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태그의 글 목록
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8

뿐이고. 내가 한 것이라고는 깨어있던 것. 깨어 있었을 뿐인데 머리가 무겁고 피곤하다. 지난밤엔 밤새 바람종이 울더니 오후 늦게 고양이처럼 눈이 나렸다. 오래된 마당에 솔찮히 쌓인 눈을 치우고, 집 앞 도로를 치우고, 성묘 다녀오며 집 앞 큰길가에 세워뒀던 차를 골목으로 옮겨 놓고, 담배 사들고 돌아와 설 선물 받은 것 정리해서 치우고, 산더미처럼 쌓인 해 넘긴 설거지를 하고, 찌든 내 나는 밥 한술 떠 저녁 먹고, 그리고 깨어 있었을 뿐인데... 마당이 훤한 것을 보니 눈이 또 쌓였나 보다. 설 연휴도 끝났고, 새해 첫 달도 다 지나갔다. 밤새 잠잠하던 바람종이 울기 시작했다. 지금 나는 피곤하고, 줄이 끊긴 연은 실성한 사람 같이 제 멋대로 떠돌고 있다. ★~詩와 音樂~★ [시집 『바람 그리기』] 고독(苦獨).. 2023. 1. 25.
흡사, 잡부 가는 길, 그저 아무런 생각 없이 바라보는 차창 밖. 무중력... 잡부에서 돌아온 길, 부엌문을 열고 들어서자 홀로 깨어 있는 어항. 다섯 시가 막 지났으니 밖은 아직 환한데, 한점 빛조차 새어들지 못하도록 이것저것으로 꽁꽁 틀어막아 놓은 내 안. 동안거의 수행승이 좌정한 침묵의 벽인지, 사람이 되려 마늘과 쑥을 들고 들어선 굴인지, 무력감의 달구질로 다져지고 있는 단절의 관짝 안인지... 정확하게 한 시간 반 자고 집 나섰더니, 한동안 몸이 무거워 혼났다. 요즘 담배를 너무 많이 핀 탓인 듯도 하고. 그나저나, 새로 장만한 전기요. "동작 감지 특허 기능"인지 뭔지가 있어, 생존 반응이 두 시간 동안 없으면 자동으로 3단으로 낮춰지고, 거기서 또 얼마간 지나면 전원이 꺼진단다. 요즘 자리에서 눈뜨.. 2022. 12. 29.
반 무당 "장유유서" ...도 그랬거니와, 못 믿을 기억력 때문에 아침이든 아점이든 나 먼저 첫 끼를 먹고 약까지 먹고 나서 주는 물고기 먹이. 오늘은 어쩐 일로 안방에서 나오자마자 담배를 물고 사료부터 챙겼다고 했다. '어!' 한 놈이 안 보인다. '하...' 물레방앗간 옆 바위에 누워 임종을 맞고 계신다. 어항을 똑똑 두드릴 때마다 마치 살려달라는 도움의 읍소라도 하는 듯, 아가미를 펄떡거리니 속상하다. 혹시 마이신 계통에 약이라도 있을까, 코로나 상비약들의 성분을 살펴도 신통치 않다. 아니 그것보다는 어설피 그랬다가 나머지 놈들에게 탈이 날까 선뜻 맘이 내키지 않는다. '산 놈은 살아야지...' 어제 아점 이후 첫 곡기, 아점. 탕국에 한술 말아 대충 씹어 넘기는 동안, 흘낏흘낏 놈을 바라봤다. 어느 순간,.. 2022. 12. 23.
잃어버린 심장. '이런 거 보면, 아파트 생활이 편하기는 하겠어' '내 손으로 눈 치울 근력이라도 남아 있으니 감사한 일이지!' '삼월이 년은 어느결에 올라와서 천지에 똥 싸놓은 겨! 예전에 할머님은 개가 지붕 올라가면 집안 흉조 든다고 부지깽이 들고 쫓아다니며 정색하셨는데, 기껏 쫓아 올라와서 똥 싸는 ㄴ이나, 똥 싸는 거 보고 내버려 두는 ㄴ 이나! 그렇게 중얼거리며 1층, 2층 옥상 눈 치우고 내려왔습니다. "봉수야, 아버지 눈 치우신다" 어머님 말씀이 문밖에서 들리면, 무슨 말씀인지 알아듣고 얼른 옷 챙겨 입고 밖으로 나서던 어린 나를 생각했습니다. 병중의 어머님 낙상하실까, 눈 오는 날이면 오밤중에라도 마당에 눈 흔적 없이 치우던 몇 해 전까지의 나를 생각했습니다. 장화 신고 올라갔는데, 발꾸락 시려 혼났습니다.. 2022. 12. 17.
눈 내리던 날, 눈 같은 탑시기를 쓰고. 잡부 가는 길. 눈이 펑펑 쏟아졌습니다. 가끔, 땀 식히며 바라본 일상의 밖. 눈발은 오다 멈추기를 번복하며 쏟아집니다. 어쨌건, 첫눈(다운)은 좋습니다. 잡부 하며 처음으로 참도 얻어먹었습니다. 애플파이 한 쪽에 방울토마토와 사과. 그리고 사이다. 물론, 시공주 아주머니께서 챙겨주셨습니다. 일 마치고 들린 사무실. 안경에 앉은 석고 가루를 보고야, 모자로 마스크로 누더기 위로 다 이렇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어떤 이는 말전주만으로, 어떤 이는 자판 몇 개 두드리며 내 일당의 몇 곱절은 벌 텐데...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고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 쑤시는 어깨를 남 탓할 일이 아닙니다. 오야와 함께 퇴근하는 길. 여전히 눈이 내렸습니다. "먼지 많이 먹었으니 씻어 내야지?" 많이 먹은 먼지 씻어내려면 삼.. 2022. 12. 14.
하루 다 가셨다. 바깥 샘 수도에 이상은 없는지... 벌써 두 봉지째의 쥐약. 이쯤이면 그대로 있어야 정상인데, 약을 너무 조금씩 놓는 건지 동네 쥐들이 다 모이는 건지 원. 놓는 족족 잡수시니, 재밌기는 하다. 마당 샘 위에 쌓인 눈. 조금 열어 놓은 서재 안쪽 창. 마주 서는 한기의 명료한 자각이 좋다. 이 바랄 것 없는 지금의 무념을 안고, 식모커피와 깊은 담배 한 모금. 2021. 12. 19.
불빛에 안겨. 퇴근길에 생일축하 케잌과 함께 사 들고 온 막내의 선물. 원래 입는 사이즈인데도 어딘지 큰듯하다. 나이를 먹어 키가 줄고 요즘 들어 체중도 준 탓인가? 한 치수 작은 것으로 입어나 볼 생각으로 오후에 집을 나섰는데, 팔이 맞는 대신 길이가 골반에 딱 걸리니 팔을 올리면 배꼽이 보일 판이다. "하얀 쪽으로 입으면 원래 팔이 조금 길어지더라고요..." 사장님의 말이 아니더라도, 어차피 정장 점퍼도 아니고 엉덩이에는 걸쳐야 하지 싶어 실없이 되돌아왔다. 날은 왜 이렇게 빨리 저무는지, 대문을 밀치고 들어서는데 마당 한가득 먹빛이다. 그 어둠 속으로 또 희끗희끗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고, 서재 창밖의 바람종이 이따금 점잖게 울고 있다. 마당 끝 아드님의 방, 그리고 내 서재. '누군가는 저 불빛 안의 세상을 평생.. 2021. 12. 19.
그대 없는 하늘 아래 눈은 나리고... 새해 첫날 서설이 내린다. 무릎담요를 덮고 온풍기를 곁에 두고 책을 읽으며 하루를 보낸다. 메일과 SNS로 연신 전해오는 새해를 맞는 덕담들. 내가 누구의 기억이 되었건 누가 나의 기억으로 오늘에 있건, 그 어느 것도 지금의 평안함이 흔들리도록 덧붙여지지 않는다. 기억이 되지 않은들 어떠하랴. 그대, 내 안의 지금은 소름 끼치도록 담담하다. 더보기 (무순) 신 협, 임 보, 김영호, 증재록, 나호열, 강태근, 엄기창, 이제하, 표충식, 나태주, 성기조, 강신용, 백경석, 한상수, 이혜선, 진명주, 정종명, 한분순, 정성수, 용혜원, 안재동, 문효치, 김용택, 김재진, 리헌석, 윤보영, 임수홍, 정목일, 지요하, 홍윤표, 손해일 외 2021. 1. 1.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