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ㅁ안방' 카테고리의 글 목록 (2 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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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ㅁ안방61

향소부곡(鄕所部曲) 유감(有感) 일 마치고 외출에서 돌아오는 길. 모처럼 이 오래된 도시의 오래된 뒷길을 따라 걸었다. 고조부님께서 처음 정착하셨다는, 지금은 사라진 은행나무집 길을 따라 걷는다. 어쩌면 이 도시에 유일하게 남아 있을 수 있는 일본식 목조주택 앞에 멈춰 섰다. 뜰을 바라보며 화랑식 복도가 있는 전형적인 일본 집. 내 기억 속에만 생생한 예전 우리집과 똑같던 집. 뜰로 들어서는 문에 자물쇠가 걸려 있은 지 오래인 듯하다. 길 맞은편 주택 대문 앞에 앉아 한가롭게 햇볕을 쐬고 있는 아저씨께 여쭌다. "여기, 사람 안 사나 보죠? 어르신들은 모두 작고 하셨나요?" 아주머님께서는 5~6년 전쯤 돌아가셨고, 아저씨는 자제분들이 서울로 모시고 올라갔는데 그 후로 자식들도 왕래가 도통 없으니 생사 안부도 모르고 있단다. 어머님과 동.. 2024. 4. 17.
감사한 일이지. 산림조합 묘목시장에서 가지가 제일 기괴하게 뻗고 못생긴 놈으로 골라다 심은 것이 삼 년쯤 되었나 보다. 첫해는 그냥 그대로 내버려 두었고, 두 해째인 작년 가을엔 도장지 중 가장 곧게 솟은 하나만 남기고 강전지를 했다. 그런 올해 기특하게도 빗속에 꽃망울이 초롱초롱 매달렸다. 작년 가을 강전지 한 것이, 해거리하는 감나무 밑동을 도끼로 찍은 것과 다를 것 없는 상황이라서. 그래서 생존 본능으로 서둘러 꽃을 피웠는지도 모를 일이지만, 오래된 집 마당 한편에서 조각 볕을 먹고살면서 꽃을 피워 주었으니, 감사한 일이다. 이력서 사 놓은 것 없는지 묻는 내게, 삼월이 언니께서 눈을 땡그랗게 뜨며 반문한다. "취직 하시게유?" (동무들도 평생 다니던 직장을 떠난 것이 얼추 인 마당에, 취직은 뭔 놈에게 취직. 말.. 2024. 4. 16.
안달나다. 볕 좋았던 날. 한 주걱 남은 밥 독독 긁어, 어제 삼월이 언니께 배급받은 상추와 오이를 강된장 쌈 싸서 아점 먹고. 어제 술밥 먹은 뒷정리 겸 설거지하며 쌀 씻어 놓고. 겨우내 굴 안에 거적때기였던 요와 이불과 베개를 옥상에 널고. 독 뚜껑 모두 열어 바람 쐬이고. 어제 마주 앉아 대작했던 곰돌이 푸도 술 깨라고 일광욕시키고. 해 떨어지기 전에, 독 뚜껑 닫고 널었던 침구 내려 원위치시키고. 어제 빨아 널었던 겨울옷 기타 등등 모두 걷어다 거실 한쪽으로 던져두고. 불쿤 쌀로 저녁 새 밥 지었고. 삼월이는 오며 가며 까까나 얻어먹을까? 기웃거리기에 변함없고. 삼월이 언니께서 언제 사다 놓았다가, 친정 보따리에 까먹고 챙기지 못한 꾸덕거리는 머위잎 던져 놓은 것, 밥 하는 동안 손질하고 씻어 건져 두었다가.. 2024. 4. 15.
개사람네. 점심 먹고 차 먹고 담배 먹으며 담소 나누다 보니 하루가 다 갔다. 돌아와 마무리할 생각으로 세탁기에 넣어 둔 겨울 옷 빨래거리가 오늘은 물구경 하기 글렀다. 대문을 밀치고 골목 끝을 빠져나오는데 광 벽 쪽에 뭐가 얼핏 보인다. 기척 없으신 삼월이 우리를 허리 숙여 바라 보니 부재중이시다. 손에 든 쇳대로 바깥채부터 열고 확인하니 식탁 아래에도 안 계신다. 빼꼼 열려 있는 방문을 향해 소리친다. "삼월아, 쥐잡어, 쥐!" 역시 꼬리가 다섯개 쯤 달린 사람개다. 쥐 잡으라는 말에 후다닥 튀어나와 앞뒤 가릴 것 없이 광쪽으로 내달린다. 방금 지나갔으니 그 체취가 생생할 터, 코를 벌렁거리며 좌불안석 이리저리 뜀박질인데, 딱 보니 삼천포로 내빼도 진작에 내뺐다. '사람개가 나은 지, 개사람이 나은 지 한번 겨.. 2024. 4. 13.
반쯤 미친 날. 걷어낸 보도블록 대신 깐 잔디. 한 해 겨울을 나고 단 한 줌도 활착 하지 못한 맨땅에 잡부 나가 캐다 심은 골드매리. 그 크기가 너무 크니 다니기 불편해 그 자리를 대신하려 심은 미국 제비꽃. 심고 나니 번식력이 너무 좋아 모두 뽑아버리려 했는데... 손길을 피한 몇 포기가 조각볕 드는 마당에 살아 봄을 맞았다. 하늘거리는 꽃잎을 보니, '일부러 뽑아버릴 일이던가...' 측은한 맘이 동해 한동안 꽃 앞에 쪼그려 앉았다. 쪼르르 우리에서 나온 삼월이가 변온 동물이라도 된 듯 일광욕을 하는데, 무심한 듯한 그 모습이 그럴듯하다. ★~ 詩와 音樂 ~★ [詩集 바람 그리기] 개층 / 성봉수 개층˚ / 성봉수 레이스가 눈부신 양산을 쓰고 여인이 지나간다 여인을 앞서 사뿐사뿐한 중세 귀부인 흰 드레스가 도도하다 .. 2024. 4. 10.
늙은 말, 당근 먹기. 하루 사이에 움쑥움쑥 곁 잎이 벌기 시작한 화단의 옥잠화(실은 비비추이지만, 늘 그리 불러왔으니...). 그 기운이 워낙 성하니 이대로 하루만 더 가면 아직 꽃대도 서지 않은 상상화가 묻히지 싶다. 겸사겸사 벌지 않은 속잎 하나만 남겨 두고 모두 솎았다. 지금 생각하니, 어머님께서 심으신 후 별다른 손길 없이도 해마다 알아서 솟는 옥잠화. 그 해가 몇 해인데, 고맙다 감사하기는커녕 편애가 심하다. 씻고 소금 푼 물에 데쳐, 양념(고추장½Ts 된장½Ts 고춧가루2Sp 액젓1Sp 간장1Sp 설탕1Sp 마늘1Sp 송하1Sp 식초3Sp) 만들어 들기름(1Sp)으로 조물조물 무쳐서 참기름 한 방울 떨어트려 건너채 한 접시 건네주고 그대로 밥 한 주걱 덜어 살살 비벼 동치미 국물에 저녁밥 맛나게 먹었다. 첫 탄수화.. 2024. 4. 9.
촌띠기들. 주말 휴일을 하루 앞둔 한식. "보식할 떼 한 무더기 먼저 이고 올라가고, 주말에 식구 중 가용 인원 모두 동원해 떼 들려 다시 올라갈" 생각였는데, 일기예보를 살피니 다음 주까지도 비 예보가 없다. 가파른 산정에 물 길어 올 곳도 없고, 그렇다고 한 두어 주 가문다고 보식한 잔디가 쉽사리 죽기야 하겠냐만 효과적이지 못한 일이다. 설 성묘 때 봉분 상태를 보고 해동 후 예견되는 것이 있어 결정한 판단이었지만 상황이 여의찮다. 그러니 "끙끙대고 올라갔다 오느니 비 예보가 든 주까지 기다릴까?" 하는 귀찮은 마음이 든다. 그렇게 점심이 지나도록 귀찮은 마음을 잡고 엉덩짝을 붙이고 있는데 마음이 영 불편하다. "삼월아, 혼자 집에 있느니 함께 할머니 할아버지 뵈러 가자! 여차하면 다녀와서 벚꽃 산책도 좀 하고.. 2024. 4. 7.
웃프다. 몹시 불쾌한 꿈에서 눈을 떴다. 며칠 전에는 슬하의 어린아이처럼 지나치게 유쾌하던 평상의 내가 "농약을 먹는 사고"가 있었고, 진균제인 그 농약은 '단 한 방울이라도 구강점막과 접촉하는 순간, 당장은 표가 안 나도 시간이 흐르며 발현되는 화학반응으로 인해 장기가 하나하나 녹아 들어가 시름시름 앓다가 꼴까닥'하는 백약무효 처치 불가의 극약인 걸 알고 있었는데. 그런 내 앞에 어머님께서 생시처럼 나타나셨고,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며 '아, 농약 중독증상이 나타나기 전에 어디 먼 타국에 돈 벌러 떠난다는 핑계라도 둘러대고 나를 아는 모두의 기억에서 씩씩하게 슬그머니 증발해야겠다'는 다짐을 되뇌다 잠에서 깼다. 내 추저분한 마지막을 들키지 않아야 하겠다는 조급함이 앞서, 모처럼 뵌 어머님께 반가운 인사도 못 올.. 2024. 4. 3.
술독에 빠져 죽을 넘. ↘빠듯한 공기 때문에 잡부 불려 나간 일요일 오후. 기억 저편으로 까맣게 잊힌 복대동의 회상. 그 동네 큰 길가 언저리 뭐시기 나이트클럽에서, 그이가 불렀던 노래. 하필이면 그 노래 "남남" 속마음을 들켜버린 것 같아 당황스럽던 청춘의 그 밤. 하필이면 그 노래, 최성수의 "남남" 때문에 결국 한 동안 돌아서지 못했던... ↘잡부 마치고 그 길로 마주 앉은 탁주 집 탁주 집 입구 옆에 쪼그려 앉아 담배 먹는 동안에도 이명처럼 떠나지 않는 그 밤의 노래. '참 옛날이야기네. 잘 살고 있것지...' 모르는 이가 들으면 천하에 바람둥이였는 줄 알겠으나 이 면상에 그럴 주제는 못 되고, 몇 안 되는 기억도 참 징그럽게 파란만장했다. ↘찻집에서 에스프레소로 한잔하고 돌아와 작업복 누더기를 입은 채 서재에 앉았다... 2024. 4. 2.
하... 졸려 디지것다! 10시 무렵, 잠에서 막 깨어 비비적거리는데 받은 연락. 내 짬이 나기를 기다리던 미팅 확인 톡. "비 오니 일 안 가셨지요?" 11시 반에 픽업 온다는 답신을 받고 번뜩 생각하니 할 일이 밀렸다. 오후 세 시쯤에나 보자고 다시 톡을 보내고 부엌으로 나오니 산더미 같아야 할 설거지통이 깨끗하다. '아, 참!' 어젯밤 새로 두 시쯤에 해치운 걸 깜빡했다. 그러면 힐일 하나는 지워진 거고... 문을 열고 확인하니 비가 정말로 웬만하게 온다. '흠... 아무래도 빨래는 다음에 해야겠는걸? 당장 하기로 했던 것은 정리되었으니, 그냥 그 시간에 미팅 잡아야겠네' 일정 꼬이기 전에 잽싸게 톡을 여니, 방금 보낸 톡을 확인 안 했다. 바깥채 컴컴한 식탁 아래 혼자 좌정하고 계시던 삼월이를, 씻고 나오며 밖으로 모시고.. 2024. 3. 29.
베짱이 된 날. 여느 날과 같이 술밥상을 차려 앉았고. 냉장고에 삐들거리는 시금치 반 줌과 당근 반토막 남은 것 정리할 겸 돼지괴기를 볶었고. 여느 날과 같이 술상 발치로 밀어 놓고 피시식 잠들었고. 푸우며 도라에몽이며 어쩌면 빗자루와 고무나무 정령들까지, 구겨 버린 종이처럼 형광등 아래 찌그러진 나를 올라타 밤새 걸리버여행기 놀이를 했을지 알 수 없는 일이고. 그래서인지, 아구구구 신음을 내며 여느 날과같이 찌부둥둥한 몸을 살살 달래며 꿈도 아니고 생시도 아닌 시간에서 눈을 떴고. 여느 날과 같이 영등포역 노숙자보다 나을 것 없는 먼지투성이 옷 챙겨 입고 품 팔러 나섰고. 집에 돌아와 대문을 밀칠 때, 여느 날과 다르게 삼월이가 골목 끝까지 쫓아오며 반겨줬고. 여느 날과 다르게 일곱 시 조금 넘은 이른 시간에 밥상을 .. 2024. 3. 26.
삼용아, 조오껍띠기 술이나 묵으랏! 외출에서 돌아와 어영부영하다 보니 밥때가 지났다. 밥때라야, 배가 고프지 않으면 건너뛰는 것이 일상이지만 먹고 있는 위장약이 있으니 신경 쓰이는 것이 사실이다. 사실이어도, 밀린 약이 한 주먹이나 되면서도 말이다. '뭐랑 먹나?' '달걀찜을 먹을까? 말이를 해 먹을까?' 어느 것이 덜 귀찮을까? 고민하고 있는데, 삼월이 언니께서 제주 다녀온 아드님 기념품을 건네주고 가신다. '제주에 꿀단지라도 숨겨 놨나? 툭, 하면 제주 나들이일세...' 잘 되었다. 그냥 술밥 먹고 말면 되겠다. 서류 살펴볼 것이 있으니 찜찜하긴 했지만, 살펴볼 맘이 딱히 동하지 않으니 내 목구멍이 우선인 게다. 꺼내 놓고 보니 그럴싸하다. 미역국을 뎁히고, 달걀 두 개 풀어 찜하고, 안면도 파래 부침개인지 뭔지도 레인지에 돌려 잔을 .. 2024. 3. 24.
그래, 믿자. 형은 구레나룻에 파뿌리를 매달고 할아버지가 되어 있고, 이쁜 아줌마셨던 어머님 얼굴엔 굵은 주름이 가득하다. 그렇게, 소원했던 시간의 기별은 각인된 빡빡머리 기억의 첩경을 뛰어넘어 서글픈 면경에 나를 마주 서게 했다. 이렇게 또 한 명의 친구가 자시하(慈侍下)가 되어 고아의 반열로 들어서는 문을 열었다. "쐬주 하나 맥주 세 캔" 객지 상가의 문상에 술 먹을 이가 나뿐이니 시간 늘릴 일 없이 간편하고 효과적인 일이다. 커피머신을 장만한 셋째가 이것과 저것의 캡슐을 내려 맛배기를 청한다. 취향에 따라 자의적으로 시간을 활용하고 여가를 취미에 배분할 수 있는 전제, "현실적 능력". 그 전제를 탄탄하게 딛고 선 셋째의 앞날을 생각하니 절로 미소가 지어지며 참 기분 좋다. 그러니 박으로 리필에 리필을 거듭해 .. 2024. 3. 20.
조현(調絃)의 밤. 베개를 옮겨 머리를 예전처럼 남쪽으로 돌려 누웠다. 무엇이 내게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화두를 잡게 했는지 모를 일인데, 그 정상으로의 회기가 안 맞는 신을 신은 것처럼 너무너무 불편하다. 온몸이 굼실거리는 불편함으로 반은 잠들고 반은 깨어 뒤척이기를 반복하다가, 급기야 엉금엉금 기어 서재 의자에 앉았다. 한기 때문에 이따금 움찔거리기는 했어도, 두개골과 뇌막 사이를 기어 다니던 벌거지가 사라졌으니 맘과 몸에 이분화된 안락의 극단을 따질 일이 아니다. 지난 겨우내, 잠자리가 불편해 머리를 북으로 두고 잔 것이 8할. 그러니 시간이나 숙면의 정도로 따지자면 평상을 바꾼 그것이 오히려 평상이었고, 그랬으니 그것이야 말로 "비정상의 정상화"였다고 여기는 게 합당한 일일 텐데. 나는 왜 그 안에서조차 변화에 대.. 2024. 3. 18.
턱. 셋째가 퇴근하며 하사한 파이. 종이 상자를 막 여는 찰나 다급하게 건너오며 소리 지르는 삼월이 언니. "동작 그만! 동작 그만! 소고기 먹으러 갈껴, 동작 그만!" 첫 급여 턱을 내겠다고 돈 찾으러 은행 갔다는 셋째. ('신입 초봉이 얼마나 된다고 소고기여...') 옷을 갈아 입고 건너채로 가 돈주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앉아있는 식탁. 그 아래 덩달아 들어온 삼월이가 셋째가 사 온 턱받이인지 뭐시기인지를 두르고 눈알을 팽팽 굴리고 앉았다. ('지지배, 첫 봉급을 탔으면 부모님 빨간 내복을 사 와야쥐! 개새끼 턱받이가 뭐람...') 좋아하는 생간과 양도 기름장에 찍어 맛있게 먹고, 된장 찌개에 불린 밥으로 일정을 마감하려 몸을 앞으로 당기는데, 예상 못한 금일봉을 하사한다. 신입 봉급이 얼마나 되련만, 일생.. 2024. 3. 16.
월광 소나타 듣는 개고양이 '나와 지지배야! 이 볕 좋은 날 안에 쑤셔 박혀 뭐 하는 겨!' 식탁 아래 홀로 칩거하며 빈 바깥채를 지키고 있는 삼월이. 소피보러 건너간 김에 밖으로 내몰았다. 작정하고 주무셨는지, 떼꾼한 눈으로 슬금슬금 기어 나와 온몸이 늘어지게 기지개를 켜고는 이내 햇볕이 내린 마당에 좌정하신다. 내 입에 넣을 것 챙기자고 꼼지락거리기는 귀찮지만, 약을 넣으려니 사전 작업은 해야겠고... 아점으로는 다소 이르고 점심을 또 챙기기엔 어중된 시간. 컵라면에 밥 한술 보태는 것으로 두 끼를 퉁쳤다. 식후 커피와 끽연하며 오늘 중 할 일을 셈하고 마당으로 내려서며 삼월이 우리를 살핀다. 부재중이다. '? 이 지지배가 어디 갔지?' 대문 쪽 골목을 살펴도 안 보이고, 혹 옥상에 올라갔나 살피니 문이 잠겨 있고? 요상타??.. 2024. 3. 15.
눕자. 발바닥 화끈거린다. 하루를 꼬박 눈 뜨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지만…. 커피도 마셨고. 누워보자. 202403122657화 Tiny tim-The great pretender -by, ⓒ 성봉수 2024. 3. 13.
가스라이팅. 베지밀 한 팩으로 빈속을 도포하고 마주한 벗과의 술밥 자리. 사설 중 뒤통수에 닿은 업주의 추임새, "말도 못 해요, 한 단에 7천 원 하던 게 만칠천 원 해요!" 에 추임새를 얹어 두드리는 고수의 북 울림이 얼마나 크던지... 떨어진 파채 더 달라는 말이 쏙 들어갔다. 발걸음을 낚여 주저앉은 아파트 단지 한쪽 컴컴한 정자. 박카스 맛 젤리에 캔 맥주 하나씩. 공로연수 중인 벗은 한 학기 남기고 휴학하고 어학연수 준비 중인 큰아이와 군 복무 중인 둘째, 뒷바라지 끝나지 않은 자식들 걱정 보따리를 풀어놓는다. 라는 소신과 사이에서 어정쩡 양발을 걸치고 내뱉는 한숨. 아이들을 알아서 각자도생 시킨 무능력한 잉여 인간의 입장에서 딱히 등 두드려 줄 말도 없고, '"우리 때야 소 내고 자갈밭 팔아 뒷바라지해 주.. 2024. 3. 8.
돼지국밥 작년, 두 포기는 제때 제대로 순이 나오고 꽃도 곱게 피는데 나머지 한 포기와 한해 뿌리 번 또 한 포기와 잡부 났다가 캐와 새로 이식한 두 포기는 삐들 삐들 시원치 않아, '올 한 해는 꽃 보기를 포기'하며 모두 화단에 정식했더니... 비 오시는 경칩의 오래된 집 화단, 상사화의 새순이 쑥쑥 올라온다. 올해는 나비 날개 같은 그 여린 꽃잎이 제대로 벌듯 싶고, 내년에는 더 벌겠고, 그래서 후년에는 누군가의 울에 나눔을 할 수 있었으면 하는. 봄을 맡는 삼월이 개구리 꼼지락거리는 푸른 비린내가 나는 걸까? 새싹이 꿈틀꿈틀 땅을 가르는 새콤한 향기라도 나는 걸까? 오래된 집 마당 양달을 찾아 앉은 삼월이. 바람종 소리에 실려 오는 저만치 것들을 앞 sbs090607.tistory.com 저녁, 삼월이 언니.. 2024. 3. 6.
상대 속도. ↘3.1절 아침. 새벽 4시 무렵부터 바람종이 거세게 울기 시작해, '비가 오나? 비가 오려나?' 생각하며 잠자리에 들었는데 아침이 되어서도 여전하다. 정오가 찍어달리는 시간, 볼일 보러 바깥채에 건너갔더니 아무도 없다. '이것들이 나만 빼놓고 맛있는 걸 사 먹으러 몰려갔나?' 그러고 보니 부엌문 여는 소리에 마중 없던 삼월이. 거실에는 없었으니 방에 있으려니 문을 열었는데, 없다. 마당으로 내려 서 우리 앞에 허리 숙여 들여다보아도, 없다. '어라? 이것들이 증말 나만 빼고 개새끼까지 델꼬 나간 겨!' 마당을 가로질러 대문 쪽 골목을 바라보니 거기에 계시다. 대문 아래 틈에 코를 박고 똥구멍을 하늘로 쳐들고 엎드려 있다. 엎드려서, 길가에 오가는 오만 사람들을 참견하며 짖기에 신이 났다. '어휴... .. 2024. 3. 2.
오줌보 터지다. 잡부마치고 돌아와 씻고 되짚어 나가 앉은 술밥상. MZ세대 행동에 대한 유감으로 시작된 이야기가 대나무 말 타던 시절의 우리들 치기를 무용담처럼 회상하다가 "돌이키니 지금의 MZ세대와 별반 다르지 않았었다"는... 그렇게 앉은 찻집. 샷 추가도 하지 않았는데, 종이컵만 한 이쁜 도기에 가득 내 온 에스프레소. '어? 이상하다? 잔이 바뀐 거요? 샷을 추가한 거요?' "녜, 사장님께서 커피 좋아하신다고 많이 잡수시라며..." 모처럼 사람 냄새나는 기쁜 일이다. 일어나서 한잔, 점심 먹고 한잔, 잡부 마치고 돌아와 한잔, 이렇게 한잔, 집에 돌아와 또 한잔... 고맙고 고마운 배려였지만, 밤새 요강 하나를 가득 채웠다. 2월의 마지막 날. 시간이 어찌 이리도 빠르단 말인가... 202302290648목 Pa.. 2024. 2. 29.
허무한 동침. ↘내과: "잘 오셨습니다. 환자분 같은 상태에는 보통 두 달 정도는 잡수셔야 합니다" ↘신경외과:"이상하다? 왜 자꾸 재발하지? 요렇게, 요렇게 운동해 주셔야 합니다. 이러다가 오십견 오게 생겼는데요..." 호미로 막을 것 가래로도 못 막을까 봐 작정하고 나들이한 병원. 내과에서는 다시 한 달 치 약을 처방받았는데, "식전 약" 때문에 또 난감하다. 열흘에 여드레는 밤을 꼬박 새우니, 새우며 커피를 마시니, 도대체 "공복의 식전" 기준을 어디에 둬야 하는 겨? 신경외과, 벌써 네 번째인 주사. 이렇게 계속 맞아도 되는지 물어보니 "일주일" 지나면 괜찮단다. 그런 걸 보면 스테로이드제는 아니고 항생제 종류 같은데... '이러다 정말 수저질도 못 하것다'는 생각에 '오래전 무릎 손 봤던 D시 전문 병원에 다.. 2024. 2. 27.
따라하기. 분명 속이 비었는데 밥 생각이 들지 않는다. 식전 댓바람에 먹은 라떼의 포만감이 하루가 다 갔어도 가시지 않는다. 기만(欺瞞)하다. 발치로 밀어 놓은 저녁 밥상을 바라보며 부스스 눈 떠 왼팔을 꺾어 오른 어깨를 두드리고 주무르다가 담배를 물고 거울 앞에 선다. 거기, 푸석푸석 윤기 없이 거무튀튀한 거죽을 뒤집어쓴 남자 sbs090607.tistory.com '입 맛이 또 사라졌네... 이제라도 약 먹으려면 뭐라도 먹어야 하는데...' 무청 말린 시래기 걷어다가 무쳐 먹을까? 아니지, 된장 슴슴하게 풀어 국을 끓일까? 지난 초겨을 김장하며 옷걸이에 걸어 놓은 무청 몇 꽁다리를 가지고 기와집을 이리저리 짓다가 와르르 허물어버렸다. 삶고, 불리고 어쩌고... 아무튼 오늘은 늦었고 귀찮다. 부엌에 서서 냉장고 .. 2024. 2. 27.
造花人生 큰아이 초등학교 졸업식 때부터였겠거니 생각했더니, 오늘 사진을 찾아 이방을 기웃거리니 중학교 졸업 사진의 꽃이 달라 그때부터는 아니었나 본데, 언제부터인지 아이들 졸업식마다 들려 있는 똑같은 조화. 노란 장미 조화 한 묶음을 사놓고서, 행사 때마다 장미 한 송이나 안개꽃을 보태 들려주다가 막내 고교 졸업식을 끝으로 집어던져 버렸던. 꽃다발이 다시 쓰임이 생긴 오늘, 생화 꽃다발을 든 손이 생경하다. 조화 꽃다발 사진을 찾아 방 안을 기웃거리다 마주한 잊고 있던 흔적. 내 뜨겁고 간절했던 진정의 시간은 먼지처럼 오간 데 없고, "대책 없이 어쩌다 네 아이 아비 되어 불기 없는 냉골에 손발 동상 걸려 퉁퉁 불어 터지게 한 루저"가 되어있었으니... 내가 디딘 걸음은 삶에 대한 절박한 경외감 없는 소비인간에 .. 2024. 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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