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중시계를 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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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2007.07.03~2023.12.30)

회중시계를 팔다.

by 바람 그리기 2021. 1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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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 물정 모르던 스물넷 아가씨가 못된 놈 꼬임에 빠져 아내가 되고 얼결에  서른이 되었을 때, 사내는 여자의 나이 듦에 대해 혼자 안타깝고 맘 아파했다. 그것은 그녀가 누렸을 청춘이란 그 찬란한 시간을 송두리째 도둑질한 자책 같은 것이었다.
 여자가 마흔이 되었을 때 사내는 가슴을 도려내는 쓸쓸함을 느꼈는데, 그것은 네 아이를 낳고 기르며 울 안에 갇혀 중년이 되어버린 희생의 시간이 측은하기 때문이었고, 그 내면에는 돈 떨어지면 쌀 떨어지고 쌀 떨어지면 돈 떨어지는 늘 쪼들리는 형편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여자는 벌써 쉰을 넘겼는데, 그때가 언제였는지 기억이 없으니 그녀 나이 마흔 이후로는 그녀의 나이 듦에 대한 특별한 생각도 감정도 느끼지 않았다.



결혼 삼십 주년.
사내의 속마음에 약속했던 문을 열고 나서는 해.
마지막 회중시계를 팔아 여자의 빗을 샀다.

 



202112242953금
잡부 나가려면 한 시간이라도 자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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