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월이 밥값 한 날.
본문 바로가기
낙서/┗(2007.07.03~2023.12.30)

삼월이 밥값 한 날.

by 바람 그리기 2023. 3. 23.
반응형

 

 

 

 

 삼월이 짖는 소리가 예사소리가 아니다.
 앙칼지고 발을 동동 구르는 소리다.
 벌떡 일어서 마스크를 챙겨 쓰고 마당에 내려서 골목 끝을 바라보니, 대문 아래 우리 집을 향해 서 있는 두 발이 보인다.
 '어, 형! 웬일여?'
 "동생 보고 싶어서 왔지!"
 '그려? 차는? 형 잠깐 지둘려요. 옷 좀 갈아입고 나올게'
 맘 한편으로는 얼른 들어오시란 말이 가득했지만, 굴속 같은 집 사는 형편이 가관이라 차마 뱉지 못하고 근처 찻집에서 마주 앉았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밥 먹었어? 밥 먹을까?"
 '형, 지금 시간이 네 시 반여. 지금 밥 먹으면 점심여? 저녁여? ㅎㅎ'
 사실을 그 시간이 되도록 빈 속이었으니 핑곗김에 잘되었지만, 한 시간 남짓 대화하는 도중 행선지를 확인하는 몇 차례의 전화 받는 거를 봤으니 마냥 시간 뺐기가 그래서 지나가는 인사로 생각하고 사양했다.
 "언제고 시간 나면 전화해. 자주 보자고!"
 '녜"
 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돌아오며 생각했다.
 '근래 안부 전화를 한 번 넣을까? 생각하고 있었더니... 둘 중 하나는 텔레파시 송출 장치 성능이 좋던지 수신 감도가 좋은 모양이네! 허허'
 집으로 돌아와 삼월이를 칭찬해 줬다.
 '어이구, 모처럼 밥값 하셨네? ㅋㅋㅋ'

 어제 선영에서 개나리 삽목하며 목도한 심각한 가뭄.
 비 예보를 확인하고 때맞춰 나선 길이지만, 먼지만 폴폴 날리는 게 가뭄이 예상보다 심각하다. 며칠 전 다이소에서 사다 놓은 양귀비 씨앗. 아직 파종 시기가 아닌 이유도 있었지만 그래서 비 예보가 있기를 간 보며 기다려 왔다.
 쇠스랑으로 화단 파종할 곳을 다듬는데, 전체가 삼월이 생 똥이다. 모두 정리하려면 집을 들어내야 할 판이니, 쇠스랑으로 긁히는 거대 분변만 대충 긁어 쓰레기봉투에 담아 치웠다. 씨앗이니 망정이지, 만약 뿌리라도 있는 것을 심었다면. 그래서 화단을 조금이라도 파야 했다면. 그 안이 어떨지 안 봐도 비됴다. 얼마 전 화단 울타리가 기울어져 있고 바닥이 인위적으로 평탄화돼 있는 것이 보여 '또 냉장고 정리해서 묻으셨구만...' 짐작하고 있던 터다. 뚫리지 않는 귓구멍은 무슨 수를 써도 안 뚫린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그냥 그러려니 함구하고 있었다.



 지난 어느 무렵인가, <물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력>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아마 그 무렵이었던 거로 기억되는데 세미나(약장수)에 다녀오신 어머님께서 지하수를 다시 파기로 작정하셨다. 원래 우리 집은 수도가 가설되기 이전,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동네에서 몇 집 없는 펌프가 있는 집이었다. 수도가 설치된 후에는 펌프 대신 양수기를 달아 지하수를 한동안 병용했었다. 그랬는데, 일제시대에 설치하고 사용하던 그 관정 대신 새 관정을 깊게 파기로 하신 거다. 마침 어머님 육촌 형제께서 지하수 개발업자여서 계획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쇠스랑으로 삼월이 똥을 긁어내며,
 <건강을 위해 지하수를 파신 어머님>과 "지렁이가 버글버글하니 얼마나 건강한 땅"이냐고 <거름론>을 주장하며 귓구멍을 막고, 음식 잔반에서부터 온갖 쓰레기를 화단에 묻는 삼월이 언니를 생각했다.
 하루 이틀 한 번 두 번도 아니고, 땅에 묻은 그것들이 결국 어디로 가겠나?
 어머님은 건강을 위해 깊은 샘을 파셨지만, 결국 지금 우리 식구들은 상해 썩은 음식과 삼월이 똥 우린 물을 먹고 살고 있다.
 그 결과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는 조금 더 늙고 힘 떨어지면 알게 되겠지.

 귀찮은 이유가 앞서지만, 부정기적으로 변변치 않게 먹는 때.
 그것도 반은 라면으로 해결하고 있으니 아무래도 밑반찬을 해 둬야겠다.
 냉장고 탈탈 털어  삼겹살을 주물럭으로 지지고, 남은 양념 국물에 토란대를 볶고, 손톱만 한 한 조각이면 밥 한 그릇이 모자라는 간장에 박은 무장아찌(삼월이 언니가 어디서 얻어다 삼각형으로 희한하게 썰어 나름 양념해서 먹다 처치 곤란이니 사랑채 냉장고에 집어 던진 지 족히 네 해는 더 넘긴)도 앞치마 두른 김에 가미해서 기름에 살짝 볶고, 라면을 먹을 때도 챙기지 않을 정도로 냉장고에서 화석이 되어 가고 있는 신경질 나는 소태 김장 김치를 단 것 조금 넣어 볶고, 배춧잎 찢어 한동안 먹을 된장국도 끓여 놨다.
 날 푹해지니 여차하면 상할 테니 조금만 끓였지만, 상하기 전에 잘 챙겨 먹을까 모르겠다.
 

 03:38부터 비.

 

 
 202303222851수
 전광훈 목사-모든 만민들아 주를 찬양하여라.
 피곤타...

 

 

 

반응형

'낙서 > ┗(2007.07.03~2023.12.30)'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포  (0) 2023.03.29
연유  (0) 2023.03.29
春分餘情  (0) 2023.03.22
명료함 혹은 촉.  (0) 2023.03.21
고무신 가게의 신파(新派)  (1) 2023.03.19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