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리던 날, 눈 같은 탑시기를 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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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2007.07.03~2023.12.30)

눈 내리던 날, 눈 같은 탑시기를 쓰고.

by 바람 그리기 2022. 1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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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잡부 가는 길.
 눈이 펑펑 쏟아졌습니다.



 가끔, 땀 식히며 바라본 일상의 밖.
 눈발은 오다 멈추기를 번복하며 쏟아집니다.



 어쨌건, 첫눈(다운)은 좋습니다.

 잡부 하며 처음으로 참도 얻어먹었습니다.
 애플파이 한 쪽에 방울토마토와 사과. 그리고 사이다.
 물론, 시공주 아주머니께서 챙겨주셨습니다.

 일 마치고 들린 사무실.
 안경에 앉은 석고 가루를 보고야, 모자로 마스크로 누더기 위로 다 이렇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어떤 이는 말전주만으로, 어떤 이는 자판 몇 개 두드리며 내 일당의 몇 곱절은 벌 텐데...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고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 쑤시는 어깨를 남 탓할 일이 아닙니다.

 오야와 함께 퇴근하는 길.



 여전히 눈이 내렸습니다.

 "먼지 많이 먹었으니 씻어 내야지?"
 많이 먹은 먼지 씻어내려면 삼겹살을 먹어야 하는데,
 어릴 적 삼겹살을 하도 먹어 물린 오야는 삼겹살을 먹지 않습니다.
 그래서 닭갈비 양념구이에 소맥 말아, 이렇게 먹고 잔치국수로 저녁 먹고 돌아왔습니다.

 

누가 내게 다녀갔는가...

" 잡부 마치고 그지꼴로 앉은 술자리. 몇 병의 소맥을 먹고, 밖에 나가 담배 먹고 들어와 다시 앉았는데... 조금 전까지 먹던 찌그러진 냄비에 담긴 콩나물국, 온기가 사라져 차가워졌다는 사실에

sbs150127.tistory.com



 오야가 장모님 호출 받고 인근 도시에 가봐야 해서, 급하게 술 마무리하고 잔치국수는 혼자 먹었습니다.

 누더기에서 먼지 탑시기 떨어질라 살살 벗어 놓고,
 만사 귀찮아 씻지도 않고 그냥 잠들었습니다.


 이른 아점 먹고,
 1층으로, 2층 옥상으로 눈 치우고 내려와 홍차 한 잔 따뜻하게 먹고.
 건너가 씻고 건너와 여름 속옷, 겨울 속옷으로 모두 바꿔 놓고 커피 타들고 서재로 들어왔습니다.



 커튼을 젖히고 담배를 뭅니다.



 창밖 샘 지붕 위에 눈이 쌓였고,
 덧창에는 이슬이 맺혔습니다.

 이 시베리아의 유형지 안에 결로가 맺히다니...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있습니다.
 지금 내 있는 곳은 세상의 한기와 유리된,
 참 따듯한 곳.
 행복한 곳인가 봅니다.
 밥 먹지 않아도 감사해야 할 일입니다.

 

 
 202212141749수
 루비나_박상숙-눈이내리네2022
 밥통에 밥 떨어졌으니 그래도 밥은 해야쥐!
 벌써 하루 다 갔네. 커튼 다시 치고..
 배고프닷!

 -by, ⓒ 詩人 성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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