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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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ㅁ사랑방

순간의 선택

by 바람 그리기 2022. 10.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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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개 자욱한 이른 새벽 먼 남도 산골짝으로 잡부 나섭니다.



 오야의 급똥 덕에 휴게소에 들러 담배 한 대 꼬실렀고요.





 날이 저물고 서둘러 돌아오다 상행선 같은 휴게소에서 저녁을 먹었는데요, 생긴 것이 매장 위치까지 아침이랑 똑같아 순간 "잘 못 들어왔나?" 했습니다. 촌놈...

 남이 톨게이트 부근에서 갑자기 차가 오도 가도 못하고 멈춰 섰습니다.
 교통방송을 틀어 확인하니,
 "2, 3차로는 공사 중. 1차로에서 차량 화재 발생 진화 중"
 하, 큰일 났습니다. 오줌이 슬슬 마렵기 시작했는데, 대충 톨게이트 빠져나갈 때까지 참을 정도였는데 차가 오도 가도 않기를 30분째이니 난감합니다.
 차라도 창이 얼기설기로 서 있으면 앞 트럭 뒤에 가서 배설할 텐데 4차로의 차가 모두 일렬로 서 있고. 그렇다고 노변까지 나갔다 오자니 언제 어떻게 출발할지 모르겠고...
 "일단은 참는 데까지 참다가 힘들면 손으로 틀어쥐고 있으야쥐" 하다가 갑자기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아니지, 불확실한 노정에 괜히 어정쩡하게 참다가 낭패 보느니 차라리 지금 해결하는 게 현명하것다!'
 작업용으로 가지고 다니는 쓰레기 봉지 하나를 꺼내 일을 해결했습니다.
 자세는 왜 또 그렇게 안 나오고 양은 또 얼마나 많던지요. 혹 삑사리날까 봐 시원스레 쏟지도 못하고 압력 조절해 살살 트느라 애썼습니다. 그렇게 쇼 하는 동안에 차가 슬슬 출발했으니 현명한 선택였습니다.
 한 100m쯤 이동했을까요?
 또다시 멈춰 서 요지부동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앞에 서 있던 20톤 화물차가 슬슬 후진합니다.



 '어!'
 경적을 울려도 그대로 와서 쿵! 부딪혔습니다.
 그렇게 똑같은 행동을 2번이나 더 했습니다. 물론 그럴 때마다 클랙슨과 소리를 동시에 질렀고요. 옆 차로에서 그 모습을 지켜본 다른 화물차 기사가 창문을 열고 내려 보며 한마디 거듭니다.
 "어이구, 칠칠하지 못하게! 대형차는 정신 바짝 안 차리면 자기 차가 움직이는 걸 순간적으로 옆 차가 움직이는 거로 착각할 때가 있습니다. 어른 내려서 기사 불러내세요!"
 
 추돌을 멈추고도 클랙슨을 계속 울렸더니, 앞 화물차 운전사가 인지하고 쫓아왔습니다.
 머리를 긁적이며 "이상하다? 내리막인데 왜 뒤로 밀렸지?"
 오르막을 내리막으로 착각한 것이 아니라도 얼굴에 피곤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모습이 깜빡 졸았던 거 같습니다.
 연락처를 주고받고 다시 출발하게 되었는데요, 순간 소름이 오싹 돋으며 조금 전 '순간의 선택"을 떠올렸습니다.

 30여 분 멈췄다 100m쯤 이동해 멈춰 선 상태가, 앞 화물차와 한 2M쯤 뒤였는데요, 만약에 쓰레기봉투에 방금 배설하지 않았다면 틀림없이 내려 그 사이에서 소변을 봤을 게 뻔했습니다. 몸도 쏙 가려지지, 옆 차로의 차들과는 창문이 겹치지 않게 얼기설기 멈춰져 있지, 5분 정도 더 지났으니 요기는 더 심해졌을 테고...

 까딱했다가는 솜집 아저씨처럼 하반신 이하 골반 박살 나서 옆구리에 주머니 차고 평생 목발 짚고 보내던지, ㅇㅇ아저씨 아들처럼 창새기 터져 그 자리서 즉사했던지, 한 마디로 뒤질 뻔했다 이겁니다.
 휴, 그러니 소름 돋을 밖에요.

 도착해 뒷마무리하고 집에 와 씻고 안으니 11시가 되었습니다.
 몸도 피곤하고 긴장도 풀어지고 현장에서 점심 먹으며 사 온 동동주를 한 사발 따라 앉았습니다.



 그제 모임에서 '낼 새벽에 깜빵 공사하러 간다'라고 절주하는 내게 동료 시인님께서 "그곳 사과 동동주가 맛나다"라는 말을 들었거든요.
 '그곳 가면 춥다. 옷 단디 입고 가이소'라는 부산서 이주 온 시인님 덕분에 잠바도 입고 갔고요.



 그런데 막상 술을 따고 보니 동동주가 아니고 그냥 막걸립니다. 한 병 팔천 냥이니 비싸기는 또 오지게 비싸고요. 어쨌거나 맛만 좋으면 되는데 이 맛도 저 맛도 아니고 그냥 시큼털털한 게 이상합니다.
 '이상하다?'



 그제야 자시 살피니 유통기한이 한참을 지났습니다.
 지났어도 초밖엔 더 되었겠으며, 완숙되었으니 창자 부글거릴 일은 없겠지만 안주까지 지대루 챙겨 앉았는데 기대하던 맛을 못 봐서 잡쳤습니다.


 어쩌면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수 있었던 순간의 선택.
 아직은 나를 염려하는 많은 연의 끈들이 당기고 밀며 만들어 낸 감사한 순간이었던 듯싶습니다.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누가 내게 왔건, 누가 내게서 떠나갔건.
그 순간의 선택이 존재를 존재케 하는 현명한 판단이었을 거라고.

 

[詩와 音樂] 이유 / 성봉수

이유 / 성봉수 만남이 우연이었겠어요 이별이라고 운명이었겠어요 그때 마주 설 수 있던 것처럼 이렇게 된 지금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사랑했고 이별도 그래서 왔습니다 201904071845일쓰고 20190504

sbs150127.tistory.com





 바람종 소리 참 좋은 저녁입니다.
 평안한 쉼 있으시길 빌어요.


 
 202210131734목

 서울시스터즈-첫차ㅡMIX말해뭐해

-by, ⓒ 詩人 성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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