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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ㅁ안방

가스라이팅.

by 바람 그리기 2024. 3.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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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지밀 한 팩으로 빈속을 도포하고 마주한 벗과의 술밥 자리.
 사설 중 뒤통수에 닿은 업주의 추임새,
 "말도 못 해요, 한 단에 7천 원 하던 게 만칠천 원 해요!"
 <물가 타령전(못 살겠다 갈아보자. 지역은 민주, 비례는 조국혁신)>에 추임새를 얹어 두드리는 고수의 북 울림이 얼마나 크던지...
 떨어진 파채 더 달라는 말이 쏙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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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걸음을 낚여 주저앉은 아파트 단지 한쪽 컴컴한 정자.
 박카스 맛 젤리에 캔 맥주 하나씩.
 공로연수 중인 벗은 한 학기 남기고 휴학하고 어학연수 준비 중인 큰아이와 군 복무 중인 둘째, 뒷바라지 끝나지 않은 자식들 걱정 보따리를 풀어놓는다.
 <"신분 상승을 위한 토대"를 마련해 주는 것이 부모의 책무>라는 소신과 <"공직을 퇴임하는 현실적 금전 능력의 한계"> 사이에서 어정쩡 양발을 걸치고 내뱉는 한숨.
 아이들을 알아서 각자도생 시킨 무능력한 잉여 인간의 입장에서 딱히 등 두드려 줄 말도 없고,
 '"우리 때야 소 내고 자갈밭 팔아 뒷바라지해 주신 부모 공덕에 감사할 줄 알았지만, 지금 애들은 부모가 힘겹게 놓아준 사다리를 밟고 올라선 곳이 오로지 본인의 능력이었다고 여기는 게 문제지. 아니지, 그렇게 생각만 해도 다행이고 '왜 나는 저 사람처럼 더 높은 곳에 올라가게 밀어주지 않았느냐!'라는 원망 듣지 않으면 다행인 거랴. 어느 사회학자가 한 말여. 그래서 말인데 내 생각에는, 식당에서 소란 떠는 아이를 나무라는 사람에게 '당신이 뭔데 남에 아이에게 꾸지람이냐!'라던 것이 뉴스에 나왔을 때, MZ세대 신인류의 출현을 예고한 것이었고, 그 신인류가 성인이 되면서 '금수저 흙수저 타령'을 서동요처럼 부르기 시작한 겨. 하지만 말여... 어느 단계까지야 부모가 사다리를 놓아 올려놓을 수 있어도, 결국은 당사자들의 성향에 따라 애초부터 올라갈 놈은 사다리가 없어도 기어서라도 자기 자리로 올라가고, 그렇지 않은 놈은 부모의 조바심이라는 약발 떨어지면 상승은커녕 굴러서라도 제자리로 돌아오게 돼 있는 겨. 물론 그렇다고 원초적이고 무조건적인 <부모의 책무>의 무게나 굴레에서 경감되거나 벗어날 수는 없는 일이지만 말여. 니나 나나 그 신인류의 아비고, 이제 신인류의 부모도 뭐 주고 뺨 맞 듯 일생 해바라기 노릇 하고도 꼰대 소리만 들을 게 아니라 신인류의 부모답게 바뀌어야 햐. <희생과 베풂>의 진정이라는 순진한 역량만으로는 신인류가 추구하는 갈증의 눈높이 못 맞춰. 우리 살날이 길어야 10~20년밖에 더 남았것어? 친구는 연금도 많이 나오니, 다 큰 애들에게 몰방하지 말고 병들어 꼼짝 못 하기 전에 그 돈으로 부인이랑 여행이나 다니셔"
 말은 조조가 환생한 듯 일사천리로 참 쉽다. 남의 일이니 그런 거다. 그렇게 남의 말이 빠져나오는 공간에 빠르게 채워지고 있던 생각...
 (옛날, "캔 맥주를 편의점 노상에서 먹어 보는 게" 버킷리스트라고 했던 헌종이. 그 버킷리스트를 함께 지워 버리던 날 처음으로 맛보고 쭈욱 즐겨왔던 아사이 맥주. 일본과 벌어진 소부장 사태 때부터 카스로 갈아타고 불매하기 시작한 아사이 맥주. 오늘은 그 맥주로 먹어볼걸 그랬네. 헌종이는 잘살고 있것지... 날, 안개 자욱하던 포도와 희미하던 가로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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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른 시간인데도 잠긴 대문.
 이럴 때마다 누구에게 전화해야 하나 늘 고민이다.
 "알았슈!"
 웃옷을 고무줄 안에 넣어 젖 아래까지 끌어올린 무릎 튀어나온 추리닝을 입은 삼월이 언니께서 폭탄 맞은 머리를 벅벅 긁으며 나타나 문을 열어주셨다.
 
 이를 닦고, 겡기랍 같은 베트남 커피와 동결건조 맥심 오리지널 커피 한 스푼씩을 섞어, 또 커피를 탄다. 오늘 네 잔 째이니 양호하긴 하다.
 커피를 타며 생각한다.


 "배가 이렇게 빵빵하게 부른데, <종일 빈속>이라고 중얼거리는 건 또 뭐여? 몰아치기건 뭐건, 세끼 챙겨 먹은 것보다 총량으로는 더 먹었으니 손해 볼 것 없는 하루였는데, <종일 빈속>은 또 뭐여?"

 가난을, 독거노인을, 뒷방 늙은이를...
 가스라이팅 시키는 이유가 도대체 뭐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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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을 뜬다.
 새로 두 시 반.
 또 서재에 앉아 잘 잤다. 그려, 이젠 졸거나 절구질이라는 말로 현상을 표현하기엔 도가 넘었다. 변함없이 꿈도 꿨으니 그냥 앉아서 잔 거다. 종아리에 생긴 피떡이 역류해 심장 혈관을 막아 PC방에서 급사한 놈팽이 뉴스가 갑자기 생각난다. 거실로 나와, 칠성판에 묶인 송장처럼 반듯하고 빳빳하게 누웠다가 양다리를 번갈아 올려줬다. 그러고는 하릴없이 깜깜한 마당을 휘이 돌고 들어왔다.
 '어제, 이 닦으며 슬그머니 바깥채 문 열어 준 삼월이는 아직도 안에서 잘 주무시나?'

 차갑게 식은 커피,
 그 맛이 참으로 경쾌하다.

 

 
 202404080348금
 함중아-안개속에두그림자

 -by, ⓒ 성봉수 詩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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