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인연.
본문 바로가기
낙서/┗(2007.07.03~2023.12.30)

시절인연.

by 바람 그리기 2022. 7. 24.
반응형

 

 

 

 

 밤새 신경통처럼 내리던 비가 멎은 오래된 집 마당.



 담벼락에 진보라 나팔꽃 하나가 반갑게 맞습니다.


 오각의 구분이 모호하게 두루뭉술 말려 있는 것을 보니, 재작년 '웰마트' 앞 전봇대에서 채종해 심었던 놈입니다.
 어머님께서 서울 큰 누님 댁 울에서 받아 심은 후 오랫동안 오래된 집 마당을 지켜주던 진보라 왕나팔.


큰 누님 댁 어머님 나팔꽃, 영영 사라졌나보다.

 어머님 돌아가신 후 해가 갈수록 꽃송이가 적게 벌어 영영 사라질까 조바심 태우다가, 시장 마트 앞 전봇대를 휘감고 있는 닮은 이 꽃을 발견하고 채종해 심었습니다.
 올해는 계속되고 있는 이웃집 공사 비산물로 먼저 개화한 다른 나팔꽃도 잎이 찢어지고 구멍 나고 형편이 말이 아닌데요, 이 왕나팔꽃은 여름이 절기의 마루에 닿도록 여태 소식이 없어 마음 내려놓던 중이었습니다.


 <시절인연>
 '그 시절과 공간을 차지한 주체가 직조하는 기의 흐름대로 그 파장에 맞는 만물이 생성되고 소멸하고, 그렇게 앞선 이의 희미해지는 흔적을 따라, 창포처럼 너도 사라지고 있구나...'라고 체념하던 중이었습니다.
 '무한하나 미지한 대자연의 운행도 이러한데, 유구하나 기지(旣知)한 사람의 인연에 연연(戀戀)할 일이던가...' 읊조리던 중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올해는 영영 사라지리라 생각했던 창포가 또 앞선 이의 흔적 안에 서너 줄기 살아나 내 손을 잡았습니다.


 올 단오 무렵엔 '어쩌면 정말 마지막일 이 인연을 베어 효용이 될 누구에게 보낼까?' 생각도 했었는데, 오늘 보니 그 공간마저 까마중에게 내어주고 있습니다.


 "무 파장의 파장"
 '내가 품는 기의 실체라는 것이 어쩌면 일관성이나 연속성이 없는 무의미한 잡음(noise)이 아닌가?'   '그러니 이 무주공산의 공간에 누구의 관심도 필요 없는 잡초가 하나둘 자리 잡는 것이 아닌가!'


 내 인연 안에 왔다가 변변하게 열매 한 번 맺지 못하고 올해 영영 떠나버린 포도나무 마른 가지 앞에 서서 자문해 봅니다.


 고욤나무와 앵두나무와 불두화가 볕을 다퉈 한해 다르게 크는 키와 무성한 잎.
 그 그늘이 만드는 마당 한쪽의 풍경.
 그 그늘 볕 들지 않는 곳에 내 유년 기억 속의 외할머님 댁 뒤꼍이 떠오른다.
 지금 내게 3세들이 있다면, 유년의 나처럼 '할머니, 외할머님 댁'의 이미지로 각인될 그런 특유의 아련한 심상으로...


삼월아, 너와 나도 <시절인연>이겠지만 제발 쓰레빠 좀 그만 물고 가면 안 되겠니?

 

 

 

 
 남택상-여름날의 추억
 여름이니 흠 될 것 없긴 해도, 개처럼 잠드는 것이 애매하다.
 자고 나면 온몸이 다 쑤시는데 그렇다고 바닥에 불 넣기도 그렇고...
 벌써 반나절 지났네. 배고푸다. 뭐라도 묵자.

 

 

☆~ 詩와 音樂 ~☆

성봉수 詩人의 방입니다

sbs150127.tistory.com

 

-by, ⓒ 詩人 성봉수

 

 

 

 

반응형

'낙서 > ┗(2007.07.03~2023.12.30)' 카테고리의 다른 글

틱.  (2) 2022.07.30
복달임.  (0) 2022.07.27
고물상.  (0) 2022.07.23
무지개.  (0) 2022.07.19
오밤중에.  (0) 2022.07.18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