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운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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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2007.07.03~2023.12.30)

쉬운 일.

by 바람 그리기 2022. 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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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 네 시 반.
 생각보다 개운하게 일어났다.
 방으로 들어가 어제 아침부터 켜 두었던 돌침대 전원을 내리고 나왔다.
 부엌으로 가 콜라 한 컵을 들이킨다. 생각보다 시원하다.
 치과 몽은에서 깨어나는 것처럼 얼굴은 남 살이 붙은 것 같고 팔뚝을 중심으로 몸 왼편이 얼얼하다. 아마도 부은 모양이다. 아마도 카시미론 이불의 수혜를 못 본 모양이다.
 커피를 옅게 타 서재로 들어온다.
 첫 커피와 첫 담배와 첫 음악을 듣는다.
 생각보다 깊고 생각보다 맛나고 생각보다 편안하다.
 몇 번의 연단 재채기,
 시원하다.


 먼저 돌침대 전원을 넣어두고 아침상을 차려 앉았다.
 먹고, 상을 밀치고, 몇 가치의 담배를 먹으며 꼼지락거린다.
 전화벨이 울린다. 점심 약속이 잡혔다.
 시간은 이미 11쯤으로 가고 있다.
 약속 시각에 맞추려면 일단 잠은 포기다.
 옷을 갈아입고 집을 나선다.
 볕이 좋아 맨몸으로 마주 서지 않고는 착각하기 딱 좋은 날씨.
 매운바람에 목도리를 단단히 두르고 20여 분을 바삐 걸었다.
 식당에서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낸 찻집에서 일어서 다시 북쪽으로 걸어 집으로 온다.
 이 무렵의 북행은 늘 바람을 안아야 한다.
 섭골 할머님 댁으로 향하던 유년의 그 길,
 포플러와 느티나무 마른 가지 끝에 요란하던 문풍지 펄럭이는 소리가 들리는듯하다.
 걷다 보니 장날이다.
 집으로 돌아와 옷을 갈아입고 서재 컴에 전원을 넣고, 씻고 거울 앞에서 화장수를 바르며 생각했다.


 장날.
 방앗간을 들리지 않고 집으로 직접 되돌아온 것이 아무렇지 않은 이유가 무엇일까?
 술 생각이 나지 않은 것이 아무렇지 않은 이유가 무엇일까?
 일상의 부른 배일까?
 일상의 무감각 혹은 무력함일까?
 거울을 벗어나며 짧은 생각을 마무리한다.
 콧수염을 다시 길러야 하나? 역시 밍밍하고 영 낯설다.


 담배를 물고 바닥에 너저분하게 널린 것들을 밀쳐내며 어항 앞에 앉는다.
 어?
 자꾸 수초 사이로 기어들어 가던 돼지 금붕어가 죽은 모양이다.

 

 옆으로 누워 꼼짝하지 않는다.
 가슴에서 바람이 휘잉 빠져나간다. 서운하다.
 야! 돼지야!
 파블로프의 개처럼, 사료 줄 때 같이 수족관을 두어 번 두드린다.

 

 살아있다. 나쁜 녀...
 분명, 무언가 음모하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어영부영 8시가 넘어섰다.
 아침에 밀어두었던 상에서 그릇을 도로 들고 부엌으로 가 물로 휘이 헹구고 저녁을 차려 앉았다.
 밥을 먹고 약을 먹고 담배를 먹고 TV를 본다.
 소련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쟁. 내 생애에 목도하는 몇 번째일까?
 "전쟁의 살육자에게 연옥이란 없다"
 UN 안전보장회의서 우크라이나 대사의 읍소.
 단테의 신곡을 떠올렸다.


 의도하지 않았다면 마지막 책장에 이르지 못할 만큼 참 지루하고 재미없던 책.
 채 열 페이지도 넘기기 전에,
 공부를 많이 하지 않은 것, 공부는 사람 생각과 판단의 격을 높인다는 것.
 후회하고 자조하게 만든 몇 차례의 경험 중 하나.
 적어도 이런 유의 책은 일본인의 손을 거쳐 일차 해석되어 출판되고 그 일본어의 책이 다시 한국인에 의해 재 해석돼 출판된 것이 아닌, 원서로 읽어야 한다는...
  지금은 많이 변했겠으나 그 시대에 유통되던 전문 서적이나 문학작품이나 장르 불문한 전집류들이 그런 출판과정을 따랐으니, 기본적인 문학적 감수성을 염두에 두고 읽어가던 문장들에서 느끼던 확신할 수 없던 번역 과정에서 헛발질한 표현의 어색함.
 그래서 참 재미없었던...
 물론, 지금 다시 읽는다면 그때와는 다른 느낌이나 해석에 닿을 수 있겠으나, 내가 서양 문학사나 언어학자도 아니고 근력도 부치니 그런 수고로움을 일부러 할 생각은 없고....


 저녁상을 옆으로 밀어 놓고 비스듬히 누워 폰과 TV와 폰을 번갈아 보며 꼼지락거린다.
 정신이 가뭇가뭇해진다.
 11시가 다 돼간다.
 생각보다 쉽게 잠이 들었다.

 

 

★~詩와 音樂~★ [시집 『검은 해』] 조건반사 / 성봉수

 조건반사 / 성봉수  그대, 나의 파블로프여  사육된 허기의 침이 내 음부를 축축히 적십니다  그러고도 넘치는 식탐은 목젖을 쥐어뜯다 뜯다,  기다림의 제방을 범람하는 분노가 됩니다  당

sbs150127.tistory.com

 
 202202250532금
 강정화-임소식mix박재란-푸른날개2022
 불금입니다.모두에게좋으날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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