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는 많이 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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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2007.07.03~2023.12.30)

비는 많이 오고...

by 바람 그리기 2022. 8.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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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많이 왔습니다.

 7남매가 여기저기 흩어져 살아도 "호우 경보"에 무관한 분이 없습니다.
 후덥지근한 현장.
 창밖에 멈춤 없이 쏟아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물을 들이켤 때, 
 "마루 턱까지 흙탕물이 찰랑이는 마당에 둥둥 떠다니던 밥그릇"
 지금은 그때의 고생이 추억이라는, 우기의 친정집을 걱정하는 누님의 톡을 받았습니다.


 그만큼은 아니었어도 이미 땀으로 젖은 몸이었는데.
 작업 마치고 장비 하차하다가 시궁창에 빠진 새앙쥐 꼴이 되었습니다.

 오야와 술밥으로 저녁밥 때우고 오야가 사준 편의점 비닐우산에 숨어 집에 도착하니 대문 앞이 발목만큼 물에 잠겼습니다.
 욕심 많은 노 씨.
 예전 시에서 하수 오수관로 정비작업 때에, 기존에 있던 배수관(노 씨가 건물 신축하며 만든 간이 맨홀)을 없애고 물매 잡은 보도블록 위로 흘러보네 인도 밖 메인 우수관으로 유입되도록 시공하려는 것을, 노 씨가 없애면 안 된다며 떼를 써서 그대로 유지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맨홀의 뚜껑이 개방형인 데다가 우리 집 담과 경계한 노 씨의 건물 골목에, 오가는 이가 쓰레기를 버리니 툭하면 흙과 오물로 배수관이 막히고, 막힌 물이 우리 집 대문 앞으로 고인다는 데 있습니다.
 목마른 놈이 샘 판다고, 때마다 그거 뚫는 일이 내 몫이 되었습니다.
 집에 들어가 삽과 호미 챙겨다가 흙을 퍼내고 리모델링 중인 건물 인부들이 쭈그려 버린 커피 캔이며 잡다한 공사 쓰레기들을 걷어 냈습니다. 그래도 뚫리지 않고 비는 억수로 쏟아져 점점 더 물이 찹니다. 무릎 꿇고 앉아 배수관에 손을 넣어보니 흙으로 꽉 막혔습니다. 창고에 가 강철 철사를 꺼내와 쉼 없이 쑤시기를 30여 분. 드디어 뚫기는 했는데, 술밥 먹으며 꾸덕꾸덕 해잔 옷이 도로아미타불이 되었습니다.
 어차피 베린 김에 옥상으로 어디로, 배수관 막힌 곳은 없는지 다시 한번 살피고 내려와 젖은 옷 훌러덩 벗고 빤스바람에 티브이 앞에 앉아 있다가, 등이란 등 문이라는 문은 모두 켜고 열어 놓은 채 스르르 잠들었습니다. 
 그렇게 모기에게 신체공양 하다가(염병, 발뒤꿈치를 또 공략 당함) 티브에서 무지개 뜨는 고약한 소리에 눈뜨니 새로 한 시 반이 지나고 있습니다.
 "아이고, 씻어야쥐..." 웅얼 거렸는데,
 여섯 시 반 김수미 아줌마 욕 소리에 번쩍 눈을 뜨고 하루를 시작합니다.
 네 시간이 어찌 흘렀는지 모르겠지만, 모기님들 포식하셨습니다.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 주어요"
 잡부를 하다가, 나도 모르게 "가을 편지" 노래가 흥얼흥얼 흘러나왔습니다.
 가을은 이미 내 가슴에 닿아 있는 듯싶은데요,
 이 가을, "내 편지를 받을 그대가 될 누구"
 지금은 곰이 되어 떠나버린 웅녀. 그 내 맘 안의 빈 거리에 대해 멈칫, 생각했습니다.
 "진짜 외로운 이"가 누구일까 생각했습니다.


 '오늘 회식이야 늦어'
 '소똥이 만나서 술 먹고 있어. 밥 먹고 들어갈게'
 '오늘 퇴근해서 개똥이 만나기로 했어. 먼저 밥 먹어'
 오야와 술밥 먹다가 담배 피우러 밖에 나와 쏟아지는 비를 보며 문득 떠올린 기억입니다.
 '그래, 내게도 그런 때가 있었지...'
 지금은 누가 언제 어떻게 들거나 말거나 관심 없는 시절에 닿아 있지만,
 귀가 시간을 걱정하고 걱정하는 이를 걱정하고, 문을 밀치면 우르르 달려와 바짓가랑이에 매달리는 아이들이 있던.
 젊음 하나로 힘이 되던 그런 시간이 내게 있었다는 것을...
 식당 한편에서 회식하고 있는 유니폼 입은 사람들을 바라보며 떠올렸습니다.

비가 많이 옵니다.
 

★~詩와 音樂~★ 편지 / 성봉수

 편지 / 성봉수  국화 모종을 뜰에 심었다는 날  나는 우체국 계단을 내려서던 중이었지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쓴 시인의 편지는¹  가난한 가인(佳人) 덕에 시가 되었는데²  그대의 뜰엔 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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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월이는 너무 걱정 마세요.
 우리가 비 안 들이치는 채양 아래에 있고요, 말 만 마당개지 지가 사람인 줄 압니다.

-by, ⓒ 詩人 성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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