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렁설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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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2007.07.03~2023.12.30)

설렁설렁

by 바람 그리기 2023. 1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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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직포 한 겹으로 덮어 놓고 갔던 무.
 여행에서 돌아와 살피니 가생이 잎이 시르죽고 살짝 얼음 들었다.
 밤사이 예보가 -6℃이니 하루 벗겨 놓아 일어선 놈들을 다시 두 겹으로 덮어 놓고, 떨어진 혈압약 타러 집을 나섰다.
 약 타러 가는 길에 섣달 초일 내시경 예약된  다른 병원 들러 문진 후 사전 약 받아 들고 여인숙 뒷골목을 담배 물고 쭈욱 걸어 병원 도착해 문진 없이 혈압약 처방전만 받아 나와 길 건너 시장으로.
 
 "아니, 액젓으로 편하게 담지! 뭐 하러 그걸 사유?"
 '황석어도 액젓이 있어유?'
 "황석어는 없지. 근디, 왜 마누라가 안 담고?"
 '없슈!'
 "이런... 그럼 그냥 사 잡수시지 않고?"
 '몇 포기 심어놨으니 어쩌것슈? 그냥 버리기도 거시기허고...'
 "하긴, 담아 먹는 재미도 있쥬"
 김치통을 들고 서서 만 원짜리 젓갈 흥정하는 추레한 사내가 마누라도 없다니, 젓갈 집 영감의 눈에 딱해보였나보다.
 "... 쪽쪽 찢어 식초 좀 넣고 무쳐도 맛나고요!" 
 급 친절해진 영감이 황석어젓으로 김장하는 방법을 세세하고 친절하게 알려준다.
 측은지심의 발로, 참으로 착하고 훈훈한 모습이다.

 공중변소 골목으로 나와 중앙통을 걸어가다 청각 한 봉을 사 들고 시장 초입의 그릇 만물상에 들렀다.
 '이거랑 똑같은 것 하나 주시죠!'
 만물상 주인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릇 사이를 기웃거리다가, 아래 위로 조금 작은 것을 건넨다.
 "똑같은 것이 없네요. 요건 9,000이고 요건 35,000원이고"

 어머님이 세미나 다니실 때 타 오신 김치냉장고.
 지금은 한데로 쫓겨나 샘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내 김치냉장고.
 얼음덩이가 된 소태 김치를 지난 계절 내내 안고 전기만 달구고 있던 잡표 김치냉장고.
 빨아 삶아도, 지지고 볶아도, 별수를 다 써도 대책 없이 소태인 김치. 그래서 그냥 얼음덩이로 1년 묵은 소태를 정리하고 통 두 개는 닦아 놓았고, 손잡이 떨어져 나간 크기가 비스름한 통 하나는 광에서 찾아 동치미는 담가 두었는데. 백김치 한 통, 그냥 김치 두 통을 담그려니 통이 하나 부족하다. 삼월이 언니에게 찾아 놓으라 하려다가, 이러쿵저러쿵 말 오가는 게 싫어 약 타러 나오며 통 하나를 들고나왔는데 같은 게 없단다. 크기가 같은 것을 찾아 여기저기 기웃거리기는 귀찮고...
 9,000원짜리로 계산하고 길 건너 약국에서 혈압약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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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시 무렵 늦은 저녁 차려 먹고 폰을 찾는 데 없다.
 이불을 다 들춰 보고, 서재로 안방으로 부엌으로... 몇 번을 두리번거려도 없다. 이상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샘에 나가 낮에 들고 나갔던 김치통을 열어보니 거기 들었다.
 사 온 젓갈과 청각을 담아 밀어 두었는데, 그때 함께 담아 놓았나 보다. 폰에 젓갈 냄새가 뱄다. 병에 담겨 비닐봉지에 싸인 젓갈 냄새가 어찌 폰에 배도록 새어 나올까? 커다란 쇳덩어리 도로를 굴러가는 일도, 하늘을 나는 것도 그렇고, 세상엔 신기한 일이 참 많다. ㅋㅋㅋㅋ

 고춧가루. 쪽파. 대파. 생강마늘. 갓(x). 황석어젓새우젓청각.
 이번 주말에 배추 뽑아 절이기 전에 마트 가서 한 줌씩만 사면 되겠고, 내일은 오후 예약된 치과 다녀와서 아무래도 무는 더 얼기 전에 뽑아둬야겠네.

 

 20231128251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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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주잔에 먹는 커피는 어떤 맛일까?


 나는 포대화상이 그려진 소주잔에 커피를 내려 앉아,
 먼 이국 산 정상

 운무에 쌓인 산신각 앞,

 포대화상을 마주한다.


 그 차가운 대리석 배를 끌어안고 두드려 깨우고, 싹싹 빌던 손가락으로 배꼽을 살살 긁어  귀엣말을 나누며 마주하던 오방기의 펄럭임과 기이하던 바람종 소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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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자기 맘이 쓸쓸해지는 건 무슨 연고인고?
 사는 거 별거 아닌디... 
 사연 많은 중생이로세. ㅎ

 

 
 202311291209수
 기상청사람들mixDemis_Roussos-Goodbye_My_Love_Goodbye2022
 라면이라도 하나 삶아 묵고,
 무 먼저 뽑아 놓고,
 눈곱 떼고 치과 다녀오고,
 다녀와 빌려 온 인두와 납으로 또 고장 난 밥솥 고쳐보고,
 저녁엔 흰밥 한 냄비 해 놓고...
 그럴 모양이다.

-by, ⓒ 성봉수 詩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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