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대로, 맘 가는대로, 두서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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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2007.07.03~2023.12.30)

느낌대로, 맘 가는대로, 두서없이.

by 바람 그리기 2021. 6.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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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은 의도치 않아도 기억으로 되살아나고, 기억은 자연의 절대 시간 앞에 또 망각이 된다."

대문을 나서는데 진보라의 메꽃이 활짝 폈다. 고개를 들어 올려보니, 몇 해 전 '어머님과 대전 나들이 길에 씨를 받아다 심은 유홍초"를 위해 옥상 끝까지 매었던(두 줄 중 한 줄은 끊어지고 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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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나팔꽃이 피었다.

 

 

변죽

 어제 올해 들어 처음 '유홍초'한 송이가 폈다.  병원 외래진료 마치고 지친 허리를 끌며 집으로 돌아오다 "섭골 작은 할머니 댁 울에 해마다 장관이었던 추억"을 말씀하시는 어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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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의 시작이다.
 서재 의자 뒤편.
 겨울을 함께 나고 장승처럼 여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온열기 부부를 들여놓아야겠다.
 온열기를 분해해 손 보고, 커버 씌워 놓았던 선풍기 두 대를 꺼냈다.
 회전 기능이 고장 난 한 대를 손보느라 주저앉은 자리, 일이 커졌다.
 완전 느낌대로, 맘 가는대로의 결과다.

 선풍기를 고쳐서 놓고, 누더기 드라이기를 손본다.
 가습 기능이 있는 온열기의 물통을 닦아, 물기를 완전히 말려서 치우려고 손 잡았던 드라이기.
 샘 세탁기 급수 배관, 보일러 배관, 화장실 배관, 정수기 급수 배관...
 겨울마다 써 오던 놈이다. 겨울마다 내 머리칼도 말리던 놈이다.
 사라진 주둥이는 pet 병 목을 잘라 박스테이프를 칭칭 감아 붙여 놓았고, 송풍기 위에 덮였던 커버는 떨어져 나가 까딱하면 이사도라 덩컨의 최후를 따라 하거나 손가락이 들어가기 십상이다. (기억의 왜곡이 있는 건지 확실치 않지만, 30년 전 삼월이 언니가 제주도에 가져갔던 드라이기다-?그때는 호텔에도 드라이기가 없었나???)
 그 꼴이 오죽했으면, 셋째가 제 쓰던 드라이기를 제 엄마 편에 내게 슬그머니 건냈을까?
 다른 것은 몰라도, 다른 이가 얼결에 손댔다가 머리카락 말려들어갈라 늘 염려하던 참이었다(전제부터가 오류이긴 하다만).
 육수 망 반쪽 주워 온 것 챙겨둔 것을 다행히 용케 찾았다.
 망을 잘라 송풍기 팬 위에 씌워 마무리하는데,
 드라이기 만지며 내다보이는 서재 창밖.
 차양에 덧대 놓은 스티로폼 일부를, 평상 위에 의자를 올려놓고 의자 위에 까치발로 서서 자리를 다시 바꾸어 잡아 놓고.
 차양 손보느라 평상에 의자 올리다 보니, 의자 다리도 까치발을 들어야 할 정도로 대책 없이 쌓여 있는 잡동사니들. 물론 반절은 내 똥이다.
 차양 손보고 내려와 치우기 시작하는데, 삼월이 언니가 쌓아 놓은 빈 박스들. 딸들이 많으니 연길단자 보낼 함으로든 이바지 음식 보낼 용도로든, 긴히 써먹으려는 깊은 뜻이 있었겠으나 먼지 구덩이이니 과감하게 마당 한가운데로 집어 던지고.
 어머니 투석 처음 시작하시고 거동이 불편하실 때, 넷째 누님이 사 오신 보행 보조기. 유모차 끌고 다니는 분도 많고 작고 염가의 것도 많이 나오지만, 물 건너온 제대로 만든 상품인 데다가 조립해 놓은 후 한 번도 사용하지 않고 지금의 서재에 놓았다가 서재 꾸미며, 적당한 박스 구해서 보관하려고 우선 내놓았던 것인데 그것 역시 먼지 구덩이가 되어 있다.
 '어디 기증할까?' 오가며 눈에 띌 때마다 생각도 했었지만, 내가 쓸 날도 머지않은 듯싶어 오래전 사다 놓은 대형 랩으로 칭칭 감아 광 윗선반 깊숙한 곳에 치워두고.
 타지 않는 자전거 두 대는 삼월이 집 앞 화단 뒤편으로 옮겨 놓았다.
 그러고는 청소기 돌리고 걸레질하고 1층 옥상 콩 물주고 화장실 청소하고.
 ....염병, 밤이 되었다.
 희한하게 종일 배가 하나도 안 고팠다.




 서재 이중 창 사이의 공간.
 먼지가 어찌나 쌓였는지 모래사장이다. 겁날 정도다.
 걸레로 닦아 내려니 엄두가 안 난다.
 청소기로 빨아내고 그냥 신문지를 깔아 마무리하고 내 잡동사니들을 다시 들여놓았다.
 이어 방바닥을 닦는데, 연탄 닦는 것 같다.
 무릎을 끌며 아무 생각 없이 닦아가다가 불연 의문이 든다.
 '이상하다? 머리카락은 많이 있었어도 걸레는 바로 행주로 써도 될 만큼 늘 깨끗했는데? 그러고 보니, 창 사이도 청소 때마다 닦았는데 왜 그렇지?'



 '아... 앞 점포!'
 앞 점포 인테리어 공사하며 먼지가 쏟아져 나오는데, 삼월이 언니가 빨래 가득 널어놓고 갔을 때 '빨래 널었어요. 문 닫고 하시죠?'라고 딱 한 번 말했을 뿐. 먹고 살자는데 야박하게 굴기 싫어 내버려 뒀더니, 이 지경이 되어버렸다. 그럼 그렇지. 아무리 밤낮으로 차들 멈추지 않는 1번 국도변에 산다지만, 먼지가 이 정도라면 폐병으로 누워도 벌써 누웠을 일이다.
 남 편의 봐줄 것 없이 선 긋고 사는 게 옳은지...
 거실 걸레질하다가 또 느낌대로 눈에 띈 김에 올라간 체중계.
 72kg이다.
 '뭐랴?'
 72kg이면, 군대 가기 전 총각 때 딱 그 몸무게다. 가뿐가뿐 날아다니던 시절의 그 몸무게다.
 '뭐랴? 배불뚝이는 어찌 된 거랴? 회초리가 된 허벅지 근육이 배불뚝이 살과 상쇄된 건가? 그것도 아니면, 알이 쪼그라들었나? ㅋㅋㅋㅋㅋ'



 '뭐랴?'
 바람종이 갑자기 울기 시작해 밖을 보니 날이 훤하게 밝었네? ㅋㅋㅋㅋ

 하이고...
 이것저것 할 일은 많은데, 엄두를 못 내겠네.
 쩝….

 

 


 202106133023일
 이정보남자의눈물
 행복한하루되소서!
 희한타...졸리지도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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