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의 핑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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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2007.07.03~2023.12.30)

무덤의 핑계.

by 바람 그리기 2021. 12.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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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이마이가 CD플레이어에 자리를 내주었을 때도, 또 그 자리가 MP3 플레이어와 실시간 스트리밍 서비스에 차례로 밀려났을 때도.
 필름 카메라가 디지털카메라에 밀려나고 플로피 디스크가 USB 메모리로 사라졌을 때도.
 기술의 발전에 따른 순리적인 변화라 여기며 대수롭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경우에는 내게 닿는 충격파가 당황스럽도록 크다.
 <메타버스>
 물론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경험하던 그 상황이 미래 언제의 시간에는 틀림없이 구현되리라고 생각하고는 있었지만, 당혹스럽다.
 그것은 그런 상황을 맞을 만큼 준비되지 못한 내 탓이거나, 준비할 틈도 없이 급작스레 닥친 상황일 텐데 이 급작스러운 변화의 충격이 얼마나 크던지 가슴이 다 벌렁거릴 지경이다.
 5G로 상징되는 사물인터넷이 2019년에 세계 최초로 우리나라에서 이미 상용화되었으니 앞으로 펼쳐질 뻔한 과정을 예상 못 한 내 탓인 듯도 싶고, 상용화되었다고는 하나 실질적으로 원활한 서비스를 제공할 정도는 아직 아니니 아닌 듯도 싶다.



 지역 문단을 대표하는 단체의 기관지 청탁을 받고 쓴 두 편의 시중 하나, 「그네 타는 원시인」

 

[詩] 그네 타는 원시인 / 성봉수

그네 타는 원시인 / 성봉수 컴퓨터 승차장에서 미래로 가는 버스¹에 올라탄다 차비를 안 받는 로블록스²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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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나는 이런 유의 주절거리는 시(?)를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어떤 행사나 단체가 청탁하는 「축시」류. 별 고민 없이 써 내려갈 수 있는 그런 시는 내 작가적 양심에서 <내 시>라고 꺼내놓기가 껄끄럽다. 그런 내가 시적 수사나 감흥 없는 이런 시를 쓰고 발표했다. 한때 얼굴 없던 시인이 써 내려가던 진군가조차 탐탁지 않아하던 내가 말이다.
 시대와 상황과 개인이 놓인 사회적 역할과 능력에 따라 현실참여의 방법이 달라지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돌멩이 던져야 하는 곳에서는 함께 돌멩이를 던져야 하고, 촛불을 들 곳에서 함께 촛불을 밝히는 것이 옳지, 원고지의 감옥에 갇힌 말장난이 무슨 소용인가? 라면서 애써 외면해왔는데...
 그런 내가 시 같지도 않은 이런 시를 공신력 있는 단체의 기관지에 발표하기로 한 이유는, 적어도 이 급변하는 세상의 현실에 대한 고민과 당혹스러움을 기록으로 남겨두고자 함이었다.

 코로나 확산으로 인해 비대면 세상이 현실이 되면서 시간의 첩경으로 우당탕 달려온 메타버스.
 그 피할 수 없는 조류를 맞닥뜨리고 왜 아버님의 꾸지람이 떠올랐을까?
 아버님 퇴근 무렵이면 빌려온 만화책을 이불장 안으로 어디로 숨겨 놓느라 법석 떨던 그때가 생각났을까?
 따지고 보면, 내가 한글을 깨친 것이 만화책을 보다가였는데, 만화책을 보면 왜 그렇게 꾸지람을 하셨을까?

 우리 아드님 자유시간의 일과는 온라인 게임이다.
 물론 게임 자체가 전부가 아니라, 그 안에서 이뤄지는 상대와의 교류와 소통도 한몫하리라 짐작한다.
 컴퓨터를 또래의 다른 집보다 늦게 장만해줬으니 게임 때문에 크게 속 썩여 본 적은 없지만, 설령 그랬다 해도 선친처럼 그러지는 않았지 싶다, (물론, 내 기억이 그렇다는 거지 아이들은 나름대로 눈치와 스트레스를 받았을 수도 있겠지만….)
 부모·자식 간에도 통화보다는 SNS로 의사소통을 더 많이 하는 세상.
 장차 우리 아드님 부부가 메타버스 안에서 부부싸움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참 거시기하다.

 아무리 핑계 없는 무덤이 없다지만,
 지나고 보니 시간이 흐르고야 깨우치게 되는 것이 너무 많다.
 조이스틱과 버튼 두 개가 아는 게임의 전부인 나.
 남들보다 많은 경험을 하며 살아왔다고 생각했지만,
 놓치고 산 것이 너무 많다.

 

 

 
 202112292838수
 방구차mix긴기라기니
 시간이 언제 이리되었나?
 잡부 나가려면 얼른 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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