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도깨비, 산 도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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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2007.07.03~2023.12.30)

밤 도깨비, 산 도깨비.

by 바람 그리기 2021. 6.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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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 장마는 예년보다 늦어진다지만, 더위가 시작되는 것을 보면 언제 어느 날 쏟아져 내릴지 모를 일이죠.
 광에서 삽과 갈퀴를 꺼내고, 조상님께 올릴 식모커피 한 병을 챙겨 헐떡거리는 장화를 끌며 선영에 다녀왔습니다.  
 산을 오르는 초입.

 

 초록의 그늘에 쌓인 산길이 늘 다니던 길인데도 마치 처녀림에 숨겨진 비밀의 정원에라도 들어서는 듯 생경하게 압도합니다. 
 잠시 공포감이 들 정도로 말이어요.  

 산에 올라, 
 우선 부모님께 식모커피와 담배를 고이며 넙죽 절을 하고 옷부터 훌러덩 벗어 버렸습니다.  

 

 다행히도 지난봄에 보식한 떼는 제대로 활착이 되었는데요, 딱 그만큼만 더 보식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도록 아직은 엉성합니다. 
 윗대 어르신부터 물골에 쌓인 낙엽을 긁어내고 쓸리는 곳 없도록 손보고. 
 부모님 묘 마당에 장화 벗어던지고 털푸덕 주저앉아 담배 몇 대 먹으며 바람에게 중얼중얼거리는데, 
 법면 옆 산밤 나무 꽃의 늦은 만개가 콧구멍에 보내는 대답이 장관입니다. 

 

 꽃 냄새에 취하고 새소리에 취하고 바람에 부서지는 참나무 잎의 햇살에 넋을 놓고 앉았다가, 
 땀이 식어갈 무렵 산을 내려왔습니다.  

 내려오면서 뱀딸기를 시름없이 몇 개 우물거리다가,

 

벌레 먹은 못생긴 네 잎 클로버를 손에 넣었습니다. 

 

 산 아래에 내려와서는 푼수 없는 코스모스와 마주했습니다. 

 

촌스러움을 위하여

 선영에서 내려와 차를 돌리려는데 문득 보이는 꽃.  코스모스다.  코스모스꽃이 만개할 때면 하늘에는 으레 잠자리 떼의 군무가 한창이기 마련이니 대표적인 가을꽃이다.  지구 온

성봉수 詩人의 [광고 후원방]입니다

 

 아무리 단일 식물(낮의 길이가 짧아지는 때에 꽃이 피는 식물)이라지만, 오늘이 낮의 길이가 제일 길다는 하지(夏至). 즉, 오늘 이후로는 낮의 길이가 짧아진다는 얘기이니 자연의 섭리 앞에 경외감이 들었습니다.  

 하지. 
 24절기 중 열 번째이고 오늘로 낮이 꺾였으니 올해도 그믐으로 저물기 시작했습니다.
 참 도둑 같은 시간입니다. 

 집으로 돌아와 몇 포기 캐 온 코스모스를 심고 삼월이 언니가 말아준 콩국수 한 대야를 돼지처럼 먹으며 뉴스를 보는데, 비예보가 있군요.  오늘 다녀오길 잘한 듯싶습니다.



 바람종이 잠잠하지만 서늘한 바람이 슬슬 서재 창을 넘어서는 것을 보면 뭐가 오긴 올 듯합니다. 
 아직 잠들지 않으신 분은 꿀잠 이루시고, 
 지금 일어나신 분은 행복한 하루 보내시길 빌어요. 우산 챙기시고요.  
 돼지처럼 먹은 콩국수가 아직 그득하니 잠도 못 자겠고,
 지금부터 뭐라도 꼼지락 거려야겠습니다.

 

 

 
 202106212537월하지
 함중아-이밤이새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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