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출녀의 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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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2007.07.03~2023.12.30)

가출녀의 귀향.

by 바람 그리기 2022. 1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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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 비행기가 무슨 연착을 한댜? 시간 반이나 연착해서 내려오는 막차를 놓쳤다네유. 지금 서울역이라는디 어떡하쥬? 그냥 택시 타고 내려오라고 할까유? 아휴, 갑자기 골치가 빡빡 아프네..."
 삼월이 언니께서 다급하게 건너와 떠는 호들갑을 한쪽 귀로 흘려보내며 대답합니다.
 '지연 비행 될 거 생각해서 적어도 한두 시간은 일찍 도착하는 비행기로 끊었어야지. 나이가 한두 살이라 어찌할지 걱정여? 여관방서 자거나 대합실서 자고 첫 차 타고 내려오면 되지!'
 "대합실서 잘 수 있는 거유?"
 '... '

 지연 비행으로 늦게 도착해 서울역 인근 게스트 하우스에서 하루를 묵은 가출녀가, 3년 만에 귀향하는 차표를 톡으로 보내왔습니다.



 누구 집, 누구네들은 인천 공항에서 배웅하거나 맞이하는 모습들을 무용담처럼 잘도 공유하더구먼, 타이어가 삭아 쩍쩍 갈라진 차로 원거리 운행한다는 건 엄두가 안 나는 일이고. 내가 물어보기 전에는 개똥이가 소똥이가 어떤 형편으로 어찌하고 있는지 공유하지 않는 삼월이 언니이니 '알아서 잘 가출했으니 알아서 잘 돌아오겠거니...'하고 있었습니다.

 트렁크가 두 개라니 짐이나 끌어오려 도착 시간에 맞춰 역 플랫폼 중간 대기실에서 기다렸습니다. 열차가 도착하고, 어디에서 내리는지 좌우로 살피는데, 저만큼에서 내린 가출녀가 마중 온 이를 기대하며 둘레 거리는 모습이 보입니다.
 
 '가출녀야!'
 "어, 아빠 왜 이렇게 작아지셨어요?"  내 부름에 답한 3년 만에 첫 대답입니다.



 '이 X아!, 네가 덩치 큰 흑형들 사이에 있었으니 작아 보이지!. 그런데, 헷바닥 꼬불어 들었을 줄 알았더니 한국말 잘하네?'
 "아... 말은 잘 되고 알아듣는데요, 무슨 내용인지 말귀를 잘 못 알아듣겠어요!"

 방구석에 틀어박혀 게임에 늦바람 난 아드님.
 평범하고 쉬운 길 놔두고, 남다른 선택을 한 둘째.
 그리고 첫째와 셋째가 가고 있는 어느 길이건,
 "청춘은 아름답구나"



 둘째 카톡 프로필을 보며 생각합니다.
  <Always Awake>
 "참, 남다르긴 허다... "


 분기마다 만나는 오랜 친구들과의 모임.
 송년회를 겸한 올 마지막 모임을 했습니다.

양은 그릇에 담아 내는 음식, 맛은 둘째 치고개 밥그릇 같아 싫다. ㅠㅠ


 닭도리탕에 각 쐬주 두 병씩을 먹고 자리를 옮겨 맥주 두 병씩을 더 먹고 막차로 귀경하는 친구 배웅하고 깔끔하게 헤어져 돌아왔습니다.

그러고 보니, 안 박사 지난 겨울에도 이렇게 하고 나타났는데? ㅋㅋㅋㅋ


 기쁨은 서로의 기쁨이 되고, 헐렁한 빈틈도 정겹기만 한 오랜 친구들.
 올 송년 건배사는 "건강을 위하여!"였고요,
 명년 첫 모임에는 누구 하나 더 사라지기 전에 단체 사진 한 장 박기로 했습니다. 계제에 모두 영정 사진을 촬영하기로 했고요. ㅋㅋㅋ

 아이들의 세월이 이렇게 오고 우리들의 시간이 이렇게 가고 있습니다.

 

 
 202212111526
 Bruno_Mars-Marry_You-ec_x001s
 바람종 잠든 무각재 오후에

-by, ⓒ 詩人 성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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