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맞은 자전거 생각에 맘이 쓰리다.
까짓 거 오래된 자전거이니 금전적으로 따지면야 다른 것 잃어버린 거보다야 대수롭지 않은 일이지만, 특별한 기억을 공유하는 대상이다 보니 섭섭하다. 한편으로는 '이참에 하나씩 정리하는 것도 옳겠다'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개운치 않다.
이 좁은 바닥에서 찾으려고 마음먹으면야 못 찾겠나! 싶어, 오늘은 자전거 찾는 날로 작정했다.
아무리 좁은 바닥이라도 걸어서야 힘든 이야기이고, 자전거를 끌고 나가야겠는데 한 대는 작년 여름에 펌프로 바람 넣다가 타이어가 "펑"-힘도 좋다-하고 터져버려 그대로 쑤셔박혀 있고 다른 한 대는 탄 지가 오래라 바람을 새로 넣어야 한다. 그런데, 삼월이 언니 출퇴근 자전거가 고장 나 끙끙거리는 것을 본 직장 동료가 "타이어나 갈아서 타고 다녀라"며 하나 준 것이 있는데, 이놈의 자전거는 앞으로 몸이 쏠리는 것이 영 자세가 안 나온다. 그래서 타이어만 간 채로 또 그냥 쑤셔박혀 있다.
생각난 김에 새 타이어를 펑크난 내 자전거와 바꿔 끼고 그냥 자전거포에 던져두면 한 대는 정리 되겠구나 싶어 두 대를 끌고 집을 나섰다.
새주막거리에 오래된 자전거포가 있었는데, 그곳을 포함한 건물에 도로 확장공사가 예정되어 점포를 빼야만 했다. 그래서 이사 온 곳이 우리 동네다. 집을 나서 신호등 하나만 건너면 있던 옛 빨래방 자리로 옮겨왔는데, 내가 단골로 다니는 점포가 있으니 가보지 않다가, 두 대를 끌고 가야 하니 거리상 가까운 덕을 본 셈이다.
펑크 수리하는데 오천 원이고 주부 가는데 만 오천 원이니 부속을 가는 것도 아니고 바퀴만 서로 바꿔 끼는 품삯으로 비싸도 만 원 정도면 넉넉하겠다고 예상했다. 혹시 예상보다 덜 달라고 하면 미안한 일이니, 짐받이에 맬 줄이나 하나 사줘야겠다고 생각하고 현찰 이 만 원을 챙겨 갔다.
원래부터 하던 사장님에게서 점포를 이어받아 운영하다 이곳으로 이사 오셨다는데, 딱 보니 시원치 않다.
내가 그래도 한때 공무과 기름밥 먹던 사람인데, 무슨 일이든 자세가 잘 나와야 능률이 오른다. 다시 말하면, 하는 일의 숙련도에 따라 자세가 잘 나온다. 결론은 일 잘하는 사람은 자세가 잘 나온다.
뭐라도 깔고 앉아 자세를 잡고 일해야 하는데, 어정쩡 숙이고 서서 공구 찾는 데만 하세월이다. 중간에 주부를 갈 사람이 들어와 "시간이 오래 걸리냐? 고 묻기에 "먼저 해 주시라"고 배려해줬더니...
바퀴를 뜯어 놓고 맞는 주부를 찾느라고 들었다 놨다 또 하세월이다. 내가 아무리 하는 일 없는 룸펜이라도 기다리는 것도 정도가 있어야지, 참다못해 한 마디 뱉었다.
'사장님, 못 찾겠으면 여기 진열된 새 자전거에서 맞는 거로 우선 빼서 해결하셔! 재고도 없는 거 찾느라 날 다 가겄어!'
우찌우찌 앞뒤 바퀴 모두-일이 쉬우라고 휠 채 통째 다 교체하라 했다- 교체하고, 뺀 바퀴에서 주부(는 오래된 집에 임기응변으로 쓸 곳이 많으니)는 달라 챙기고 공임을 여쭈며 눈은 짐받이 줄을 고르고 있었는데...
"이만 원만 줘요. 싸게 해 드리는 겨"
어찌 보면 중고 자전거 한 대 그냥 주고 오는 건데 이만 원을 달란다. (점심때도 되었으니 뜨끈한 음식이라도 사 잡수셔)라는 맘으로 군말 없이 계산하고 끌고 나왔다.
아점 챙겨 먹고 자전거 타고 집을 나섰다.
우선 어제 도둑맞은 곳에서 이동했음 직한 동선을 역 뒤편으로 정하고(시내에서 도둑맞았으면 대학촌으로 갔을 확률이 높은데 그 점은 다행이고) 그곳부터 역순으로 훑기 시작했다.
없고, 없고, 안 보이고...
찾았다!
죽림 오거리 못 미쳐 용역 사무실 앞에 다른 자전거들과 함께 서 있다.
머리를 촤라락 굴린다.
뛰어 들어가 소리 질러봐야, "모르는 일"이라 하면 끝인 거고. 그러면 누군가 나와 손 델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만약에 일 나간 거라면 날 다 가고 돌아올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려야 한다는 얘기고... 만약 범인을 찾는다 쳐도, 혹시 외국인 노동자라면 이빨 빠진 노인네가 훅하는 성미에 벅벅 거리다 맞아도 창피, 때려도 창피고.
현관 앞에 놓고 어머니 운동 채근하던 자전거.
겨울엔 거실에 들여놓고 어머니 운동 채근하던 자전거.
더 타야 하니, 그만 타니, 실랑이하던 자전거.
그냥 찾은 것만으로도 감사하며 슬그머니 티 없이 끌고 돌아섰다. 참 잘했다.
두 대 끌고 오느라 뒤지는 줄 알았다.
집으로 돌아와 자전거를 원래 자리에 차례로 배치하는데, 삼월이 언니 타던 자전거를 빼앗아 셋째가 독서실 타고 다니던 게 또 눈에 들어온다. 얼마 전에 펑크가 나서 뒷바퀴 바람이 빠졌다고 한 것이 생각났다. 거실로 들어와 살피니 사다 놓은 돼지본드가 보인다. 내 자전거 펑크 때워주시던 아버님 생각이 문득 들었다.
'돼지본드도 있겠다, 주부도 있겠다.'
창고에서 공구 꺼내고 대야에 물 받아 놓고 주부를 빼 펑크 난 곳을 찾으려 펌프질을 하는데 허당이다.
'이상하다?'
주부를 꼼꼼하게 살피니 펑크 난 정도가 아니고 1원짜리 동전만 하게 뜯겨 나갔다. 바퀴를 다 뜯어야 한다는 결론인데... 일이 커지는데... 별 건 아니지만 귀찮다. 오전에 챙겨 온 주부 하나는 멀쩡하니 공구통 꺼낸 김에, 그것으로 갈아줄까? 주부 규격을 살피니 빼놓은 주부가 더 굵다. 해? 말어? 잠시 고민하다 바퀴를 빼기로 했다. 빼면서 살피니, 타이어가 삭아 옆면 접합부가 다 갈라졌다. 일단 시작은 했으니, 고쳐 놓으면 얼마간은 타겠지.
주부를 바꿔 끼고 다시 조립해 바람을 넣고 살피니. '이런 된장"이다.
원 짝보다 큰 주부를 낀 이유도 있겠지만, 타이어가 너무 삭아 터져버렸다. 예전엔 백테 들어간 타이어가 더 비싸고 좋은 거라 했는데 세월엔 도리 없다.
자전거포 타고 가게는 해 놨으니 고쳐서 쓰든 어쩌든….
202011252607수
하...
세금 내는 것을 깜빡했다. 어쩐지 우체국에 자꾸 가고싶더라니.
어젠 자전거 땜에 뱅뱅 돌았길 망정이지, 술이 과해 망신살 씌울뻔했다.
아무리 느낌대로 사는 몸이지만, 한 해 잘 보내 놓고 나서 이 시점에 햇가닥 하면 쓰나.
ㅉㅉ 못 말리는 봉수다.
내일은 잡부 일정 잡혔으니 그만 누워야겠다. 잠이 올랑가 어쩔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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