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띠 할머니
본문 바로가기
낙서/┗(2007.07.03~2023.12.30)

범띠 할머니

by 바람 그리기 2022. 1. 4.
반응형

 

 


갑자기 거세진 바람종 소리.
'눈이라도 오시나...'



 오늘부터 깨작거리기로 계획한 일을 뒤로 미룰 만큼 만사 귀찮다. 왜 이렇게 추운지 몸이 오그라들어 꼼짝하기 싫다. 자는 것도 깨 있는 것 아니고, 누운 것도 앉은 것도 아닌 엉거주춤 벽에 기대어 가끔 담배를 뻑뻑거리며 이불을 어중간하게 뒤집어쓰고 흡사 겨울잠에 든 짐승처럼 숨만 쉬며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를 똑같은 뉴스를 보고 있다가 갑자기 거세진 바람종 소리에 눈이라도 내리는지 부엌문을 밀치고 나섰다.
 부엌문 열리는 소리에 삼월이가 쪼르르 달려와 바깥채 문 앞에 앞서 자리 잡고 앓는 소리를 내며 통사정이다.

 

 '애 계속 이러면 밖에서 못살아. 어쩌려고 자꾸 들여...'
 바깥채 식탁 아래에 쭈그리고 앉아(아예, 자리를 깔아 놨다) 눈치 보는 것을 요 며칠 쫓아냈더니, 오늘은 어쩐 일로 안에 들이지 않았다. 화장실에 들렸다가 마당 한 바퀴 둘러보고 다시 들어오는데 영 미안하다.
 '까까 줄까 삼월아? 알았어. 기다려!'
 서재로 들와 땅콩 캐러멜 하나 챙기고 생각난 김에 이번 달 구충제도 챙겨 돌아가니, 열린 부엌문 틈에 목을 빼고 앉았다.


 그 모습이 토깽이 같아 참 이쁘다.


 노란색을 참 좋아하던 나지만, 사람 눈이 노란 것은 어릴 적부터 선천적으로 싫어했다. 왠지 독하거나 드셀 것이라는 선입관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탁주 집을 하던 이웃 월선네의 영향 탓이었던 듯싶다. (규선이 형이야 종종 보는데, 둘째 누님 동창인 월선이 누나는 운명했다는 소리를 오래전에 들었던 거 같고, 막내 옥선이 누나는 잘살고 계신지 어떤지 모르것네. 치 쓰고 소금 얻으러 갔다가 월선이 엄마한테 부지깽이로 얻어맞던 생각나네. ㅋㅋㅋㅋ)
 그런 내가 눈에 콩깍지가 씌어 삼월이 언니 눈알맹이가 노란 줄을 몰랐으니. 이젠 하다 하다, 루돌프 사촌도 아니고 코가 노란 개까지 기르고 있으니 원....


 이틀 먹은 설거지를 하느라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는데, 냅두고 나온 티브이에서 들려온 "범띠…. 어쩌구"
 순간 떠오른, '그래, 범띠였지. 그럼 올해 환갑이것네? 하...'
 세월이 언제 이렇게 흘렀는지 모르겠다. 콧구멍을 반쯤 막고 얘기하던 그 젊던 사람이 이젠 정말 할머니가 되었구나...

 설거지 마치고 슬그머니 나가 역전을 가로질러 로터리를 돌아 시장으로 들어서 농협 골목으로 빠져 대도 골목을 돌아 우체국 골목으로 밤 귀신처럼 한 바퀴 돌고 왔다. 언제 사라졌는지 옛 '등나무 가든' 건물이 없어졌다. 누군가 사진으로라도 남겨 놓지 않았다면 별수롭지 않게 영영 지워져 버린 시간이 되겠지.

 예상했던 대로, 있을 만한 곳에 내 놓여 있는 연탄재.
 오늘이 휴일 다음 날이니 어제 것까지 합쳐진 양이겠지. 그러니 장구루마 끌고 나가 한 바퀴 돌면 딱 맞을 양이겠다.
 어찌 되었든, 내일부터는 연탄재라도 주워다 쌓아놓아야겠고….

 

 

 

 

 
 202201032619화
 양미란/범띠가시네
 술상무 하면 딱 맞을 위인이 뭔 놈에 대통령을 한답시고 나와서 코미디 하고 있는 꼴을 보면 정말 실소를 금치 몬하것다.

 

★~詩와 音樂~★[ 시집『검은 해』] 겨울을 잊었다고 / 성봉수

 겨울을 잊었다고 / 성봉수  문을 나서니 따뜻하였네  겨울을 잊었었지  돌아와 양발을 벗을 때야  되 돋는 서늘한 정적의 소름  튼 살처럼 심장에 쪼개지는 겨울의 뜨거운 불  아, 문밖은 눈

sbs150127.tistory.com

반응형

'낙서 > ┗(2007.07.03~2023.12.30)'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지 봉수.  (0) 2022.01.07
스무디 먹는 침팬지  (0) 2022.01.05
壬寅年 첫날  (0) 2022.01.02
할머니 기일.  (0) 2021.12.31
무덤의 핑계.  (0) 2021.12.3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