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일 탄수화물 구경 못한 허기가 꼭대기에 닿은 때,
날이 어두워지고 바람이 거세지기 시작한 때,
전화 받고 나가,
요렇게 가끔 담배도 먹어가며
요렇게,
요렇게,
술밥 먹고 날을 넘겨 돌아왔습니다.
현관을 들어서기 전 소피를 보다 인기척에 고개 돌리니,
요렇게,
삼월이와 눈이 딱 마주쳤습니다.
'왜?'라고 부르는 순간, 바람이 휘돌며 바람종이 깨질 것 같은 요란한 소리가 납니다.
그 소리에 놀란 삼월이가 내 물음에 답할 틈도 없이 후다닥 마당을 가로질러 제 우리로 들어갑니다.
휘몰아치는 비바람을 등지고 현관문을 열다 생각하니 안되었습니다.
무대뽀 단순 무식이라면 나을 텐데, 이웃집 망치 소리에도 화들짝 놀라 현관 앞으로 쪼르르 달려와 웅크려 숨는 2% 부족한 ㄴ이, 밤이면 불 켜진 서재 창밖 의자에 올라앉아 있는 ㄴ이, 사람 손이라도 안 탔으면 모르겠지만 수시로 바깥채 식탁 아래가 제집인 듯 들어가 자리 잡고 있는 ㄴ이, 이 비바람을 덜덜 떨 생각 하니 안되었습니다.
거실에 신문지를 깔고 불러들였습니다.
그런데 잠잘 생각은 안 하고 자꾸 서재 안으로 들어오려고 합니다.
혹, 자리가 불편한가 싶어 문을 열어주니 나가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방에 들어가 아기 곰돌이를 가져다 내 몸에 벅벅 비벼 옆에 놓아줘도 마찬가집니다.
'그래, 네 덕에 나도 자자'
열었던 컴을 정리하고 거실에 자리 잡고 누웠는데요, 혹시 무서울까 싶어 텔레비전을 틀어두었습니다.
개 덕에 불 끄고 이불 덮고 그렇게 누웠다가 뭔가 기분이 이상해 번쩍 눈뜨니 삼월이가 귀를 납작 붙이고 얼굴을 마주 보고 있습니다. 아침입니다.
여섯 시 반. 알람 소리도 못 들었는데 삼월이 아니었으면 잡부 늦을 뻔했습니다.
잡부에서 돌아와 씻고 건너와 커피 한잔 타서 편하게 앉아 담배를 먹는데,
바닥에 흰 머리칼 하나가 보입니다.
'어휴... 이젠 흰머리까지 뽑히네...'
처음 하는 경험이지만 늙음에 대한 자연적인 현상이 누구 잘못도 아니니 주워 치우고 나서 아무 생각 없이 바닥을 손으로 쓰윽 훔쳤는데 흰 머리칼이 대책 없이 보입니다.
'아니, 대체 이게 어찌 된 일여? 흰 머리칼이 이렇게나 많이 빠져?'
자세히 보니 온 방 안이 마찬가집니다.
'???'
그제야 범인을 찾았습니다.
청소기를 (대충) 돌리며 생각했습니다.
'하루 들였는데도 이런데, 일주일에 청소기 소리 한 번 날까 말까 한 건너채는 도대체 어떨 껴?'
빈속에 술 먹고 몸 상할까,
늦은 귀가에 떠내려갈까,
오래된 집 지붕 날아갈까,
걱정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는 이렇게 자알 있습니다.
202209070420
현숙-오빠는잘있단다
-by, ⓒ 詩人 성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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