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포 유감, 손 놓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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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2007.07.03~2023.12.30)

창포 유감, 손 놓는 법.

by 바람 그리기 2020. 6.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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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 년.

 도깨비놀음처럼 흘렀다.

 

☆~ 霧刻齋의 창포 / 바람 그리기 ~☆

단오. 장독 한편 화분에 어머님이 가꾸시던 창포. 누가 물을 주어 가꾸고, 누가 계절을 맞아 베어 삶아, 누가 누구에게 머리를 감게 했는지. 지금은 쑥대머리가 되어 내게서도 애써 외면받는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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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깨비놀음에 휘둘렀던 방망이 주문,

 "...되거라잇, 뚝딱!"

 혹부리 영감의 이야기처럼, 차라리 욕심의 주문이었으면 덜 서운했을까?

 거짓말처럼,

 예언이 되어버린  단오의 창포.

 

 막상,

 오늘의 초췌하고 험악한 몰골에 서운함이 이리 큰 것을 보니,

 엄살의 입방정이기를 바랐는가 보다.

 

 

 작년,

 여느 때처럼 늦가을에  거실로 들여놓은 난 화분들.

 물 한 방울을 구경 못한 6개월 동안,

 향도 없는 꽃을 봄이 오기도 전에 서둘러 피우고 지더라니...

 어쩌면, 창포를 앞선 오늘의 직감이었나 보다.

 

 드디어 마른 잎이 흙에 닿기 시작했다.

 

 흙에 옮겨 붙은 불은,

 이 여름이 가기 전 거꾸로 타올라 장렬하게 소화되지 싶다.

 그 불길은 인식의 틈도 없이 잎마다 후루룩 일어 구차스럽지 않게 이미 꺼져버렸음을,

 어느 아침에야 문득 알게 되겠지.

 

 외면이건 무관심이건, 

 물줄기를 거스르는 편식은 어울리지 않는 노릇이야.

 그리하여,

 겅충 자라 본대 없어하던 고무나무 잎도 추욱 휘어 불이 붙기 시작했다.

 

 망우리 공동묘지에서 "환생을 약속"하며 아무리 고함을 친들 이유 없이 죽어 나설 수 있는 주검은 하나도 없다 하지만,

 때가 지나도 마당으로 내놓지 못한 이유야 뉘 알아줄 바 아니더라도, 치사한 먼지에 불을 붙여 활복 하는 자존심에게는 유구무언이다.

 

 향기 진하던, 붉은 난.

 색이 곱던 노란 난.

 이래 저래  난을 잡고 오래전 얽어 놓은 시구를 직조하지도 못했는데,

 약속한 듯 우르르 떠나가나 보다.

 

 손 놓는 법을 깨우치라는 듯...

 

 

 

 2020단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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