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사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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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ㅁ안방

개사람네.

by 바람 그리기 2024. 4.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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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점심 먹고 차 먹고 담배 먹으며 담소 나누다 보니 하루가 다 갔다.
 돌아와 마무리할 생각으로 세탁기에 넣어 둔 겨울 옷 빨래거리가 오늘은 물구경 하기 글렀다.

 대문을 밀치고 골목 끝을 빠져나오는데 광 벽 쪽에 뭐가 얼핏 보인다. 기척 없으신 삼월이 우리를 허리 숙여 바라 보니 부재중이시다. 손에 든 쇳대로 바깥채부터 열고 확인하니 식탁 아래에도 안 계신다. 빼꼼 열려 있는 방문을 향해 소리친다.
 "삼월아, 쥐잡어, 쥐!"
 역시 꼬리가 다섯개 쯤 달린 사람개다.
 쥐 잡으라는 말에 후다닥 튀어나와 앞뒤 가릴 것 없이 광쪽으로 내달린다.
 방금 지나갔으니 그 체취가 생생할 터, 코를 벌렁거리며 좌불안석 이리저리 뜀박질인데, 딱 보니 삼천포로 내빼도 진작에 내뺐다.

 '사람개가 나은 지, 개사람이 나은 지 한번 겨뤄 보자!' 라는 생각에 길 건너 약국에 들러 끈끈이를 사 올 생각으로 나섰지만, 떨어진 달걀도 살 겸 마트까지 다녀왔다.
 영양가 없이 이리저리 펄떡거리는 삼월이를 아랑곳하지 않고, 서생원님 산보 예상로 두 곳에 끈끈이를 펼쳐 놓고 들어 오니 삼월이 언니께서 퇴청하신다.
 '동생분께서 조금전 다섯 시나 되어서 언니 요 위에서 밖으로 나오셨나이다' 
 "아니, 그걸 내 쫓으야쥐! 왜 방에 들이는 규!"
 '소생이 아니 들였는디유?'
 "왔다갔다 봤을꺼 아뉴! 참 이상한 사람이네!"
 (못 봤는 디? 왜 나한티 이러쥐? 괜히 말했네...)
 
 돼지국밥 한 그릇 사 왔으니 그거에 밥 말아 먹으라신다.
 반을 덜어 레인지에 돌려 밥상 차려 앉았는데 또 건너 오신다.
"아니, 세탁기에 겨울 옷을 잔뜩 넣어두면 워쩌라는 거유! 주말엔 내가 빨래해야 하는디, 참 이상한 사람이네?"
 '그냥 꺼내 놓으세요. 다음에 빨겠나이다'
 "날 좋은디 낮에 빨아 널었으야쥐 정말 이상한 사람이네?!"
 (내가 왠만하면 손빨래하는데, 평소랑 다르게 세탁기가 텅 비었으니 잠바 두 벌, 바지 하나, 목도리 하나, 윗 옷 하나 외엔 정말 손 빨래 할 것은 넣지도 않았고. 빈 세탁기에 빨래 넣은 게 역적질한 건가? 미팅이 하루죙일 걸릴 거라고는 예상 못 했고... 아니, 빨래를 해 달랬나? 나한테 왜이라는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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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밥을 얼추 다 비웠을 때 들려 온 단말마, "찍"
 옳타쿠나, 서생원 걸리셨구나!
 후다닥 뛰어나가 확인하니 서생원 한 마리가 끈끈이에 납작 엎드려 계신다. 동시에 삼월이가 '어흥' 달려와 참견한다.
 '가만 있어 지지배야! 끈끈이 다 달라붙어!'
 밖의 소란에 바깥채 삼월이 언니께서도 쫒아 나오신다.
 "동생이 끈끈이로 도배하기 전에 좀 붙잡고 계시옵소서."
 멀찌감치 동생을 붙잡고 계신 삼월이 언니께서, 쓰레기 집게를 챙겨 가는 내게 하명하신다.
 "반으루 접으야쥐! 집게는 왜 가져가유!"
 '떼어 내고 다시 쓰야지유!'

 꼬리를 잡고 끈끈이에서 떼어 낸 서생원을 거꾸로 들고 막대기로 톡, 톡, 쳐서 기절시키는데 삼월이 언니께서 소리치신다.
 "꺄악! 꺄악! 뭐하는 겨!"
 '삼월이 가지고 놀게 주야지요!'
 마당 한 가운데 서생원을 내려놓고 안으로 들어오니, 삼월이 언니께서 삼월이를 붙들고 앉아 오도 가도 못 하다 안채 부엌으로 안고 들어 와 거실에 들여놓는다는 것을 문을 콕, 닫으며 막아섰더니. 부엌 바닥에 내려놓고 꼭 붙잡고 있으라며 나가신다. 그 순간 삼월이가 대성통곡하며 발광하신다. 어쩔 수 없이 놓아주니 서생원께 뛰어가 해부학 실험에 들어가셨다.

 얼마 후, 살피러 나가니 꼬리만 남겨 놓고 다 잡수셨다.
 '삼월이, 꼬리만 남기고 다 잡수셨는디요?'
 바깥채 걸어잠근 문 밖서 고하니, 흥부가 형수에게 주걱으로 뺨 맞는 것은 비할 것도 못되게 육두문자가 쏟아진다.
 "이런 천하에 상 또라이!!!"

 얼마 후,
 삼월이 언니께서 상황파악 하러 나오셔서 부삽 들고 기웃거리더니,
 "이거 봐유! 이 건 꼬리, 이건 머리, 이건 몸통... 삼월이는 쥐 안 먹느다니께!"
 그러더니, 거혈당한 쥐를 수습한 부삽을 들고 나를 쫓아다닌다.
 (??? 얼라, 왜 이라는 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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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근 후 한 잠 때린 셋째가 뭐 사 먹으러 간다고, 대문까지 삼월이로부터 호위할 삼월이 언니를 대동해 바깥채 문을 열고 나선다.
 주둥이에 임꺽정 수염처럼 끈끈이로 쥐털을 붙인 삼월이가, 평소처럼 산보 나가는 걸로 알고 신이 나서 쫓아 간다.
 "캭! 캭!"
 이웃에서 들으면 큰 일이라도 난 것처럼 모녀가 지르는 비명이 요란하다.
 (뭐지? 좋다고 끌어안고 잘 때는 언제고, 뭐지? 쥐 잡은 게 한두 번여? 이런 표리부동한 위인들 같으니라고...)

 나만 개사람이 아닌게로군!

 

 
 202404123034금
 진주 조개 잡이-여러분들, 행복하세요!
 아, 졸리네. 약간의 두통...
 -단 호박씨 파종/ 쥐 끈끈이/ 달걀/ 대파/ 브로콜리/

 -by, ⓒ 성봉수 詩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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