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기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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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2007.07.03~2023.12.30)

할머니 기일.

by 바람 그리기 2021.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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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머님 기일.
 철상하고 음복 잔을 잡고 상석에 앉았는데,
 지짐이를 잘 고인 것이 새삼 눈에 들어온다.
 '이거 누가 고였어? 어쩐 일로 잘 고였네?'
 "예? 잘 고였다고요? 높게 쌓는다고 엄마한테 혼났는데요?"
 으아하다는듯 되돌아온 셋째의 대답.
 '이런 게 고인다는 겨. 제사나 잔칫상에는 이렇게 높고 푸짐하게 쌓아 올리는 겨'


 색색으로 다식 찍어 옷감 짜듯 켜켜이 쌓고,
 은행도, 잣도, 대추도 기예처럼 고이고,
 오징어나 어포로 가지가지 꽃도 만들어 올리고...
 동네마다 그런 좋은 솜씨로 과방 보러 불려 다니던 아줌마들이 한둘은 꼭 계셨는데...
 이젠, "바로 누진다"며 언제부터인지 김도 안 올리니.
 불과 얼마 전의 일상 같던 이야기들이 전설 같은 기억이 되어버렸다.

 

할머님, 어머님.

 내게 늘,
 "봉수야, 욕심 많은 사람이 잘 사는겨"하시던 할머님.
 지금 생각하면, 할머님 눈에 비친 어린 나는 엄청 맹했었나 보다.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손주며느리가 올린 젯밥 잘 잡수시고 가셨나 모르겠다.

 올 마지막 날이다.
 아직은 50대다.

 

 


 
 202112302907목
 박인희-세월
 피곤하다. 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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