볕 좋았던 날.
한 주걱 남은 밥 독독 긁어, 어제 삼월이 언니께 배급받은 상추와 오이를 강된장 쌈 싸서 아점 먹고.
어제 술밥 먹은 뒷정리 겸 설거지하며 쌀 씻어 놓고.
겨우내 굴 안에 거적때기였던 요와 이불과 베개를 옥상에 널고.
독 뚜껑 모두 열어 바람 쐬이고.
어제 마주 앉아 대작했던 곰돌이 푸도 술 깨라고 일광욕시키고.
해 떨어지기 전에, 독 뚜껑 닫고 널었던 침구 내려 원위치시키고.
어제 빨아 널었던 겨울옷 기타 등등 모두 걷어다 거실 한쪽으로 던져두고.
불쿤 쌀로 저녁 새 밥 지었고.
삼월이는 오며 가며 까까나 얻어먹을까? 기웃거리기에 변함없고.
삼월이 언니께서 언제 사다 놓았다가, 친정 보따리에 까먹고 챙기지 못한 꾸덕거리는 머위잎 던져 놓은 것, 밥 하는 동안 손질하고 씻어 건져 두었다가 데치고 무쳐 한 끼 비벼 먹을 것 남기고 건너채 반납하고.
나물 무친 볼에 새로 지은 밥, 주걱 반 덜어 썩썩 비벼 저녁밥 먹고.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볕 좋았던 날.
종일 마음 한편에 앙금처럼 가라앉은 정체불명의 불편함. 불안함...
한동안은, 무언가 내 일상에서 빠져나간 듯한 상실감 같은 것. 꼭, 이별 후에 뒤늦게 찾아오는 알싸한 아픔 같은 것. 그래서 그 이별의 실체가 무엇인지 궁금해지게 한 것. 사람인 듯도 싶고, 시간인 듯도 싶고, 그 둘을 모두 아우르는 기억 속의 한 장면인 듯도 싶었던 것. 그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맨 몸의 내게 되돌아온 것. 보내고 맞는 하루하루가 새삼스레 더없이 소중하고 값진 것. 그 값지고 소중한 시간의 가치를 절감하면서도, 무엇 하나 의미 있는 획이 되지 못하고 무덤덤하거나 무책임한 중간자처럼 또 하루를 허비하는 것에 대해 그 절감의 크기만큼 낙담하는 것. 조바심 같은 것.
이유나 원인이 불분명한 빙산의 일각에 매달린 안달...
종일 나를 안달나게 했던 가슴에 구멍.
과연 무엇이 빠져나간 자리였을까...
202404142608화
노동환cg-동심초 mix 소리새-꽃이 피는 날에는
내일 비가 많이 온다니, 오늘 선영에 보식하러 다녀와야 했는데. 저녁에야 알았으니 일기가 어떨지에 손톱만큼도 맘 돌리지 못했다. 그런 것을 보면, 매운바람에 오르지도 내리지도 못하고 망나니처럼 하늘을 떠도는 끈 떨어져 연처럼 내 마음이 종일 혼이 빠져 부침을 거듭하긴 했나 보다.
-by, ⓒ 성봉수 詩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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