸 건너 편의점에 쫄래쫄래 다녀오는 수고가 있을지언정, 상 차리는 것도 귀찮아 물에 만 밥 대충 먹는 독거노인이 미식가 흉내 내 딱히 주문할 일도 없으니, "배달의 민족"이 소비자 뒤통수를 치고 세계적 독과점 기업에 팔려 갔건 어쨌건 관심 없는 일로 지내왔다.
 그런 내가 예수님의 부름으로 그것을 열고 생에 첫 온라인 플랫 폼에서 음식 주문을 했다.

 "도착 시간 앞으로 15분"
 앱에 뜬 알림창 문구가 아무리 봐도 구라다. 평소에도 빨라야 삼십 분인데, 오늘 같은 날  만들어서 배달까지 하는 데 15분밖에 걸리지 않는다니 이상하다.
 이상한 예감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는데 정확하게 한 시간 반이 걸렸다.
 주문한 지 한 시간을 넘기며 쿠팡을 열고 살펴본 앱. 업체 상호만 있지 연락할 어떤 정보도 없고, 조리가 시작된 주문은 취소할 방법도 없다.
 한 시간하고도 삼십 분이 지나고야 포탈에서 해당 업체 연락처를 찾아 전화한다.
 "손님, 만든 지 벌써 한 시간이나 지났는데 배달 기사가 배정이 안 돼서 이러고 있습니다. 쿠팡이 그렇더라고요. 쿠팡에서 배달 기사 배정하기 전에는 저희 쪽에서 고객님 정보도 알 수 없고 어찌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고객센터에 연락해 보세요. 그러면 빨리 배정하기도하더라고요..."
 염병, 뒷집 지고 걸어도 15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곳인데...
 '만든 지 오래되었다니, 가맹점에 전화하셔서 먹을 수 있는지 확인하시고 배달원 빨리 배정하시고요, 아니면 취소 절차 진행하고 연락하세요'
 1분 만에 걸려 온 고객센터 전화.
 "고객님, 확인하니 함께 시키신 튀김 떡볶이 때문에 잡수실 수 없다네요. 바로 취소 절차 진행해 드리겠고요, 죄송한 마음으로 5,000원 쿠폰 드리겠습니다"

 헐, 이렇게 내 첫 배달 플랫 폼 주문은 엉망으로 끝났고 동방박사의 별은 지평선 너머로 기울어져 갔노니..


 아침에 눈을 떠,
 입에서 튀어나온 이 노래.

 누구도 알지 못하는, 아는 이 없이 무작정 내린 낯선 도시.
 전자 오르간의 뽕짝이 흘러나오는 선창가 근처라도 좋고, 텔레비전 소리 요란한 홀 한쪽에 연탄집게를 옆구리에 끼고 앉아 입이 찢어지라 하품하고 있는 늙은 마담이 있는 시골 다방이라도 좋고.
 그곳에 앉아 이 노래를 듣고 있는 또 다른 나를 만났다.
 안경을 다시 쓰고 다방을 나서 대폿집을 찾아 기웃거리는 거기의 내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부디 보고픈 이를 만나거라. 밥 굶지 말고 다니거라" 나지막이 중얼거리고 오늘로 돌아와 밥 한술을 물에 만다.


 메리 크리스마스다.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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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2251720
 조용필-그 겨울의 찻집

-by, ⓒ 시인 성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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