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믿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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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ㅁ안방

그래, 믿자.

by 바람 그리기 2024. 3.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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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은 구레나룻에 파뿌리를 매달고 할아버지가 되어 있고, 이쁜 아줌마셨던 어머님 얼굴엔 굵은 주름이 가득하다. 그렇게, 소원했던 시간의 기별은 각인된 빡빡머리 기억의 첩경을 뛰어넘어 서글픈 면경에 나를 마주 서게 했다.
 이렇게 또 한 명의 친구가 자시하(慈侍下)가 되어 고아의 반열로 들어서는 문을 열었다.

 "쐬주 하나 맥주 세 캔"
 객지 상가의 문상에 술 먹을 이가 나뿐이니 시간 늘릴 일 없이 간편하고 효과적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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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피머신을 장만한 셋째가 이것과 저것의 캡슐을 내려 맛배기를 청한다.
 취향에 따라 자의적으로 시간을 활용하고 여가를 취미에 배분할 수 있는 전제, "현실적 능력".
 그 전제를 탄탄하게 딛고 선 셋째의 앞날을 생각하니 절로 미소가 지어지며 참 기분 좋다.
 그러니 박으로 리필에 리필을 거듭해 내민들 진미가 아닐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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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종이 억세게 울도록 바람 거셌던 종일.
 염려대로 상사화 줄기가 스러졌다.
 꽃대를 마주할 당연이 무관심의 단절로 꺾어지기 전에 스러진 시간을 묶어주었다.

 고양이 놀음에 맞들려 오래된 마당에서 홍길동 놀이에 삼매 중인 삼월이를 불러 홍삼사탕으로 당분 보충시켜 응원한 후, 창창한 바람종 소리를 온몸에 두르며 담배를 물고 화단 앞에 다시 선다.
 바람의 시기에 맞서 애쓰는 상사화, 그 앞에 마주 서 생각한다.

 '한 해에 한 뿌리씩 버는구나. 이제 작위적 살핌이 없어도 그렇게 벌어 가겠구나. 몇 해쯤 지나면 이 조각볕 드는 화단이 너희들로 가득할까? 상상만으로도 아름답고 흐뭇한 일이다. 그래, 무언가는. 영양가가 있든 없든 무언가는. 내 삶도 뿌리를 벌며 채워지고 있었다고 믿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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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커피를 탄다.

 아마, 여덟 잔째인 거 같다.
 그래 믿자.
 뿌리를 벌며 채워지고 있는 내 삶에 건네는 영양소거나 단비라고 믿자.
 시도 없이 터지는 오줌보의 단초임을 자각하도록 육신의 가용치는 빌빌해졌어도,
 이 필요악이 싹틔우는 반전의 평안을 믿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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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 거센 날.
 상사화 잎의 너울거리는 파도에 매달린 폰 음악을 들으며 '와락' 생각했다.
 '아... 이 바람 앞에 또 누가 서 있을까? 이 음악을 누군가와 나누면 참 좋겠다. 이 음악을 들으며 이 바람을 함께 느끼면 좋겠다'
 누구를 잠깐 떠올렸지만, 자칫 심란함을 나눌 일은 아니고...

 나를 나눌 누가 아무도 없다는 건, 참 쓸쓸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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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감일 넘겨 이곳저곳 그냥저냥 다 밀려 보냈는데, 의무감에 요 며칠 다시 꼼지락거리는 시 한 편.
 탈고 근처에 닿아 여유 부리는 오늘 도착한 새 청탁.
 곰국 끓이는 일이라도 재탕에 불과하니, 마침 탈고할 시로 옹고집 독거노인 신작 시 간택받을 참 재수 있는 곳이다.

 

 
 202403192445화
 이세진-슬퍼마오
 병석부친상(향년91/남천안장례식장)-원용차,승류합류(학성내외대만여행중)
 아, 생물의 나를 증명하는 깜깜한 정적 속 얄밉도록 무념무상한 바람종의 울림이여...

 -by, ⓒ 성봉수 詩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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