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 하고 삼월이 밥 사러 나간 김에 사 들고 온 시원찮은 떨이 관파 한 주먹.
맛 가서 그냥 버리기 전에 송하와 소송으로 나눠 썰어 냉동실에 넣어두며, 애 밴 ㄴ처럼 갑자기 먹고 싶어 함께 사 온 콩나물을 다듬어 한쪽에선 국을 끓였는데.
벌려 놓은 김에 아예 저녁상을 차렸다.
냉장고 열다 떨어져 깨진 날달걀을 잽싸게 주워 후루룩 먹었더니 배가 금세 든든하니 시장기가 없었지만, 사 들고 오며 깨진 것이 하나 더 있어 찜 특식을 만들고 얼마 남지 않은 고춧잎 무친 것도 먹어 치울 겸.
일곱 시도 되기 전 이른 저녁상을 마주한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는데, 염려대로 자정이 지나며 뱃속에 그지가 깡통을 두드리기 시작한다.
급작스레 찾아 온 이 허기는 마치 시각 한 토막을 뚝 떼어내 그 빈 곳으로 남은 시간의 조각들이 연쇄적으로 무너져 평상의 패턴이 왜곡되고 경험이나 예상하지 못한 의지 밖의 시간으로 쓸려가는 듯하다.
추석 차례 모시고 배급받은 부침개 몇 첨으로 그 빈 조각을 때우며 생각한다.
'이리 무너지건 저리 무너지건 그 행위가 내게 주어진 시간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결국 시간의 위치만 바뀔 뿐 가용한 총량은 변할 것이 없는 일'이라고.
나를 둘러싼 모든 일,
당기고 밀며 무수한 파고로 더러는 견디기 힘들도록 일렁여도 결국은 내 삶에 허락된 시간 크기를 벗어나지 않는 늘 같은 자리의 그대로인 것이라고.
만남과 헤어짐도 기쁨과 슬픔도 환희와 좌절도 사랑과 미움도 있는 것과 없는 것들 모두...
202209152950목
Osibisa-Why
다섯시 지나며 몇 방울의 비.
-by, ⓒ 詩人 성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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