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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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ㅁ사랑방

너와 나의 몫.

by 바람 그리기 2022. 1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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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부터 빨갱이가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놈은 이곳에서 제 어미의 몸을 빌려 태어났으니, 이곳이 제가 아는 세상의 전부입니다.
 지 어미도, 정체가 누구인지 모를 애비도, 그리고 그들과 먹이를 다투며 지느러미를 비비던 색색의 무리도 차례차례 떠난 지 오래입니다.
 그러니 내겐 더 각별한 빨갱이.
 그런 빨갱이가 시원치 않습니다.
 
 먹이를 줄 때마다 어항 뚜껑을 두드렸더니, 두드리는 소리가 나면 숨어 있던 놈들도 앞다퉈 물 위로 올라오곤 하는데요, 그제 아침에는 두드리지 않고 먹이를 줘서 그랬던지 빨갱이가 보이지 않습니다.
 움직임이 굼떠지고 자꾸 어딘가에 숨어드는 모습이 불길했지만, 두드림에 어디선가 다시 나타났습니다. 다행입니다.
 그래도 징조가 불길해 먹이 먹는 모습을 꼼꼼하게 살펴봤습니다.
 지느러미가 활짝 펴지지 않고 끝도 지저분한 것이...



 그리고 어제.
 먹이를 주는 두드림에도 빨갱이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 두드림을 채 열 번도 되지 않아 멈춰야 했습니다.
 '만약, 지금 숨이 붙어 있다면, 그래서 먹이를 주는 이 소리를 듣고 있다면, 그 소리를 들으면서도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면, 애를 써도 움직이지 못하는 거라면...'
 그 두드림이 가혹한 고통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는 아예 두드리지 않았습니다.

 유리 벽을 마주하고 물고기들과 마주하고 있노라면,
 '과연, 누가 누구의 관상(觀賞)일까?' 의문이 들기도 하는데요.
 "관상용"이라는 그 냉정한 수사만큼만 정해진 명줄인 듯싶습니다.
 정을 주고 마음을 건넸어도 결국 제가 타고난 인연의 시간이 다하면 떠나가는... 

남은 사총사 놈들을 생각하면, 조개껍질 아래인지 돌 아래인지 어디인지 있을 빨갱이 주검을 헤집어 꺼내 줘야 할지, 그냥 제 난 곳에서 녹아 사라지거나 사총사 먹잇감이 되게 그냥 두어야 할지 고민입니다



 오랜 시간 써오던 무선 헤드셋.
 내장 충전기의 수명이 다 된 건지, 어디 접촉면이 불량인지, 충전기를 연결했을 때만 전원이 들어옵니다. 전원이 들어와도 그 이상의 동작을 하지 않습니다. 술 좋아하는 내게는 분실 염려 없는 아주 적당한 놈이니 아쉽습니다. 충전기에 연결한 채 며칠을 그대로 두었다가, 어디 접촉면이라도 손 볼 수 있으려나 꼼지락거리는데...
 연성, 경성 할 것 없이 모든 부품이 호로록 부서집니다.
 조심조심 살살 손대는 족족 그러하니, 이제껏 제 몫을 하고 있었다는 게 신기할 정도입니다.
 부서진 놈을 차마 버리지 못하고 며칠을 오가며 바라봅니다.
 '그래, 너도 내게 주어진 네 몫의 시간이 다 되었구나. 그동안 애썼다'


 

들판을 지나다...

남들 쉬는 날이라고, 휴일 아침에 잡부 나서는 일이 유쾌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내 창자 어딘가에는 아직도 소진하지 못한 기름 덩이가 남아있는 모양입니다. 미세 먼지인지, 예보처럼 비가 오

sbs150127.tistory.com



 잡부 마치고 막걸리 한 잔 곁들인 순대국밥 먹고 돌아왔습니다.



 배가 그득한데 오늘 내 몫으로 남은 시간이 어중되니,
 떨어진 밥을 할지 하루 더 미룰지 고민 중입니다.

 

 
 202211121611토
 요조_정재일-가을을남기고간사랑
 가슴에 든 담.
 "지발 그지처럼 좀 입고 다니지 말엇! 밖에서 보면 아는체 하것어!"
 -잡부 다녀오니 삼월이 언니께서 장에서 두툼한 노가다 윗도리 사와 디밀며 하신 말씀.

-by, ⓒ 詩人 성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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