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광 소나타 듣는 개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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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ㅁ안방

월광 소나타 듣는 개고양이

by 바람 그리기 2024. 3.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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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와 지지배야! 이 볕 좋은 날 안에 쑤셔 박혀 뭐 하는 겨!'
 식탁 아래 홀로 칩거하며 빈 바깥채를 지키고 있는 삼월이. 소피보러 건너간 김에 밖으로 내몰았다. 작정하고 주무셨는지, 떼꾼한 눈으로 슬금슬금 기어 나와 온몸이 늘어지게 기지개를 켜고는 이내 햇볕이 내린 마당에 좌정하신다.

 내 입에 넣을 것 챙기자고 꼼지락거리기는 귀찮지만, 약을 넣으려니 사전 작업은 해야겠고...  아점으로는 다소 이르고 점심을 또 챙기기엔 어중된 시간. 컵라면에 밥 한술 보태는 것으로 두 끼를 퉁쳤다. 식후 커피와 끽연하며 오늘 중 할 일을 셈하고 마당으로 내려서며 삼월이 우리를 살핀다. 부재중이다.
 '? 이 지지배가 어디 갔지?'
 대문 쪽 골목을 살펴도 안 보이고, 혹 옥상에 올라갔나 살피니 문이 잠겨 있고? 요상타???
 그렇게 기웃거리다가, 마당 끝 광 근처에서 미동 없이 얼음땡 놀이에 빠져계신 것을 발견했다.

 웃음이 빵, 터져 나온다.
 '또, 고양이가 빙의하셨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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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단과 화분에 규소비료 뿌리며 힐끗힐끗 바라봐도 여전하다.

 아직 밖으로 내지 않은 안채 화분에도 비료를 뿌리고, 옥상 화분 몫을 덜어 올라선다. 옥상으로 향하는 문 여는 소리에 본능적으로 쫓아와 코를 바닥에 박고 한 바퀴 휘이 돌고는 오줌 한번 깔기고 바로 내려간다. 평소답지 않다. 얼음땡 놀이에 정신이 팔린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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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은 비료를 단도리해 광에 넣어 놓고 나서는데, 내가 오가건 아랑곳 안 하고 그 자리를 지키고 계신다. 미간에 주름을 세우고 코를 벌렁거리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며 또 웃음이 빵 터진다.

 '삼월아! 그려, 너라도 어디 한번 밥값 좀 해봐!'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돌아서는데, 발밑에 뭐가 물컹 밟힌다.

 

댕댕이의 환골탈태

퇴근길에 산 족발을 덜어 담은 접시를 들고 삼월이 언니께서 들리셨다. "삼월이가 퇴근하는데 아는 척을 안 하더라"는 아드님의 말씀을 전한다. 아마도, 본인 퇴근길에도 그러했나 보다. 꼬리를

sbs150127.tistory.com

 '허허~! 밥값 하셨네 그려!'
 웬만하면 사탕 얻어먹으려고 쪼르르 쫓아올 텐데 변함없이 정위치다.

 고양이가 빙의 된 삼월이.
 오늘은 식음 전폐하고 종일을 그 자리에서 복지부동이셨다.
 지금도 그자리에서 월광소나타를 듣고 계실지 모르겠다.

 

 
 202403142624목
 Beethoven-Piano Sonata 14 In C Sharp Minor_Op 27_월광
 마침 장날이니 식모커피 핑계로 장 귀경하고 탁배기 한잔 마시고 들어오려고 했었는데, 재명이가 방문한단다. 그곳에서 아는 사람들 마주쳐 영혼 없는 미소 지을 생각 하니 피곤하다. 그 시간을 피하려고 어물쩍거리다가 파장 무렵이 다 되어 포기하고, 삼월이 언니께서 가져다 놓은 라테를 덜어 마시는 것으로 대신했다. 피는 담배 다 떨어지면 새벽에 편의점 가서 사 오던지 할 모양이다.

-by, ⓒ 성봉수 詩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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